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의 이웃인가
/김용주 (예수가족교회)
모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정 뒤편의 길목에 한 젊은이가 쓰러져 있었다. 그의 팔은 뒤틀려 있었고, 지갑이 열린 채로 중요하지 않은 카드들만 주변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도 외진 길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폭행하고 지갑의 돈과 신용카드를 훔쳐간 모양이었다.
마침 한 교수가 세미나 장소를 가로질러 가기 위해 외진 길을 들어서다 그 젊은이를 보게 되었다. 이 교수는 조교수로 있지만 이 세미나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 정교수 혹은 부교수로 임명될 것을 약속 받은 터였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다 그 젊은이를 힐끔 보고는 누군가가 들으라는 듯이 소리치고 지나갔다. “술 취한 학생 아냐? 지금이 몇 신데 벌써!”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한 선교단체의 대표로 있는 간사가 그 길을 지나갔다. 그는 오늘 지부 선교단체 학생들이 모두 모이는 집회를 인도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차가 막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늦은 터였다. 평소 시간엄수를 중요하게 여기고 동아리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했던 이 간사는 이미 죄책감이 그를 누를 만큼 누르고 있는 터였다. 그는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다가 쓰러진 젊은이를 발견했다. 그는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보이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으며 젊은이 가까이에 가서 말했다. “젊은이, 지갑이 떨어졌어. 카드도 챙겨야 할 거 같네. 시간이 괜찮으면 집회에 오게. 복음에 관해 듣게 될걸세.” 그리고는 집회장소로 걸음을 재촉했다.
시간이 흘러 입회를 청하기 위해 주변을 서성이던 증산도 학생이 쓰러진 젊은이를 발견했다. 그는 놀라서 달려들어 그를 부축하고 나와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에 쓰러진 젊은이의 입원수속을 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으나 이 학생도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증산도에 가입하면서 집에서 쫓겨났고 자기가 아르바이트 하며 모은 돈으로 생활을 유지하던 터였다. 그는 은행에 가서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인출하여 젊은이의 입원 수속을 마쳤다. 그리고, 원무과 직원에게 혹 돈이 모자라면 이틀 뒤에 다시 주겠다고 얘기한 후에 다른 막노동 자리를 찾으러 나갔다.
위의 이야기는 기독교인을 위한 누가복음 10장의 비유이다. 우리는 대답할 지 모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증산도 학생이 사랑을 베풀 수 없다고. 설령 그 사랑을 잠시 실천할 수 있더라도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증산도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거짓된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이 진리를 행할 수 없다고. 내가 아는 많은 기독교인은 증산도 학생들을 ‘개’처럼 여겼다. 마치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을 ‘개’처럼 여기듯이.
우리는 이 비유 이후에 던진 예수님의 “누가 이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라는 질문에, 두 가지의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우리가 생각했던 자비와 사랑과 보살핌의 대상이, 그 이웃이라는 것이 교회의 범주를 넘어서며, 자신의 친분의 범주를 넘어서며, 지금 가장 급박하게 가난과 멸시와 고통으로 신음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 안에서 이웃을 우리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 세상을 단순히 영적 전쟁터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
혹은, 그렇지 않다면..
이를 갈며 ‘개’ 같은 증산도는 사랑을 베풀 수 없다고 생각하여, 비유를 들어 말한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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