'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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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가 자야할 시간에 책을 읽어달라고 조른다. 나는 늦었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림책 한 권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5분에서 7분. 5분 늦게 잔다고 세상이 뒤집히지 않으므로 사실 그 '금지행위'의 진짜 이유는 아빠의 귀찮음에 있다. 밥먹고 씻고 옷 갈아입고. 그 후에도 조금 놀게 해줬는데 누워서 책까지 보겠다는 아이의 요청이 심히 귀찮고 싫은 거다.(퇴근시간에 일하나 더 받은 느낌? -_-;;;)

어제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쪼잔하게 책 한권가지고... 하는 마음이 들어 흔쾌히 책을 함께 읽었다. 근데 막상 함께 책을 읽고 자기 전에 쫑알쫑알 아이와 대화를 하다보면 그 시간이 좋다. 가끔 나는 생각의 극단을 달리곤 하는데 내가 불치병이 걸려서 곧 죽게된다면,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장면 중 하나는 이 아이와 이렇게 - 쌍카풀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 잠들기 직전에 쫑알쫑알 나누던 대화 시간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갈대 같다. (성경묵상은 재끼고 아침에 잠간 들었던 생각...)
2013/09/13 00:21 2013/09/1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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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차게 시작한 프로젝트 변.

며칠전 어린이집에서 앨범 신청하라고 공지글을 보냈다. 앨범가격 무려 육마넌. 나는 그래도 하려고 했으나 아내는 상술이 엿보인다 하여 신청하지 않았다. 가끔 어린이집에서 하는 활동이 고맙기도 하지만 아이의 아이다움을 저해한다는 생각도 든다. 일례로 어버이날 아이가 만든 카네이션에는 엄마 아빠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어쩌고 무슨 북한 방송 같은 이야기를.

우리 성하라면 아마도 아빠 똥꼬나 먹어... 내지는 아빠 스티커 다모으면 큰 장난감도 사줘야돼...같은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ㅋㅋㅋ 문제는 아이의 아이다움에 어른들이 윤리적인 덧칠을 해대는 것이다. 당연히 성장기에 대한 추억들도 천편일률적이다. 그저 수많은 아이들 속의 내 아이. 남들에게 처지지 않게 성장하는 내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성장보고서를 나는 경제논리에 따라 비용을 주고 구입해야만 한다.

내 어릴 적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어디에 살았고, 그 때 내 친구는 누구였고 나는 어릴 때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을 했는지... 그 때부터 나라는 존재는 어떤 본유의 모습을 드러냈는지가 궁금하다. 하지만 그런 자료는 없다. 그저 풍문 속에 전달되는 내 영유아기의 사건들. 그것조차 어른들의 가치관으로 채색된, '넌 어릴 때부터 착했지, 점잖았지, 공부를 잘했어...' 그들의 욕망에 기댄 평가들.

어차피 자료들은 자료를 선별하는 이들에 의해 왜곡되겠지만 나는 성하가 나중에 자신의 영유아기를 통해 엿볼 수 있는 특징들, 그리고 자라면서 경험한 환경들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 그것이 10-20대에는 별 의미없는 자료일 수 있겠지만 30대에는 스스로에게도 흥미로운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고유한 성격과 기질은 30대에 꽃을 피운다고 한다. 10-20대에는 여전히 주변의 눈치(환경에 적응)를 보느라 본유적 성격이 죽는 것이다.

