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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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펑크락'이 유형했던 시기가 있었다. 국내에서도 삐삐밴드나 이후 일부 아이돌 그룹들이 펑크락을 구사했는데. 펑크락은 맥락이 중요하다.

1.

한동안 록음악은 스튜디오 녹음기술, 전자기기 등의 발전과 더불어 그 사운드 스케일이 풍성해지다 못해 점점 난해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개인 테크닉의 절정인 기타 속주나 곡의 복잡함으로 달려간 프로그레시브록, 사운드의 웅장함을 보여주는 오케스트라 수준의 편곡들은 점점 대중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어느 순간 록밴드 자신들도 장르적 식상함을 느끼게 되었다.

모던, 얼터너티브에 이어 펑크록이 90년대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는 앞서말한대로 이전세대의 난해한 음악, 기교적인 연주의 식상함에서 비롯되었다. 연주의 대가들이 제대로 칠 수 있는 독주... 부분도 과감히 '연주하지 않고' 단순 코드만 심플하게 퉁퉁 퉁겨내고 보컬도 기교를 버리고 무성의하게 노래를 불러댔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 코드 진행, 단순 연주, 무성의한 보컬로 록음악을 펑크, 펑키 스타일로 변질시켰지만 그 이면에는 록의 이전 역사에 대한 '저항',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갈급함이 숨겨져 있었다.

재밌게도 이런 장르적 변화로 인해 록음악계는 이제 '개나 소나' 밴드를 하게 되었다. 이전 장르에서 록음악은, 고수들 실력의 향연이었다면 펑크는 기타만 칠 줄 알면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단순함'이 록음악의 외연을 키웠다. 문제는 저항의 의미로 실력을 보여주지 않던 이들과 원래 실력이 없어서 단순 연주밖에 못하는 이들의 혼재된 상황. 하지만 후자는 펑크의 유행이 다하자 자연스레 록계에서 사라져갔다.

2.
나는 개인적으로 경구류의 단문이나 알맹이 없이 글쓰기 자체를 논하는 글들이 불편하다. 경구의 경우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하거나 반대로 동의되지 않는 수많은 반론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경우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은 이것들이 대체로 '펑크록'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펑크록이 감동을 주는 건, 그 대상이 록음악이라는 무림의 고수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어떤 의도된 단순 코드는 그들(고수)이기 때문에 감동을 주는 것이지 '그들'이 아닌 이들이 연주하는 단순코드들은 그냥 '하수'들의 그렇고 그런 연주들에 불과하다. 같은 맥락에서 나는 습작을 하는 많은 이들이 경구 쓰기에 치중하거나 글쓰기론을 설파하는 것에 자주 아쉬움 내지는 유감스러운 마음이 든다.

베스트셀러 작가나 학계가 인정하는 고수, 아니면 '아브라함 링컨'(오늘은 초류향이라고 하려다 참음) 같은 위인이 아닌데 너무나도 당연하거나 혹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단문들을 쓰는 사람들에게 나는 좀더 열심히 자기 생각을 풀어쓰는데 시간과 정성을 들이기를 권하고 싶다. 차라리 문법이나 논리가 잘 안 맞더라도 성실하게 자신의 정서나 논리를 서술해간 글들이 나는 '사랑스럽다'. 그런 글들에는 그 '질'적 완성도와 무관하게 정말 애정이 간다.

20년을 감옥에서 복역한 신영복 교수의 '나는 걷고싶다'라는 단 한마디의 말이 영혼 깊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박범신 같은 작가가 기고한 짧은 칼럼으로도 그 이상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듯. 경구 한두줄의 힘은, 오랜 기간동안 성실함으로 갈고 닦아진 글과 삶의 궤적이 보장되어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내가 펑크록을 바라보는 씁쓸함의 이유이기도 하다.
2013/01/14 22:03 2013/01/14 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