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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IVF ‘6개대 사태에 대한 고찰(1)

 

/김용주

 

 

 

 

0. 들어가면서

한국기독학생회(IVF·대표 김중안)가 창립 50주년 기념행사가 11 4일 분당 할렐루야 교회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IVF의 전·현직 총무와 간사는 물론 학생, 학사, 이사들까지 5000여 명이 대거 참석했다. 그동안 ‘캠퍼스 복음화’와 ‘지성사회 복음화’를 기치로 내걸고 달려왔던 IVF는 지난 50년을 되돌아보며 감사와 회개의 시간을 함께 가졌다...(중략) 이어 한기수 이사는 "지난 '6개대 사태' IVF가 나뉘어지고 서로 상처받게 된 것에 대해, 이사들의 영적지도력이 부족하여 공동체가 하나 되는데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말해 행사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박지호 기자, <복음과상황> 194)

 

 

<복음과상황> 박지호 기자는 한국IVF 5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기수 이사가 ‘6개대 사태를 언급하자 행사장이 숙연해졌다고 전했다. 그간 IVF의 아픈 상처인 ‘6개대 사태를 언급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어왔지만 IVF의 공동체 훈련 과정에서 사건의 전말에 대해 언급을 하거나 세세하게 설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과연 ‘6개대 사태는 무엇이며 어떤 사건이었길래 이렇게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까지 언급되어야 했고 IVF 내부적으로도 커다란 상처와 회개의 이유가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지난 몇 개월간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고 이를 정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하여 ‘6개대 사태의 시시비비를 가리고 그 사건 자체의 상처들을 파헤치기 보다는, 6개대 사태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국내 정치적 상황과 한국 기독청년운동의 내부적인 문제들을 돌아봄으로써 진일보한 논의를 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고자 한다. 관련된 모든 분들이 만족할만한 자료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기록들을 정리함으로써 좁게는 IVF의 ‘사회참여’라는 이슈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하는 계기가 되고 나아가 프란시스 쉐퍼의 책 제목처럼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초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복음주의권의 사회참여 흐름

한국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에서 수입된 신학을 토대로 삼았기에 태생적으로 다분히 친미적이며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허나 북미 복음주의권에서도 새로운 변화들이 일기 시작했고 80년대 군부독재 상황과 맞물려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올바른 관점에 갈급했던 기독청년들에게 시나브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이것이 앞으로 언급하게 될 '하나님나라' 신학과 기독교 세계관으로 대변되는 총체적 복음의 회복이며 로잔 세계복음화 대회에서 채택한 로잔 선언또한 그 열매라 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을 정리함에 있어서는 주로 한동대 류대영 교수의 책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를 인용하려고 한다.

 

 

 

 

(1) ‘하나님나라기독교 세계관

류대영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80년대에 보수기독교인들조차 불의한 정권에 대항해야 한다는 고민을 시작했고 그 신학적 근거를 '하나님나라' 개념에서 찾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한국의 보수교회는 1980년대를 지나면서 전두환의 군사독재 횡포가 점점 더 심해지는 가운데 정교분리, 전도, 반공 동의 논리에 기대어 사회참여를 하지 않는데 대한 신학적 “명분”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구조적 악 앞에서 침묵한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누가 보아도 명백했다.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느끼면서도 마르크스주의나 진보적 신학에 기초한 참여이론과 방법에 동조할 수 없었던 일부 보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현실에 대한 참여를 동시에 보장하는 이론을 새로운 하나님나라 개념에서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한국 보수교회의 새로운 이해는 1970년대 이후 조지 래드, 헤르만 리델보스, 게하더스 보스, 안토니 후크마 등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견해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류대영,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당시에 한국교회는 개인의 영적 영역에 국한시켜 죄사함과 영혼 구원을 설파했고 정치와는 무관한 전도와 해외선교에 집중했던 상황에서, ‘하나님나라신학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현실에 대한 참여를 동시에 보장하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두 영역을 통합시키려는 방향으로 진일보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관심은 맑시즘에 기반을 둔 운동권 좌파와는 거리를 두되 현실 정치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답에 고심하던 한국 보수 기독교인들의 딜레마를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었다. 특히 북미의 보수적 복음주의자였던 반틸과 쉐퍼의 기독교 세계관저서들을 통해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인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이며 삶의 전 영역이 구원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확증함으로써 현실 사회참여의 근거들을 보다 견고하게 마련할 수 있었다.

 

 

“하나님나라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1980년대에 성행했던 “기독교 세계관 운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관심은 1970년대부터 번역되어 소개된 쉐퍼, 반틸 등의 저술과 손봉호의 강연집이 읽히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IVP)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출간된 세계관 관련 각종 책들은 신앙과 학문의 조화, 성경적 세계관 등의 주제를 복음주의권 대학, 청년들에게 부각시켰다. (류대영, 같은 책)

 

 

이러한 전향적 관점은 한국 기독청년 운동 깊숙이 전파되었고 이른바 총체적 복음의 정신은 - 복음전도에 힘쓸 뿐 아니라 사회악에 대항하고 소외계층의 현장에 그리스도인들이 성육신하는 것이 진정한 선교라는 - 1986 <대학기독신문> 창간사를 통해서도 드러나 있다.

 

 

1986 10월에 창간되어 1980년대 후반 보수 교회 젊은이들의 사회참여를 이론적으로 주도했던〈대학기독신문>의 창간사는 하나님나라와 관련된 신학적인 재발견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잘 알려준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제목의 창간사는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로서 자신의 전인격과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받고 “그리스도인 됨”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복음전도에 힘쓸 뿐 아니라 사회악에 대항하고, “다양한 소외계층의 현장에 그리스도인들이 성육신하여 선교”함으로써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대학기독신문>은 이것을 “복음의 육화", “하나님나라의 균형 있는 실현”이라고 정의했다. 하나님나라의 역사성, 복음의 총체성을 말하고 있었다. <대학기독신문>에 참여했던 복음주의적 젊은이들은 그들의 사회참여를 “참 인간해방운동”으로서의 “하나님나라운동”으로 정의하기까지 했다. (류대영, 같은 책)

 

 

 

 

 

(2) 에큐메니칼 운동과 복음주의

로잔 언약을 설명하기에 앞서서 에큐메니칼 운동을 짚을 필요가 있겠다. 1차 세계대전 후 기독교는 범세계적으로 교회 일치 운동이 일어났고 이 운동이 한 축에서는 세계 모든 교회가 협동하여 사회문제를 공동 해결하는 생활과 사업을 일으키자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에큐메니칼 운동에 소속된 교회들의 신학적 입장에 우려감을 표하던 복음주의자들은 그들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대회들을 추진하게 된다.