아이에게 나는 무엇을 줄 수 있다. 얼마나 이 아이를 보호해줄 수 있나. 얼마나 이 아이가 편하게 고지를 선점하게 만들 수 있나. 그런 마음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정작 아이에게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만들고 자기 스스로 삶을 개척할 내적인 힘을 길러주는 게 아닐까. 부모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게 해주려면 부모와 사회의 가치관이 덧칠된 기성 성장앨범들이 아닌 부모의 눈으로 자세히 관찰한 내 아이의 특징들을 잘 기록해 주는 게 정작 더 중요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아이의 성장책 첫발을 내딛는다.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고심하며 뭔가 구조를 짜본 건 연애 이후 처음이다. 가격대 성능비가 가장 나쁜 케이스일 듯.^^ 뭐 이정도 생색을 내본다.
2013/07/13 00:20 2013/07/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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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성하가 새엄마 아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엥?....
이유인 즉슨,
할머니, 할아버지도 나이를 먹으면 딴 곳으로 가고
엄마, 아빠도 나이를 먹으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갈테니
자기 혼자 남으면 무섭다는 것.
엄마, 아빠가 딴 곳으로 가기 전에
다른 엄마, 아빠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그런 얘기.
...
... ...
나는, 아빠는 오래 있어야 할아버지가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성하가 잠시 생각하다가,
"내가 여섯살 되면 아빠 할아버지 되잖아..."
....
야!!!!!!!!!!!!!
내년에 나 할아버지 안 된다고!!!!! 이 녀석이!!!!
ㅠㅠㅠㅠㅠㅠ
2013/07/04 00:19 2013/07/0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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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하와 놀이터에서 있다가 맞은 일몰. 아이들은 하나둘 제 부모들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서운함을 못내 얼굴에 드러낸다. 나도 그랬지... 초등학교 시절 하교길에 책가방을 집에다가 던져놓고는 해가 질 무렵까지 정신없이 뛰어놀곤 했다. 그 땐 뭐 대단한 장난감도 없었는데, 친구들 서너명만 모여도 놀이터는 천국이 따로 없었다. 무언가에 몰두하다가 맞는 어둠...

아이들의 엄마들이 밥먹으러 들어오라고 부르는 소리, 아쉬움에 손을 흔들며 방금전까지 정신없이 만들던 모래성, 접던 딱지들이 순간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들이 되는 경험. 왠지 모를 울컥함으로 어깨를 늘어뜨리고 집으로 들어가지만 이내 모든 걸 잊고 식사가 끝나면 누나와 아이스크림 쟁탈전에 빠지던 기억들.

2.
중고...등학교 시절 원종수 권사님이라는 분의 간증테입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입소문이 교회마다 퍼져서 어머니도 어딘가에서 복제 테입을 구해오셨다.. 간증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머리카락이 쭈삣하게 설 정도로. 예수를 믿으면 내가 마치 육백만 달러의 사나이나, 앤드류같은 남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 같은 느낌. 한번 본 교과서는 마치 사진을 찍은 것처럼, 어떤 페이지는 그림 속 인물들 숫자까지도 기억이 나더라던 원권사님의 고백은, 지금으로 따지면 마치 아이언맨의 수트를 손에 넣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그의 간증 마지막 부분에 천국에 대한 소망을 언급하면서 해질녘 아이들의 딱지치기를 예로 들었다. 딱지를 많이 딴 아이나 적게 딴 아이나 해가 질 무렵에는 모두 부모에 손에 이끌려 집에 가기 마련이고, 그러고 나면 그렇게 열심히 모은 딱지도 그냥 종이조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그의 진지한 음성. 우리의 인생이 그런 것 아니겠냐며,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다 그런 아이들의 딱지치기에 다름아니라는.

3.
시간이 흐를수록 원 권사님의 간증은 내게 있어 판도라의 상자처럼 한번 생각의 꼬리가 똬리를 틀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순의 사유들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인생이 딱지치기라면 왜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훌륭한 사람은 서울대에 들어가고 권력자들이 사위삼으려고 노력하게 만들 정도로 뛰어나야 하나. 그걸 마다하는 즐거움을 위해 우리는 앤드류나 수퍼맨을 꿈꾸어야 하는가.

