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래 글을 쓴지 일년 만에 다시 고백할 게 하나 있다.
솔직히 몇년 전까지 나는 '여성 글쟁이'의 글을 즐기지 않았다.
그리고 대체로 그다지 잘 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뭐랄까 약간의 배려차원? 여성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인식,
여성을 도와야 한다는 또다른 차원의 , 여성폄하 혹은 맨스플레인이랄까.
의무감에 의한 봉사나 후원, 뭐 그런 마음이 전혀 없진 않았다.
.
2.
페미니즘 담론에 깊이 빠져들게된 최근 2-3년간
나는 독해의 방식, 담화자의 스탠스, 담론의 가치,
뭐 이런 거창하게 말할 수 있는 '읽기 습속'이 급속도로 변했다.
예전에 즐겨읽던 책들이 지루해졌고
책제목을 외우고 본문마저 인용하던 많은 책들이 시시해졌다.
반면, '희생과 봉사'의 심정으로 읽던 여성 저자들의 책들은
남성 저자 특유의 지식 도매상이 유통하는
'상품들'보다 더 본질적이었고
가벼운 주제에서조차 인간을 깊이 파고드는,
하지만 분석적이거나 파괴적이지 않은 스타일의 그 무엇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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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성 글쟁이'에 대한 내 입장 변화도 컸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게 만든 계기가 있었는데,
연초에 있었던 강헌 선생의 "음악사 속의 여성" 강의 덕분이었다.
사실 나는 강헌 선생의 스타일에서 약간의 마초성을 읽곤 했는데,
그의 강의에서 잠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마저 들었다.
역사 속에서 남성(성)이 해온 많은 것들의 허망함, 초라함, 어이없음.
뭐 그런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을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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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이야기의 끝이 기승전-여성, 여성짱,
뭐 이런 글을 쓰려는 건 아니다.
그저 여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편견을 경험하지 않은
남성의 입장에서 통용되는 지식,
통용되는 글쓰기 스타일, 통용되는 사회적 가치,
이런 것들에 대한 편견을 털어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그런 편견을 걷어냈을 때 얼마나 많은 다양성을 보게되는지
뭐, 그런 류의 이야기를 '새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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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오늘 <여배우들, 2009>을 봤다.
그 영화가 무언가를 계몽하진 않았지만,
그리고 그 영화의 내러티브에 어떤 암시도 없었지만.
그 영화를 보다가 문득 이런 글을 풀어내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http://myjay.byus.net/tc/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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