 

 

1942 NAE가 창설된 이후 1949년 복음주의신학회(ETS)가 결성되었고 1952년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가 창설됨으로써 복음주의는 보다 더 조직적인 운동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그런데 1960년대에 들어와 교회의 사회참여가 첨예화되었던 1961 WCC 뉴델리 대회, 특히 1968년 웁살라 대회와 1973년 방콕 CWME의 신학적 입장에 반대하여 복음주의자들은 독자적으로 세계대회를 개최하며 여러 복음주의 선언을 채택하였다. 예를 들면, 1966년 베를린에서 열린 복음전도 세계대회는 같은 해 WCC 제네바 '교회와 사회'(church and society) 세계 대회에 대응하여 개최되었고, 1974년 로잔 대회는 1973년 방콕 CWME에 대항하여 열렸으며, 1980년 파타야 대회는 같은 해 멜버른 CWME, 1989년 마닐라 대회는 같은 해 산 안토니오의 CWME에 대응하여 개최된 것이다. (‘에큐메니즘 A에서 Z까지’ 중 제13: 신옥수, ‘에큐메니칼 운동과 복음주의’, 193)

 

 

신학적인 차이 - 특히 칼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개념을 수용하고 신앙적 회심을 부차적으로 치부한 것 - 에 의해 WCC에서 분리되기는 했지만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 건전한 교리 위에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전도 사역과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에큐메니칼 운동의 긍정적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한다.

 

 

“중요한 점은 이들(복음주의자들)이 복음주의 운동의 정체성을 규명하고 그 한계를 지적할 뿐 아니라 에큐메니칼 운동의 흐름을 경계하고, 다른 한편으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였다는 데 있다. 이들 가운데 빌리 그레이엄이 주도한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LCWE(로잔세계복음화위원회)에는 교회의 사화참여를 강조하는 에큐메니칼 신학의 관점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으며, 이는 1989년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2차 로잔 대회에서도 계승되었다. 이들은 복음주의 대회 가운데 복음주의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가장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같은 책, 193)

 

 

 

 

 

(3) 로잔 언약

이렇듯 복음주의권의 독자적인 선교대회는 74년 로잔 대회에서 채택한 로잔 언약의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항목을 통해 사회참여의 중요성을 보다 가시화하였다. 당시 복음주의권의 젊은 지도자로 부상한 존 스토트가 초안을 작성했던 로잔 언약은 다분히 온건한 복음주의 진영 전반에서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교회의 동등한 의무로 상정한 이른바 총체적 복음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려 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하나님나라의 역사성, 복음전파의 총체성에 관한 복음주의 세계의 새로운 이해가 온건한 형태로 잘 반영된 것이 1974년의 로잔 언약이었다.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세계복음화 국제대회의 선언적 협약으로 영국의 성공회 신부인 존 스토트가 초안한 로잔 언약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신학과 가치관을 유지하면서도 변화하는 세계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노력이 담겨 있었다. (중략) 전체 15개 항목으로 된 로잔 언약의 제15항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참여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잘 설파했다. 하나님이 온 인류의 창조주요 심판자이기 때문에 인류를 모든 종류의 압박에서 해방시키고 정의와 화해를 실현하려는 그의 뜻이 온 인류사회에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따라서 언약은 그동안 이런 노력에 소홀했던 점, 그리고 때로는 복음전파와 사회적 관심이 상호 배타적이라고 여겨온 데 대하여 참회해야 했다. 또한 언약은 “사람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고 사회적 관심이 복음전파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구원은 아니다”는 단서는 달았지만 “복음전파와 사회, 정치적 개입 모두 우리 기독교인의 의무”라고 선언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나라의 의를 불의한 세상 속에 전파해야 하며, 구원이 “개인적, 사회적 책임의 총체성 속에서” 기독교인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5항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로 맺었다.” (남태일, 같은 책)

 

 

 

 

 

(4) 복음주의 진보세력의 성장

“로잔 언약은 국내에 즉시 알려졌으며 전통적 의미의 복음전파와 사회참여 사이에서 고민하던 보수적 기독교인들의 “숨통을 트게” 해주었다. 하나님나라를 사회참여와 관련하여 잘 정리했던 로잔 언약은 이전에 성서신학적 차원에서 하나님나라를 소개했던 개별 신학자들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와 아울러 로잔 언약을 주도한 스토트, 빠딜라의 책이 많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특히 사회참여적 청년들 가운데는 로잔언약을 비롯한 복음주의적 사회참여 선언들과 참여적 복음주의 신학자들을 공부하며 그 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류대영, 같은 책)

 

 

로잔 언약은 80년대 민주화 투쟁이라는 한국의 상황에서 보수기독인들에게도 사회참여, 나아가 정치적 행동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리를 제공해주었다. 이를 접한 기독인들은 복음주의 내부의 진보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를 낳았다. 특히 이후에 설명하게 될 기독교문화연합운동 '복음주의청년연합', 월간지 <복음과상황> 창간 멤버들에게 있어 로잔 언약의 정신이 그 이론적 토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복상의 발행인이었던 김회권 목사는 1985년 이승장 목사를 통해 로잔 언약이 전해졌음을 지적한다.