무엇보다 나는 내 유년기의 가장 즐거웠던 순간인 해질녘까지의 놀이를 한순간 무의미, 무가치한 행위로 만들어버린 그의 비유가 싫었다. 신앙이 일원론이냐 이원론이냐를 논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그 시절의 모든 기억들, 친구들, 하다못해 해질녘에 느꼈던 울컥하고 멜랑꼴리했던 내 정서마저도 내게 있어 유의미한 어떤 본질의 뭉태기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을 무가치로 여기고 천국으로 떠나야 한다.

4.
아마도 그때 막연하게나마 신앙은 내게 어떤 류의 즐거움이나 소중한 정서들을 빼앗아가는 어떤 '타부'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생각이 자리잡았던 것 같다. 내가 어떤 기쁨을 느낄 때마다 비슷한 수준의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부정적 종교성의 시작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오늘 성하와 마주한 놀이터에서의 일몰을 보며 문득 그 죄책감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분투했던 신앙적인 갈등들을 되내어 보았다.

'아빠, 우리 이제 집에 가야돼?'
'더 놀고 싶어?'
'응, 5분만...'
'그래, 오늘은 10분 더 놀다 들어가자.'
'이히히...'

성하를 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에게는 놀이터의 즐거움에 어떤 어두움을 안겨주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 하면서 앉아 있었다. 오늘은, 굿이브닝...
2013/06/02 00:18 2013/06/0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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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도 10시에 성하와 함께 떡실신했다가 아침일찍 눈을 떴다. 요즘 아내가 미드 <한니발>과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꽂혀 있는 게 생각이 나서 시리즈 잘 정리된 파일을 다운 받아서 아이패드에 옮겨주고 쓰다듬 당하면서 출근.ㅋㅋ 강아지처럼 혓바닥도 내밀고 싶었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실행하진 않았다.

2.
시카고 공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나의 소심함, 조바심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다. 걱정이 되거나 무서운 건 아닌데 그 불안함의 끝을 보고나서야 잠을 청한다. 그 끝이란 게 내가 죽고 아내와 성하가 내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없이 하다보면 아.. 이것만은 하고 죽어...야 하는데 하는 안타까움이... (아... 이런 얘기 너무 솔직히 하다가 싸이코취급 받을텐데..ㅠㅠ)

3.
출장 중에 시간이 없어서 성하 옷만 간신히 샀다. 꽤 많은 옷과 신발을 샀는데 결재는 78불. 옷들도 세련된 아빠의 안목이 빛났(다고 믿고 싶)다. 아내에게는 바빠서 성하옷만 간신히 샀다고 문자를 보낸 상태였지만 출장 마지막 날 맘에 드는 시계가 있어서 아내 선물도 이미 준비가 끝났다.^^ 문제는 비행기가 뜨는 마당에 이 모든 게 생각이 났고 비행기가 추락하면 성하는 내 센스돋는 옷선물을 받지 못하고, 아내는 내가 선물을 준비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된다는 사실이 못내 나를 괴롭혔다.ㅠㅠㅠㅠ

4.
아... 아내 선물 샀다는 사실을 알릴 길이 없나, 성하 선물은 비행기가 추락해도 누가 좀 전달해줄 수 없을까... 비행기는 한참 잘 날아가고 있는데 나는 이미 시작된 생각의 꼬리를 자를 수가 없는 상태... 문득,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도 참...

아내는 평소에도 종종 내가 어떤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는 걸 답답해한다. 그 반대급부로 어떤 의무를 다하지 않는 일상에 대해 내 까칠함을 빛을 발하고 그런 압박에 대해 아내는 분노할 때가 더러 있다. 아내는 이 모든 게 내가 여전히 부모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상당 부분 그건 사실이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라깡이 언급하는 이른바 '아버지의 이름'에 여전히 묶여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부모의 언어가 내 언어가 되고 부모의 기대가 나의 기대인 양 무의식 중에 전가된 어떤 무거운 의무감, 꼭 해야하는 부모노릇, 아들노릇, 사원노릇... 통칭하여 누구나 그러해야만 하는 사람노릇.

