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1.
한동안 여성주의 시각으로 SNS나 강의에서 강한 논조로 가부장제, 혹은 성평등 이슈에 많은 말들을 했었다. 언젠가부터 그 빈도수가 줄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기 보다는 한번 뜨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일상적으로 지적할 부분은 넘쳐나고 그것을 일일이 이슈를 삼는다는 것 자체가 대중에게, 혹은 주변에조차 어떤 내성을 심어줄 것 같은 불안함마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때 이런 류의 내거티브 운동 자체에 마냥 긍정적일 수는 없는 게 현실 같기도 하다.
2.
내가 SNS에서 비판적인 논조로 말하고, 그 말의 수위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정부에서 국가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을 탄압하기 위해 개인신상을 털지 않은 다음에야 그건 그저 스스로의 자위책으로 그칠 확률이 높다. 물론 SNS는 순식간에 전파되므로 이슈를 선점하고 확산시킨다는 관점에서는 좋은 플랫폼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가부장제, 성적 불평등을 비판하는 지점은... 어떤 의미에서(일상생활에서조차 깊이 체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정작 동성애논쟁보다 지지받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3.
오늘 팟캐스트를 함께하는 간사님으로부터 통계자료를 받았다. 개독교, 한줌 개신교 선교단체의 방송의 한자락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솔직히 겉으로 오바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한국에서 기독교인임이 자랑스럽다거나 기쁘다거나.. 전혀 그런 맘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팟캐스트에서 '언니들'을 꽤 많이 섭외했다는 사실이 내심 기쁘긴 했다. 감사하게도 다들 흔쾌히 수락을 해주셨고 언제나 기대이상의 강의를 해주었다. 은근히 교계 안에 팽배한 어떤 편견... 여성 리더십, 여자 강사의 말빨은 왠지 비논리적이고 불안해 보인다는 의구심을 불식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4.
결국 사람은 자기가 떠드는 이야기에 걸맞은 걸음을 걸어가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이전보다는 더 성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그 이면에는 내 삶과 말 사이의 보조를 맞추고 살아야겠다는 나름의 반성도 있다. 이젠 소박하게나마 내게 주어진 기회가 생길 때 내 말에 걸맞는 적절한 걸음을 걷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은 공감하지도 않는데 내 입으로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는 건... 웃길 생각이 아니라면 무의미한 것도 같다.
팟캐스트 통계를 보며 이런저런 감사한 생각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 얘길 먼저 하고 싶었다. 그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한때 나는 글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물론 여전히 애착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허나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내가 썼던 글들에 대한 집착, 애착이 심했다.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고 쓴 글은 거의 대부분 PC나
블로그에 정리해두곤 했다.
그리고 자주 글로 사람을 평가했다.
서로 비교를 일삼기도 했고 글의 수준이 높지
않은 경우에는 마치 글과 사람을 동일시하기도 했다.
물론.
머리로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신영복 교수가 어떤 강연에서 했던 말씀처럼
집을 짓는 목수는 그림을 그릴 때 지붕의 기와부터
그리지 않고 주춧돌부터 그리는 것을 보고
소위 지식만을 쌓은 자신과 같은 백면서생들의 문제를
감옥에서 충격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는 일화들.
한국의 많은 교회들,
유독 많은 신학교와 넘쳐나는 신앙 양서들.
그것들을 소비하고 더 정화된 더 날카로운 지성.
거품을 걷어낸, 지나친 신비주의나 지나친 개인주의,
물질주의, 사회와 격리된 신앙을 경계하는 양질의 설교들.
그 정교하고도 옮은 말들, 글들.
그것들의 홍수 속에서도 한국교회는 침몰해가고.
많은 논객과 글쟁이들의 담론 속에서도 사회는 후퇴한다.
물론 그것이 그들의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말과 글의 힘을
담론의 힘을 너무 맹신했거나 우상시했던 건 아닐까.
글이나 말로 사람을 판단하는 습속을 버리면서
나는 이전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많이 발견한다.
이 어둡고 막막한 세상속에서도 여전히 가슴뭉클하고
애정을 갖고 싶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람을 대하고 판단했던 내 작은 우주가 허물어지는 느낌.
아마 내가 아니라면 누구도 이 느낌을
전적으로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어떤 정서가 생겼다.
내가 애지중지하던 글과 말들에 대한 과했던 어떤 애착.
그것을 자제하려는 노력을 넘어선 심드렁함...
어느덧... 부지불식간에 내게 그런 정서가 생겼다.
물론 부지불식간이라고 하기엔
기억나는 몇몇 사건들과 몇몇 사람들이 있다.
내 우상들이 무너져 내리게 만든 따뜻하고 성실한 인격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