 

 

"이승장은 영국의 정통 복음주의 신학과 신앙, 그리고 로잔 언약 등을 한국에 소개하였으며 <복음과상황>이 창간되기 6년 전(1985) ESF 서대문 지구를 중심으로 <소리>라는 무크지를 발간하여 그 창간호에 1974년 스위스 로잔 연약의 '사회참여 조항'을 번역해 실었습니다. 로잔 언약은 6년 후 복상 창간의 신학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김회권, <복음과상황> "우리가 주창하는 '복음' '상황'")

 

 

이렇게 전파된 로잔 언약을 시작으로 복음주의권 사회 참여의 세 흐름, 즉 보수, 중도, 진보파의 입장들이 한국 기독인들에게 전해졌고, 그것은 한국 복음주의권의 진보세력을 구축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에 IVF 6개대에 속한 학생들은 지금은 널리 알려지고 공감대가 형성되었지만 당시에는 급진적 입장이었던 로날드 사이더와 르네 빠딜라의 사회참여 방향을 수용한다.)

 

 

세계복음주의권은 사회참여 문제와 관련하여 빌리 그래함을 중심으로 한 보수진영, 바이어하우스, 세계복음주의연맹 등의 중도파, 그리고 미국의 로날드 사이더, 아더 글래서, 인도의 비네이 사무엘, 남미의 르네 빠딜라 등의 진보파로 나뉘어져 갔다. 한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주로 보수파와 중도파의 영향을 받는 가운데, 진보적 입장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특히 빈부격차, 경제정의와 관련된 로날드 사이더의 기독교 윤리관은 손봉호에게 영향을 주었고, 상황화와 해방신학에 대한 하비 콘의 전향적인 해석은 이만열이 민중신학을 높게 평가하고 민주화 민중운동에 참여하는데 큰 격려가 되었다. 이들 진보적 해외 복음주의자들의 신학은 행동적 사회참여를 고민하며 모색하던 이문식, 박철수, 강경민 등 젊은 복음주의자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1986년에 조직된 최은석, 이승재, 박문재 등의 기문연, 이종철을 주축으로 그해 10월에 창간된 <대학기독신문>,1987 11월 대통령 선거를 맞아서 결성된 “공정선거감시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복음주의청년,학생협의회”,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1988 3월에 결성된 복음주의청년연합회 등은 모두 그런 영향의 구체적인 결실이었다. (남태일, 같은 책) (계속)

2012/10/12 07:47 2012/10/12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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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 전자책 시장의 이슈와 전망
: 기독 출판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킨들, 태블릿PC의 성공과 전자책 시장의 호황

전자책 시장이 들썩거리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 7월 19일에 매체를 통해 2/4분기 전자책 판매가 종이책 판매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지난 3개월간 판매 기준 1.43배로 전자책의 판매수가 높았고 지난 한 달로 좁히면 양장본 대비 1.8배 수준이다. 아마존은 이미 킨들2의 가격을 낮춘 데에 이어 이번에 킨들3의 가격도 파격적으로 낮추었다. 또한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판매로 전자책 시장의 파이가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앞다퉈 전자책의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이미 인터파크 '비스킷', 삼성전자 'SNE-60K', 북큐브네트웍스 '북큐브', 넥스트파피루스 '페이지원', 아이리버의 '스토리' 등의 전자책 단말기를 중심으로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전자책 시장의 경쟁이 시작되고 있으며 갤럭시탭과 아이패드의 국내 출시는 시장의 기대감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자책 시장이 콘텐츠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한번 구입한 전자책을 여러 다른 기기를 통해 활용할 수 있는 방안들이 마련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전자책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전자책의 성장은 미국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에서 시작되었다. '전 세계 언어로 된 모든 책을 60초 안에 제공하는 것'이라는 모토 아래 아마존은 2007년 11월에 킨들(Kindle)이라는 전자책 단말기(e-book 리더기)를 내놓고 전자책 시장에 본격 진출했고 이 단말기가 2008년에 50만 대 이상 팔리면서 성공적으로 출판 시장에 안착했다. 킨들의 성공에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는데 그중 첫 번째로 전자 잉크(e-ink) 기술을 꼽을 수 있겠다. LCD와 같은 액정은 쉽게 눈이 피로하고 햇빛 아래서는 가독성이 떨어지지만 전자 잉크를 사용한 단말기는 비교적 가볍고 배터리가 오래가며 가독성이 우수한 장점이 있다. 둘째로는 3G(3세대 이동통신 기술 규격)망을 이용한 신문 및 e북의 신속한 다운로드 통신망 지원이다. 이러한 통신망을 이용하여 어디서나 책이나 신문, 잡지 등을 단 몇 분 내에 다운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휴대가 용이하다는 점이다. (킨들은 광고를 통해 휴가지에서 여성이 한 손으로 킨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을 자주 부각시켰다.) 대체로 2G의 용량을 지원하는 전자책 단말기는 많게는 1,500~2,000권 정도의 온라인 도서를 저장할 수 있으며 가볍고 한 손으로도 조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성과 노인들에게도 각광을 받고 있다.

 

한국의 전자책 추이

국내에서도 킨들의 열풍에 힘입어 올해 들어 많은 기업들이 전자책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단말기를 중심으로 본다면 킨들의 상당 부분을 모방한 인터파크의 '비스킷'이 상당히 공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선 느낌이다. 비스킷은 LG에서 개발했으며 킨들처럼 키패드를 탑재하고 있으며 LG텔레콤의 3G망을 이용하여 책을 PC 연결 없이 구입하고 신문을 구독할 수 있다. 삼성의 SNE-60K는 와이파이를 지원하며 터치스크린을 지원한다. 북큐브도 와이파이 지원 및 사전 탑재하였고 아이리버의 스토리도 SD 메모리 확장 및 사전을 지원하며, 넥스트파피루스의 페이지원은 키패드 및 무선 기능 등을 없애고 가격을 낮춘 저가형으로 개발되었다. 하지만 단말기 시장은 점차 그 기능들이 개선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단말기의 사양(specification)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지날수록 전자책 시장의 관건은 단말기보다는 콘텐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교보문고는 이미 6만 8,000권 정도의 전자책을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 아이리버 등의 단말기를 지원하고 있다. 후발 주자로는 '비스킷'이라는 독자 모델을 개발한 인터파크가 2만 5,000종의 전자책을 내놓았으며 연말까지 10만 권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예스24와 알라딘은 <중앙일보>, 비룡소 등과 연합해 '한국이퍼브'라는 회사를 출범하고 지난 4월부터 온라인 서점을 통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북큐브네트웍스 역시 국일, 다락원, 대교출판, 푸른숲, 행복한책읽기 등 100여 개 출판사와 제휴를 체결하고 전자책 시장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업체들은 최근 독자적인 단말기를 통해 전자책을 보게 하던 폐쇄적 방식에서 구매한 추가적인 비용 부담 없이 PC와 휴대폰, 전용 단말기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보다 개방적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