5.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변되는 부모의 불편한 옷이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의 욕망 중에 하나로서 베품의 기쁨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 차이는 인지할 수준인데 주로 부모에게 전가된 의무감을 하고나면 불안함이 사라지고 안심이 되는 정도로 끝나지만, 누구에게 무언가를 해줄 때 드는 어떤 카타르시스랄까 그 자체로서의 기쁨이 나름의 자기만족을 가져온다. 나쁘게 보자면 그것은 '인정받고 싶은 욕망'의 또다른 얼굴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내가 곧죽어도 아내 선물을 산 걸 알리고 싶을 정도로 그 부분의 욕망이 큰 사람이다.^^

나이가 들수록 해야 하는 (옳은) 일에서 어떤 만족감을 찾던 시기를 지나 하고 싶은 일에서 어떤 옮은 방향을 찾고 그것을 향해 내달리는 삶에 관심이 더 간다. 내 적성과 천성에 맞는 옷을 입고 그것으로, 나다움으로, 세상과 교감하는 삶. 세상과 공존하는 삶,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

#.
일단, 비행기가 추락하지 않았고, 성하는 내가 산 옷과 신발을 신고 뛰어다니고 있고, 아내는 내가 선물을 샀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시계도 차고 있고, 오늘 동영상도 아이패드에 넣어 놓았다는 사실이. 꽤나 유쾌한 아침이다. 모두 굿모닝.^^
2013/06/02 00:17 2013/06/0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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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들어 성하가 어린이집을 옮겼다.
원래 다니던 집은 가정집이었는데 원장선생님이
좋았고 성하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
5살반이 없는 관계로 성하는 어린이집을 옮겼는데
가끔 이전 어린이집 친구들 이름을 떠올리며
그 애들을 추억한다.

성하 입장에서는 첫 이별 경험이랄까.
얼마 전 동네에서 예전 어린이집 친구를 만났는데
정작 만나서는 서먹해하다가 돌아왔다.
... 사실 그 친구들은 특정 장소, 특정 시간에
함께 있는 어떤 익숙한 '경험'의 향수인 셈이다.

해질녘 붉게 물드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왠지 모를
따뜻함에 눈시울마저 붉어지는 경험을 누구나 한다.
그 짧은 시간의 온기와 색감에 젖어 떠오르는
추억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

불행히도 나는 유년기 시절의 어떤 추억거리가
남아있지 않다. 그저 어떤 친구들과 어떤 동네,
어떤 명확하지 않은 이미지에 기대어 추억할 뿐.

성하와 앉아서 옛날 어린이집 친구들의 이름을
물어보고 스마트폰에 받아적었다.
어린이집에서 찍은 사진을 찾아서
성하의 첫 공동체 친구들의 이름을 같이 적은 후
육아일기 한 페이지에 넣어둘 생각이다.

성하에게 간간이 보여주며
나의 추억에는 없는, 선명한 이미지를 남겨주고 싶다.
나도 안다. 이런 것들이 성하에게 의미가 있다기 보단
나의 어떤 결핍에 대한 보상심리가 깔려있다는 걸.
그래도, 성하가 나이가 들어 너다섯 살을 추억할 때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이 떠오르면 나도 기쁠 것 같다...
2013/05/15 00:16 2013/05/15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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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성하가 옆에서 코를 파다가 손이 허공에 있는 채로 다시 잔다.ㅋㅋㅋ 완전 귀여워서 한참을 입고리를 올리고서 쳐다보는 중이다. 이 아이가 정녕 내 아들이란 말인가... 참 귀엽다. 노동절 아침에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가 내 부주의로 문틈에 성하 손이 끼었다.

 

한참을 울고는 이후로 계속 칭얼대기 시작, 몇 차례 주의를 주다가 저녁 즈음에는 나도 도저히 참지 못해 화도 내고 1분동안 벌도 세웠다. 저녁에 씻기려는데 아침에 문에 낀 손이 퉁퉁 부어있었다. 얼핏보고 피부가 조금 까졌구나 생각했는데 엄살이 아니었구나... 내일 병원에 가봐야하나...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손가락은 잘 움직이는데, 잘 움직이는데 그때부터 자학이 시작되었다.

