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우울한 얘기만 주로 했지만, 돌아보면 강제로 멈춰서게 된 나의 한해가 나빴다고만을 할 수 없다. 오히려 차분히 삶을 돌아보았고, 개인적(가정적)으로도 '성장과 규모의 경제'만을 추구했던 가치관을 잠시 내려놓고 재정비의 기회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재미있게도 처음 시작점은, 냉동실 정리였다. 주로 모임이 있거나, 카페나 극장 정도를 다니던 내 입장에서는,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마땅히 없는데 집에서 책 읽고 공부나 하겠다는 마음이었으나.. 이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서 집정리를 시작한 게 냉동실이었다.
언젠가 먹을 거라고 넣어둔, 묵혀둔 음식들을 일일이 꺼내 죄다 버리고 정리했고, 그 여세를 몰아 냉장실도 정리, 청소를 했다. 그리고 다시 책장정리, 옷장정리, 아이옷정리에 이어 내 물건 정리가 이어졌고 그 와중에 언젠가 쓰겠거니 하고 묵혀둔 물건들을 정리했다. 때마침 당근마켓이 유행이어서 그런 물건들을 몇달동안 꼼꼼히 정리하고 앱에 올려서 거의 대부분을 팔아치웠다.
그러자, 그간 지갑을 열어 쓸모없지만 사 모은 물건들을 보며 내, 우리 가족의 소비성향을 따져보게 되었고 그 비슷한 시기에 바바(강아지)가 심하게 아프면서 병원비가 크게 들었기도 해서, 좀더 엄밀하게 우리 생활규모에 맞는 소비 계획과 실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스레 소비에 대한 생각은 연금, 적금 등의 저축과 지역화폐, 카드 사용, 비과세 혜택 등의 재테크로 흘러갔고, 그 종착역으로는 '7/10 부동산 대책' 발표와 그 이후의 충격으로... 그간 집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살지 않았던 나의 '가오(과오)'를 심하게 질책하기에 이르렀다.
이야기가 너무 재물로 흘러간 것 같아서 그 얘긴 각설하고.
물론, 그 와중에도 코로나19로 멈춘 많은 활동들은 온라인 컨텐츠나 영상모임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 마저도 이제는 뭔가를 '만들어낸다'기 보다는 대부분의 일들이 정리하고 추스르는 방향이라는 생각을 더 하는 것 같다. 차분하게 정리해서 잘 굴러가게 되면 내가 할 일이 없어질 것 같은데, 종종 이런 생각에 계속 잠겨있다보면 어떨 때는 왠지 스스로가 죽을 준비를 하는 사람 같기도 하다.
그렇다. 코로나19도 왔지만 나도 하강기에 들어선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이해해주시길.. 난 내가 45세가 되리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음) 되고싶은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바뀌는 것 같다. 당연히 예전엔 (지적으로) 탁월한 사람, (대중적으로도) 인기있는 사람, (당연히) 이성에게도 (여전히)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으로 남고) 싶었다. 아마 젊을 때는 아니라고, 나는 '가오'있게 소신있게 마이웨이를 갈 거라고 말했겠지만. 매순간 그런 이미지를 욕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 반복적으로 생각하는 건, '무해한 사람'이다. 위험하지 않은 사람. 옆에 있으면(있을 때는) 안정감을 주고, 어느 정도 거리 안과 밖으로는 넘어오거나 떠나가지 않는 사람,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도 '이 사람'이 중개인이면 크게 망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 밝은 사람, 없어도 어색하지 않고 있으면 반가운 사람, 어두운 곳에서 찾아도 밝은 곳으로 나와주는 사람. 뭐, 그런 사람.
그렇게 어정쩡하게 살면서 차분히 정리하다 죽고 싶다. 사실 그렇게 죽을 것 같다.
'20. 1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