계속되는 변화들

최근 들어 전자책 시장은 점점 규모가 커지고 그만큼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간판급 단말기 가격의 하락에 기인하고 있다. 미국 최대 대형 서점 체인인 반스앤드노블이 지난해 누크(Nook)라는 단말기를 3G버전은 199달러, 와이파이 버전은 149달러의 파격가로 시장에 뛰어들자 킨들은 즉시 킨들2를 그보다 10달러 낮은 189달러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국 2위 대형 서점 체인인 보더스가 코보(Kobo)라는 단말기를 150달러에 내어놓고 20달러 상품권을 제공하는 것으로 추격에 나섰다. 이에 아마존에서는 다시 킨들3을 킨들2와 같은 가격으로 출시하였다. 킨들 초기 버전이 400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 이하로 가격이 떨어진 셈이며 이러한 저가 정책에 힘입어 아마존의 전자책 시장은 2/4분기 실적에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업계에서는 조만간 100달러 수준으로 단말기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그만큼 전자책 시장의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단말기 중심의 전자책 시장에 또 다른 변화의 조짐도 있다. 검색 사이트에서 온라인 인터넷 솔루션의 표준으로 변모하고 있는 구글은 다른 회사들이 단말기를 중심으로 시장 진입을 시도하는 것과는 달리 자신의 주력 부문인 '검색'을 앞세워 구글북스(Google Books)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초기에 몇몇 대학과 협력하여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이미 구간 도서를 중심으로 700만 종의 종이책을 디지털 텍스트로 변환했다. 이 서비스는 절판된 책이나 저자의 허락을 받은 도서의 전체를 검색할 수 있으며 시판 중인 서적은 정보나 책의 일부분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구글북스 서비스에 출판사들의 반대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서비스가 가진 잠재력과 출판계의 파급효과는 실로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쯤 되면 실로 출판계의 디지털 혁명이라 할 만하다.



전자책으로 인해 기대되는 효과들

초창기 전자책 시장은 일인 출판과 같은 전자출판 자체에 관심이 많았다. 전자출판은 책 한 권을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디자인, 편집, 인쇄와 같은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출판사 고유 기능의 과감한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이미 아마존을 통해서 개인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책을 편집하여 출판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또한 2007년 킨들의 성공을 기점으로 전자책 시장은 비교적 충분한 양의 콘텐츠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가볍고 작은 단말기로 2,000권 이상의 책을 소지하고 여행을 다닐 수도 있게 되었다. 콘텐츠의 증가와 휴대성의 비약적인 개선이 생긴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원서를 보면서 사전 기능을 통해 단어를 실시간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3G망을 이용해서 버스 안에서도 신간 서적이나 신문을 다운 받아 읽을 수도 있다.

이미 알려진 효용 성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전자책에 대한 몇 가지의 이상적인 기대들도 있다. 먼저는 자본주의 시장의 원리에 의해 수지가 맞지 않아 미출간 혹은 절판된 많은 전문 서적들의 디지털 콘텐츠화이다. 책 한 권을 기획하여 상품으로 팔기까지 고비용이 드는 종이책 시장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지만 전자책 시장은 이러한 출판 시장의 자본 논리를 해체시키고 콘텐츠의 전문화, 다양화를 만들 수 있는 퍼텐셜을 가지고 있다. 둘째는 저장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글을 쓸 때 참고하려고 수집한 방대한 양의 종이책들은 부피도 크고 보관하기도 힘들다. 개인적으로도 글을 쓸 때 인용할 몇 페이지 때문에 보유한 많은 참고 문헌들은 이사할 때마다 그야말로 애물단지다. 그렇다고 그 참고 문헌의 페이지들을 모두 타이핑한다는 건 시간과 노력으로 볼 때 거의 불가능하다. 전자책은 이러한 참고 문헌 확보에 엄청난 이점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력한 검색 기능이다. 만일 전자책을 데이터베이스처럼 관리하고 그 콘텐츠를 검색을 통해 필터링 혹은 클러스터링(clustering)할 수 있다면 그 효용성 또한 클 것이다. 일례로 논문을 쓸 때도 관련 연구 논문 및 서적을 검색하고 검색한 논문들 중에서 내 논문 주제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것을 추려 내는 작업을 하는 데에도 적게는 며칠에서 많게는 몇 주 동안을 허비하기도 한다. 현대의 이슈는 방대한 자료들을 어떻게 체계화시키고 그것을 가지고 유효하고 가치 있는 정보들로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전자책은 이 작업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구글북스로 검색한 자료들을 3G망을 통해 단말기에 다운 받고, 단말기에 저장된 자료들을 즉시 검색어를 통해 분류하여 필요한 부분들을 정리해 두는 작업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변화로 리서치 논문 한 편을 쓰는데 드는 시간은 지금보다 현저하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전자책 시장의 장애 요소들