미안함이 쏟아지는 밤. 둘이 누워서 책을 읽어주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나: 오늘 손가락이 많이 아파서 기분이 안 좋았었구나 성하는...
 성하: (고개 끄덕)
 나: 기분 많이 안 좋았어?
 성하: 아니, 기분 좋아.
나: ...
 성하: 아빠도 좋아.
 
눈물이 핑 돈다. 아빠도 좋아. 오늘 내가 성하에게 칭얼대지 말라고 했던 경고와 벌을 세운 기억도 고스란히 돌아온다. 넌 그래도 내가 좋구나. 흠...
 
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많았다. 지금도 그 정서에서 자유롭지는 않지만 서서히 아버지에 대한 내 감정에서 자유로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30년 넘게 헤어나오지 못한 아버지탓. 성하에게 그런 아빠가 되고 싶지 않다. 정말로. 하지만 이제 갓 5살이 된 아들에게 나는 원치 않게 잘못을 한다. 뒤늦게 알게되면 오늘처럼 밤잠을 설친다. 퉁퉁부은 손가락을 얼음주머니를 갖다대고, 잠자는 아이의 손가락을 몇차례 확인한다.
 
나는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그건 양육이나 자녀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아이를 다치게 하거나 상하게 만들까봐 두렵다. 물론 이건 엄살이다. 매순간 나는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노라 자만한다. 하지만 그만큼 이 아이와 살을 부비고 살아가는 일상의 잘못들이 쌓이는 게 무섭기도 하다. '아빠 좋아'가 아니라 '아빠 미워'라고만 했어도 지금쯤 나는 숙면을 취했을텐데...
 
초등학교 때 아버지의 운전실수로 교통사고가 났고 나는 눈썹이 찢어지고 어깨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물론 그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아버지는 괜찮니? 미안하다...라는 살가운 말을 해주지 않았다. 평생 아버지는 자녀에게 빈말이라도 자기 잘못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 내가 아비가 되고 보니 매번 사과는 하겠는데, 그것보다 내 아들이 되어서 내 실수로 인해 아이가 고통받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생긴다.
 
코를 파다가 허공에 떠 있는 성하의 손을 보며 간절히 기도했다. 오늘 문에 낀 손가락이 빨리 낫게 해달라고. 우습지만 진지하게. 어제 많이 자서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잠이 안 와서 다시 일어났다. 미뤄둔 일을 하는 중간중간에도 기도 중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나같은 트리플A 성격은 애 하나 키우기도 버겁다...

 

'13. 5. 2.

2013/05/02 00:16 2013/05/0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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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밤.
성하가 자기는 파워레인저 XX가 너무 좋은데 우리 집에는 OO와 OO만 있단다. 내가 말하길 너 요즘 파워레인저 아니고 포켓몬스터를 더 좋아하지 않냐고 했더니 아니라고 막 우기면서 XX를 사달라고 막 졸랐다. 사실 성하 장난감은 칭찬스티커를 다 모으거나 특정한 날에만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뜬금 없어서 물어봤다."아빠가 왜 XX를 사줘야 하는데?" 성하가 나를 똑바로 처다보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빠를... 사랑하니까..."
...
허걱;; 가슴이;;;; 두근두근
...
난 처음 알았다. 왜 많은 여성들이(혹은 남성들이) 상대가 나쁜 사람인 걸 알면서도 큰돈을 달라고 하거나 못되게 굴어도 그걸 뿌리치지 못하는지...ㅠㅠ
차마 안 된다고는 못하고 담에 사주겠다고 얼버무렸다.(그러나 눈은 계속 하트뿅뿅...;;;;;;)
...
아침에 아내에게 이 얘길 했더니 아내가 날보며 한마디 던졌다.
"어이구 (아들) 바보야..."
... 히잉. 나도 내맘을 어쩔 수 없네...ㅠㅠ
2013/03/21 00:07 2013/03/2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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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는 (다행히도) 외모는 아내를 닮았지만 성격은 다분히 나를 닮은 구석이 많다. 성격은 좋고 나쁘고가 없고 그저 다를 뿐이라고 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좋은(되고 싶은) 성격도 있고 나쁜(버리고 싶은) 성격도 있게 마련이다.

