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의 일이다. 13세의 조던 챈들러가 말했다. “마이클 잭슨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사진)은 알몸 수색을 당했고 언론은 그의 집에서 포르노 잡지와 어린이의 나체가 그려진 그림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잭슨과 섹스를 했고 입으로 하는 성행위까지 강요당했다는 챈들러의 진술 또한 연일 뉴스를 장식했다. 챈들러의 가족은 2330만 달러를 합의금으로 챙겼다.
2001 년의 일이다. 잭슨이 말했다. “소니는 아티스트로서의 제 재능을 파괴하려 해요. 모욕을 당해왔습니다.” 뉴욕 투어 중 할렘가를 지나던 참이었다. <인빈서블> 앨범 출시 이후 격해진 소니뮤직과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청중 가운데 누군가 소니를 욕하며 가운뎃손가락을 올리자 잭슨도 따라 했다. 그날 미국의 주요 언론은 일제히 마이클 잭슨의 상스러운 손짓을 수십 번씩 되풀이해 방송했다. 잭슨은 소니와의 연장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2003년의 일이다. 13세의 게빈 아르비조가 말했다. “마이클 잭슨에게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그는 잭슨의 도움으로 암수술을 받고 건강해진 상태였다. 200명이 넘는 증인이 소환됐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소년의 어머니를 신뢰할 수 없다는 증거가 속출했다. 수년에 걸쳐 결국 무죄판결이 내려졌지만 3억 달러에 이르는 소송 비용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2009년 6월25일, 소아성애자면서 성형중독자이고 흑인을 혐오해 백인이 되고자 했다는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 어느 한쪽 주장을 일관되게 전달해왔던 언론의 바로 그 지면에는 잭슨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 회고하는 기사가 채워졌다. 고인이 반대했으나 소니가 일방적으로 발매했던 두 장의 히트곡 편집 앨범과 <스릴러>는 일주일 만에 31만 장이나 팔려나갔다. 소니와 소니뮤직의 회장은 “잭슨은 시인이고 천재였다”라고 입을 모았다. 잭슨에게 소아성애자라는 꼬리표를 남겼던 조던 챈들러는 당시 주장이 아버지의 강요로 이뤄진 거짓말이었다고 고백했다. 얼마나 미안해하고 있는지, 자신을 용서해줄 수 있는지 물어볼 수 없게 돼 원통하다고 덧붙였다. 조만간 챈들러의 자서전이 출간될 예정이다.
살아 있는 누군가는 깎아내려짐으로써 상품화된다. 이미 죽은 누군가는 신화화됨으로써 상품화된다. 어제 잭슨을 욕해 배를 채웠던 사람들이 오늘 잭슨을 우러러 다시 배를 채운다. 잭슨에 대한 평가는 하루아침에 바뀌었지만, 정작 그를 둘러싼 세계의 동기는 변하지 않았다. 진심과 진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괴물은, 그렇게 우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