이러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전자출판 시장은 아직 장애 요소들이 많이 있다. 종이책 대비 전자책 콘텐츠 자체의 수적인 부족 현상이나 출판 업계의 미온적 대응, 대중의 종이책 선호 정서, 혹은 디지털 매체에 대한 반감 등을 전자출판의 장애 요소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DRM, 즉 디지털 저작권 관리(Digital Rights Management) 자체에 관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엄밀히 말해서 전자출판의 핵심 문제들은 모두 이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 문제로 귀결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마존은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시작부터 저작권 보호 기능이 적용된 자체적인 파일 포맷을 사용하고 있다. 아마존을 제외한 대다수의 업계에서는 전자책의 표준인 ePub 포맷을 사용하며 전자책 배포 시 자체 DRM 툴이 적용된 콘텐츠를 다운 받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DRM은 저작권 문제에 대한 기술적 해결책이지만 단순히 기술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보다 근본적인 몇 가지의 문제점을 야기한다. 첫째로 콘텐츠의 자유로운 복사, 인용, 배포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전자책은 DRM 툴을 통해 허가되지 않은 사용자나 단말기에서 전자 문서를 볼 수 없도록 콘텐츠의 열람을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보유하고 있는 전자책이라 하더라도 흔히 사용하는 텍스트의 전체 혹은 부분적인 COPY & PASTE가 불가하다. 단말기뿐 아니라 PC 상에서도 DRM과 연동되는 프로그램 안에서만 부분적인 추가 기능(책갈피, 밑줄 등)만을 지원한다. 이는 사용자가 손쉽게 콘텐츠를 가공하여 활용할 수 있는 자유를 막는다.

둘째는 DRM 툴의 적용에도 불구하고 전자책의 불법 복제 및 무단 배포의 가능성이 항시 존재한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출판업계가 우려하는 근본적인 문제점이기도 하며 이 문제는 이미 음반 시장에서 mP3 파일로 그 폐해를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는 첫 번째 문제와 어떤 면에서 모순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전자 콘텐츠의 DRM이 풀릴 경우 개개인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만 그 순간 수많은 고가의 전자책들이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어 출판 시장은 전자책을 통한 수익 구조를 흔들어서 결국 출판업계 자체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셋째로 저작권 자체에 대한 인터넷 서점과 출판업체 사이의 갈등이다. 이는 아마존과 메이저급 출판업체 사이에서 이미 문제가 된 바 있으며 구글북스와 저작자, 혹은 국가 사이에서 지금까지 협의 중인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정리된 바로는 전자 콘텐츠에 대한 판권을 종이책과 별도로 가져가게 되었으며 구글북스도 디지털 콘텐츠에 대해 저자와 저작권을 협의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는 점점 더 저자와 인터넷 서점 사이의 직접적인 협의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으므로 출판업계는 자신의 입지를 줄어들게 만드는 이 변화들을 마냥 환영할 수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오픈소스, 카피레프트 운동을 지향하는 그룹에서 저작권 자체의 허용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기독 출판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전자책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이미 90년대부터 시작되었지만 최근 아마존의 전자책 판매량 증가와 삼성의 갤럭시탭, 애플 아이패드의 등장으로 국내에서도 단말기의 개발과 콘텐츠의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기독 출판계는 이런 전자책 시장에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내가 알기로는 아무런 대응을 않고 있다. 비교적 시장의 규모가 큰 기독 출판계는 아직 전자책 시장에 대해 고민할 정도로 위기의식을 느끼지는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디지털 시장의 빠른 변화는 곧 콘텐츠 시장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물론 이는 기독 출판계에만 한정된 이슈는 아니다. 일반 출판업계도 대응이 미진하긴 마찬가지다. 대체로 전자책 시장 진출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앞서 언급한 여러 장애 요소들로 인해 선뜻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하는 것이다. 결국 현재 전자책 시장은 인터넷 서점과 같은 온라인 서비스업체에서 시장 선점을 위해 단말기를 앞세워 출판업계의 등을 떠밀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미 가속화된 전자책 시장은 그 미래를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곧 콘텐츠 시장의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독 출판 내지는 온라인, 오프라인 기독 매체들은 이에 대한 대응 전략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기독교 윤리 내지는 세계관적 접근이 필요한 DRM과 전자책 저자의 판권 문제 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이루어져야 한다. 문화 개혁 세력이라 자처하는 소위 복음주의 출판계는 매번 세상의 변화에는 뒷짐 지고 있다가 슬그머니 무임승차하려는 본성을 이제는 조금씩 고쳐 나갈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 <전자책의 충격>, 사사키 도시나오, 커뮤니케이션북스, 2010년 7월
- '전자책 춘추전국시대 최후의 승자는?', 임정욱, <시사IN> 147호, 2010년 7월 10일
- '출판계 e-book 열전' (1)프롤로그~(8), <파이낸셜뉴스>, ㈜한국출판콘텐츠, 2010년 2월 17일~4월 14일
- '출판·잡지·신문·이통사 헤쳐모여-콘텐츠 전쟁의 총아 e북', 송창섭, <한국경제매거진>, 2010년 2월 15일
- '출판사와 전자책 공생의 길', 한기호, <한겨레>, 2010년 2월 5일
- '출판 생태계 위협하는 디지털 도서관', 한기호, <한겨레>, 2009년 12월 4일
- '넌 종이책 보니? 난 전자책 본다', 한윤정, <경향신문>, 2009년 12월 3일
- '전자책 열풍, 아마존 킨들 성공 요인 무엇일까?(1)~(3)', <디지털데일리> 2009년 10월 22일~27일
- '디지털, 출판의 미래 바꾼다', 구본권, <한겨레>, 2009년 10월 16일
- '이머징 이슈; 책의 진화', 정지연, <전자신문>, 2009년 10월 1일
- '알아봅시다; 전자잉크', 김승룡, <디지털타임스>, 2009년 7월 22일
- '킨들 독서·신문 구독 문화 바꾸나', 김중태, <한국일보>, 2009년 6월 24일

2012/10/12 00:21 2012/10/1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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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복음주의 지성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 직장인 지성운동 사례
제목: 직장인 지성운동의 현실과 고민들 (설문을 중심으로)

/김용주


기독 지성운동에 대한 발제를 준비하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문득 주변 학사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이 참에 간단히 설문지를 만들어서 주변 학사들에게 설문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질문지를 공람시켰고, 그 결과를 가지고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기독지성운동의 현실과 고민들을 살펴보았다. 질문은 총 7개로 객관식 문항들이 많았으나 문항들에 구애받지 않고 기타 의견을 개진해달라고 주문했다.


1. 자신이 기독지성운동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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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실 이 질문은 직장인들이 본인을 기독지성운동의 주도적 존재로 느끼는지에 대한 의도로 던져 보았다. 다수는 그렇다라고 대답했지만 17명 중 4명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 4명의 직장인은 이후에도 기독지성운동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내는 답을 주로 하였다.)