아들이란 존재는 뭐랄까, 정치적이지 않은(스스로를 포장하지 않는, 페르조나가 형성되지 않은) 나(아빠)의 원초적 모습을 보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때로는 아들의 성격이 불편하다. 내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다듬어지지 않은 존재가 근처를 돌아다니니 그럴 만도 하다.

나는 여러가지 이유에서 나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다. 그 '여러가지'를 여기서 설명할 필요는 없겠고 그저 많은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묻기도 하고 스스로를, 그 의도와 생각, 감정들을 자주 돌아보곤 했고 나아가 정신분석이나 심리학, 상담 분야의 책들도 읽고 공부했다는 정도만 언급하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결혼' 자체도 나를 돌아보는데 큰 도움을 줬다. 결혼하고 나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는 아내가 내 숨겨진 습관, 습속, 욕망 같은 걸 찾아낼 때 나는 처음에는 부끄러움을 넘어선 분노 같은 걸 느꼈다. 수치스러움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내에게 '비밀을 알았으니 죽어줘야겠어'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나.ㅋ) 내가 숨기고 싶어하는 성격적 결함(내가 보기에 치명적으로 여겨지는 결함)이 여과없이 드러나니 지적을 해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그래서 교정되지 않는... 힘든 시간들을 겪었다.

내가 아내에게 지적질을 당하고 살았던 몇 년이 없이, 또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없이 나를 꼭 빼닮은 아들을 얻게 되었다면... 아마 나는 내 아들을 마음 한구석으로 싫어하고 불편해했을 것 같다. 때로 드러나지 않게 미워했을 수도 있다. 쟨 왜저러냐며 별 일도 아닌데 불같이 화를 내고 벌을 세웠을 수도 있고 '아빠와 하는 짓이 똑같다'고 누군가 농담을 할 때 얼굴을 붉히며 아니라고 정색을 하며 화를 냈을 수도 있다.

부모가 된다는 건 내게 주어진 보호가 필요한 존재에게 어떤 것을 공급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 이상의 의미 중 하나가 바로 나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성하를 통해 나는 나의 유년기를 돌아보고 또한 지금의 나(직장이나 가정, 공동체, 지인들과의 관계성을 배제했을 때 드러날 법한 나)의 성격을 돌아본다. 그리고 내 성격에 대해 스스로가 시비(옳고 그름)나 미추(아름답고 추함)의 어떤 잣대를 들이대는 일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필요를 느낀다.

그 성글은 잣대가 자연스럽게 내 아들에게도 옮겨가길 바래본다. 그리고 그것이 바른 육아, 자녀교육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3/03/13 00:06 2013/03/1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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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많은 연애드라마를 보고 적지도 많지도 않은 연애를 해보았지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상대가 열심히 말을 하는데

갑자기 슬로우모션처럼 느껴진다거나 뽀샵처리가 된 영상이

소리없이 흘러가는 느낌 같은 걸 경험한 적은 없었다.

 

오늘. 성하를 재우느라 누워있는데 그가 쉴새없이 내게 이야기를 했다.

찰진 두 볼살과 긴 속눈썹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정겨운 톤으로

쫑알쫑알 조그만 입에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순간 입모양만 보이고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갑자기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라

나는 막 하하하 웃으며 눈물을 훔쳤다.(젠장, 또 우는거냐)

 

"아빠 내 말 듣고 있어?"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웃었다.

난, 이 아이 참 사랑하는 거 같아.ㅠㅠ

 

2013/01/29 00:05 2013/01/29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