2. 기독지성운동의 구성원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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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는 대학 졸업자가 기독지성인이라는 대답이 29%였고 무엇보다 기타가 51%로 가장 높았다. 기타에 대한 의견으로는 ‘기독지성에 대한 관심자’나 ‘스스로를 기독지성인이라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이들이면 누구나 기독지성에 속한다’고 답했다. 결국 다수의 응답자는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모두 기독지성에 포함된다고 생각하였고 응답자 중 29%는 학부 졸업하는 정도의 교육 수준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직장인 입장에서 기독지성 운동의 범위, 혹은 실천 영역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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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직장인들이 기독지성운동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한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주어졌으며 응답자들은 비교적 고르게 선택했다. 복수 응답이 가능한 관계로 기타가 27%로 가장 많았는데 기타 의견으로는 ‘삶의 전 영역’이 실천 영역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고, 이에 더하여 ‘보다 심화된 전문 영역에서 사역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4. 본인이 생각하는 기독지성 운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직장/사회인 입장에서)
여러 의견들이 있었지만 중복되는 답변들을 제외하고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았다.

 

 

A. 어떠한 사역이던지 기존의 방식이 아닌 더 나은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변화를 수시로 모색하는 것
B. 직장/사회인 입장에서 볼때는 과연 하나님이 나에게 무슨 일까지를 하시기 원하시는지를 살펴봐야 함. 이는 구별된 사회적(?)인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진 각자의 소명이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하는 문제로 연결되며, 이러한 가운데 진행될 수 있는 여러 활동들을 의미
C. 기독교 세계관에 부합한 직장 생활을 기본으로, 해당 분야에 대한 정부의 정책 혹은 각종 의견에 대한 기독교적 반응 및 전공에 국한되지 않은 이 사회의 전반적인 시대정신에 대한 기독교적 반응
D. 예수님이 삶으로 보여주신 정신과 가치가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삶으로 표현되고, 자연스러운 삶의 양식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하나의 삶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E. 교회 내에서 부족한 성경공부나 책나눔(소개)을 하고 가정 공동체에서 성경을 같이 보고 공부함
F. 세상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유지하고 삶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
G. 각 학문 영역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소망하고 실천하는 것
H. 기독교적 지성의 축적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속한 영역 (직장, 학교, 특정 조직)에서 성경적 관점에 맞게 살려고 하며, 그에 수반되는 지식을 끊임없이 배우고 고민하며 실천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것
I. 자신의 전문영역에서 성경적 가치관을 어떻게 적용시키며 변화를 이끌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며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연대하여 공동체적으로 사회에 대안을 제시

설문 결과, 많은 학사들이 삶, 일상, 실천과 같은 말들이 기독지성 운동의 핵심 단어로 중복해서 나타났다. 결국 직장인들에게 있어서는 기독 지성이 아는 것, 지식의 습득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적 영역에서 발휘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고, 전문 영역에서 더 나은 방향과 실천을 고민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일상, 삶, 실천에 있어 기독 지성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나 한계를 표현(‘지성의 축적에 머물지 않고’ 등)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5. 실제로 자신이 하고 있는 기독지성 운동 활동이 있는가?

A. 없음. (바뻐ㅜㅜ)
B. 없음!! 부끄러움!!!
C. IVF 수도권학사회. 관심영역별로 그룹을 나누어 성경적 가치관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있으며 갓 졸업한 학사들이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실제적인 움직임은 부족)
D. 성경과 신앙서적, 일반서적을 다양하게 읽으며 바람직한 세계관과 안목을 형성 및 공부 분야에서 적용점을 찾기 위해 모색 중 (인권법학회 구성 등)
E. 아기 엄마들과의 큐티모임. (성경적 육아교육에 대한 고민, 산후 위로 사역)
F. 신우회. 믿는 이들이 회사 내에서 모여 개인과 회사, 나라를 위해 중보 (모임이어서 관계의 한계성이 있음)
G. 교회 장애인예배. 소외된 자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나라를 위해 예배드림

학사들의 답변들을 보면 대다수의 학사들이 거의 활동이 없었고 그들은 이런 실천 없는 삶에 대한 고민과 부끄러운 마음을 비교적 많이 갖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IVF 학사회 모임이나 신우회와 같은 기존의 모임들을 참석하여 충전과 변화를 꾀하기도 하였지만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개중에는 장애인 예배로 봉사를 하거나 출산 후 엄마큐티 모임을 하는 학사들이 있었고 이런 모임들이 잘 발전되어 정착된다면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6. 기독지성 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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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독지성 운동의 장애 요소로는 ‘개인영성 회복만으로도 어려움’(31%), ‘바쁜 직장생활로 인한 시간할애 어려움’(24%)가 주된 이유였고 기타에서 ‘육아’ 등을 꼽는 것으로 보아 일상에서도 직장 생활과 육아 등 절대적 시간의 부족으로 인해 자기를 추스르기에도 바쁜 게 학사들의 현실인 것으로 보였다. 설문 대상이 주로 30대 전후반의 직장인들이므로 이들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기독지성운동 자체에 대한 회의감’(14%), ‘정보 지식의 결여로 인한 실천 저조’(14%)가 비슷한 수치였고 기타(17%)에서는 ‘롤 모델의 부재’를 꼽는 학사도 있었다.


7. 기독지성운동의 실천을 위해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같은 사역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모임
(교육부분도 그 안에서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B. 대학생들이 졸업하고 기성세대로 넘어가는 인생의 주요한 변곡점(취업, 결혼, 출산 등) 이후에도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묶어줄 수 있는 공동체
C. 시간(직장 생활, 육아 등으로 인한), 공간, 물질적 여유, 혹은 그것들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능력
D. 기독 지성운동에 대한 강력한 동기 부여
E. 비슷한 직종이나 분야 혹은 생활권 등에서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한 논의할 수 있는 시스템의 구축
F. 적극적으로 삶을 공유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필요 (빌라 공동생활 등)
G. 풀타임 운동가들과의 접점 마련

 


이 질문은 6번의 걸림돌 해결을 위한 방법을 물어본 것이었으나 의견이 분분하였다. 무엇보다 학사들 대다수는 ‘전문적인 정보나 삶을 공유할 수 있는 모임,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많았다. 그 외에도 현재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시간적, 물질적 부담에 대한 해소’가 선결 조건이라고 여기는 학사들도 있었고 기독지성운동 자체가 필요성이나 매력 자체를 잃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동기 부여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리하면서

1. 학사들의 설문 결과
설 문에 응한 이들이 특정 지부 학사들 소수에 국한된 관계로 통계적인 의미를 갖지는 못하겠지만 몇 가지의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학사들 다수는 기독지성운동을 학문 영역에 국한시키기 보다는 삶과 일상의 영역에서 기독교적 원리들이 작용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실천에 대한 나름의 의무감을 가지고 있는 반면 실제로는 그 열매가 미약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학사들이 기독지성운동을 하기 힘든 장애 요소로는 바쁜 직장 생활과 육아 등으로 물리적인 시간과 관심을 갖기가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삶과 괴리감이 있는 기독지성 운동 자체에 대한 회의감을 보이기도 했다. 기독지성운동을 위해 학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비슷한 직종, 분야 혹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주제 등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이나 공동체를 꼽았고 시간적 물리적인 문제의 해결도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기성 모임보다 한층 전문화되고 일상에서 실천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모임이 필요한 반면 실제 그러한 활동을 하기에는 여력이 없다는 것이 학사들의 현실인 셈이다.

 


2. 개인적인 생각을 보태며
직장을 다니는 학사로서 느끼는 기독지성운동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지난번 ‘기독지성 잡담회’에서 짧게 언급한 바 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30대 학사들은 일상에 허덕이고 있는 반면 학문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른바 변방의 고수들은 실천이 담보되지 않은 지성적 탁월함에 매몰되고 있는 듯 하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실제로 한국 복음주의의 윗세대로 꼽히는 손봉호, 이만열 이후로 한국 사회에서 이렇다 할만한 기독지성 운동가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중동 전문기자로 꼽히는 김동문 선교사, 법조계의 김두식 교수 정도 외에는 한국 사회에서 복음주의 기독 지성인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교수 그룹을 제외하고 일반 학사들만을 고려한다면 한국에는 ‘복음주의 학사 운동’이라고 할만한 토대가 전혀 없다고 평가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런 연유로 설문에서 보았듯이 학사들 중 일부는 자신이 기독지성 그룹에 속하는지조차 의문을 가지며 자연스럽게 기독지성 운동에 대한 무지와 회의감에 빠지기도 쉽다. 선배들의 선례나 롤 모델 자체가 없는데 후배 학사들이 어떻게 그 길을 개척해갈 수 있겠는가. 게다가 학부생일 때부터 이미 지성사회 복음화라는 모토 자체를 버린 IVF 캠퍼스 운동은 사회인이 된 학사들에게 지성 영역에서의 어떤 소명 자체를 심어주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안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30대의 가장 바쁘고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내 입장에서도 본이 될만한 대안을 제시할 자신은 없다. 따라서 대안이라고 하기엔 다소 부족한 몇 가지 고민거리들을 나누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1) 기독지성운동 자체의 회의적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 이는 개인적으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며 이러한 이미지는 점점 더 강화될 것처럼 보인다. 기독지성운동을 이끌고 있는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신학적 지식을 현실 세계에 발 딛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풀어내는 데에는 비교적 열심을 내지 않는 것 같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대변되는 한국기독지성운동도 학구적인 몇몇 대학원생, 신학생, 목회자들의 전유물로 탈바꿈되었고 그 현학적이고 난해한 용어들과 개념들로 인해 그 실천성을 경험하지 못한 많은 젊은 학사들에게 기독지성 자체에 대한 회의감만 증폭시키는 듯 하다. 기독지성의 훈련을 위해서는 많은 양의 독서와 성경연구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연구 자체를 불필요한 지식 습득이라 여기고, 아무런 교육 없이 직관적인 관심만으로도 기독지성운동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 학사들의 관점은 그간 지성운동을 이끈 나를 포함한 많은 선배들이 정작 실천 없는 ‘그들만의 리그’에 매몰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성을 하게 만든다.

2) 거대 담론에서 미시적, 일상적 영역으로의 기독지성운동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례로 진보진영의 운동들도 점차 이데올로기나 진영 논쟁에서 생태적인 관심과 교육, 먹거리 등으로 이슈들을 변화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 기독지성운동이 과거에는 정치적인 개혁세력으로 뭉쳤다면 이제는 보다 미시적인 일상과 삶 전반에 걸친 관심과 대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육아와 교육은 그 자체로 여러 영역(먹거리, 공정무역, 아동도서관, 입시, 대안학교 등)으로 확장 가능하므로 그런 부분에서 보다 전문적인 모임이나 연구 등을 통한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대형 할인점에서의 소비를 줄이고 생협이나 공정무역 제품 등을 구입하거나 제3세계 지역 어린이 일대일 후원 결연을 맺는 등의 후원 활동을 하는 것,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 봉사활동 등에 참여하는 등의 미시적인 삶의 근본 원리들을 돌아보고 그 적용점들을 나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3) 직장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수준의 온오프 모임 구성이 필요하다. 간혹 기독운동가들이 주최하는 모임들을 보면 주중 오후 시간이나 혹은 참여가 어려울 정도로 자주 모이는 등 직장인들이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수준의 것들이 대다수이다. 물리적으로 여건이 허락치 않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전임사역자들의 섬세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약자이다. 이들이 여러 모임이나 세미나 등의 지성운동에 참여할 수 없는 불편한 요소가 무엇이며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세부적으로 챙기지 않는 한 일반 직장인들이 기독지성운동의 한 축을 형성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므로 그들에 대한 적극적 배려가 필요하다. (끝)

2012/10/11 23:53 2012/10/1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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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느끼는 기독지성운동
/김용주


1. 현장, 30대의 일상이라는 전쟁터
대 학을 졸업한 지는 7년째이고 회사에 입사한 지는 5년째이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서 화성에 있는 직장에 출근하면 퇴근은 11시. 그래도 주5일제 시행으로 주말에는 쉬지만 연차가 올라가면서 늘어난 업무량으로 인해 그마저도 요즘은 여의치가 않다. 회사에서는 점점더 인원을 줄여가고 있으며 그만큼 축소된 인원으로 더 많은 업무를 감당시키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명예 퇴직을 권하며 선임연구원, 수석연구원으로 진급하는 인원도 극히 일부분이다. 정년이 그만큼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내에서 자기 개발이나 어학 공부, 혹은 성경 공부나 독서를 하려면 식사 시간에 끼니를 걸러야 한다. 책을 읽거나 글이라도 쓰려면 식사를 거르고 퇴근 버스 안에서라도 짬짬이 시간을 내야만 한다. 정년을 생각하면서 전세 대출금을 갚기 위한 돈계산을 해보면 지방으로 내려가지 않고서는 몇 년 내로 서울에서 작은 평수의 집은 커녕 대출금을 다 갚기도 쉽지 않을 성 싶다. 대기업 사정이 이러니 2차, 3차 협력업체는 더 열악하다. 일정이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상사의 지시에 의해 업체 직원에게 과도한 업무를 떠넘겨기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퇴사하는 젊은 업체 직원들도 많다. 급여는 대기업에 비해 적으면서 며칠 밤, 심지어 몇 달씩 야근에 밤을 새워야 하는 경우도 잦아서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최근 비슷한 연배의 동료나 친구들은 결혼을 했고 이제 아이를 낳기 시작했는데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삶의 모든 것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내는 임신 후 육아 휴직 등 사내의 껄끄러운 분위기 때문에 자신의 경력을 포기한 채 직장을 그만 두었고 출산한 이후에는 늦은 퇴근으로 육아를 돕지 못하는 나로 인해 육아에 부담을 느껴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요즘은 주변에서도 출산 후 바쁜 남편과 고부갈등, 육아에 대한 심적 부담감으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성들이 많아졌고 그러한 문제로 이직을 하는 남편들도 생겨나고 있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들의 경우에는 육아 도우미를 쓰거나 기관에 보내기도 하는데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이유로 기피하기도 하고 설령 그렇게 하더라도 드는 비용이 만만찮다. 요사이 육아 관련해서 알아야 할 것들도 많아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은 정보를 빨리 얻어야 좋은 부모가 된 기분이다. 이렇듯 육아라는 프로젝트를 놓고 부부 두 사람이 서로 동역자가 되어 이를 감당하고 있는데 직장에서 지칠 때까지 업무를 하고 있는 30대의 부모들은 이제 자기들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어둔 채 직장생활과 육아에 올인하며 이 시간들을 간신히 버티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도 이전에는 신앙서적도 꽤나 읽었고 사회 문제에 관심도 있었고 때때로 참여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도무지 수면시간을 줄이는 방법 외에 이런 일에 시간을 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대기업과 같은 제조업 관련 직종에게 국한된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직장의 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가 좀더 자라거나 직종을 바꾸지 않는 한 이 상황이 변화될 것 같지 않다.

 


2. 일상에 허덕이는 다수의 기독지성인들
IVF 시절, 내가 경험한 가장 큰 갈등은 선교단체의 방향성 문제였다. 내부적으로 길고 지루했던 논쟁도 있었고 암묵적으로 제재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갈등의 주요 원인은 이러했다. 나의 주장은 사회 참여의 문제를 학부 때에 사역 방향에 포함시켜서 총체적 복음을 회복하자는 것-이것이 내가 이해한 IVF와 복음주의의 방향성이었다-이었으나 지부 내의 분위기는 개인 영성을 먼저 다진 후에 사회에 나가서 각론을 실천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리더쉽 자체가 두 방향으로 분리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이후에는 IVF 외적인 일들-기연 활동, 총학 진출, 복음과상황 독자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졸업 후에는 지부 학사 모임이 있었는데 이제는 점점 그 모임 자체가 경조사 모임으로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며 주변 선후배들을 보더라도 졸업 후에 사회참여의 각론을 잘 실천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직장에서 기독인을 만나서 간혹 IVF 선교단체에 속했다는 말을 하면 여전히 어떤 기대감으로 나를 대하는 것을 종종 본다. 사실 지성사회 복음화를 모토로 내걸었던 선교단체의 일원으로서 나의 삶의 모습이 여전히 부끄럽다. 하지만 이것이 비단 나 개인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복음전도와 사회참여의 균형성 문제를 거론했을 때 캠퍼스에서 개인 영성에 집중할 것을 주장했다면 분명 졸업 이후에 사회참여 각론에 있어서의 어떤 방향성에 대한 지침 내지는 훈련의 장이 필요했을 법한데 IVF운동은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모델 제시나 훈련의 장 내지는 현장에서의 진지한 고민이 없었던 듯 하다. 학사회 모임도 여전히 실천을 담보로 한 어떤 운동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그저 파라처치의 OB 예배 모임 내지는 재활 교육 같은 느낌이 든다.

 

내 생각에 앞서 언급했던 현장의 문제들이 30대 직장인에게는 분명 커다란 부담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담임직 목회 세습 문제로 시위에 참여하거나 시청 광장으로 나가는 일에 있어서도 혼자 결정하고 시간을 내어 참석하고 신변의 위협을 느껴도 내 개인의 문제니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좋다는 책과 기사들은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꼼꼼히 읽어냈고 실시간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쓰곤 했는데 이제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시의적절하게 그런 일을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학부 때부터 철저하게 고민하고 관련된 논의들을 공부했어도 사회에 나가서 그러한 일들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고 실천해 옮기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 물리적 시간과 심적 여유가 많았던 캠퍼스에서조차 그러한 고민과 참여의 경험이 없는 다수의 기독인들이 갑자기 사회에 나가서 총체적 복음을 회복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길 기대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3. 변방의 고수들, 선지자적 방관주의
다 행히 특정 부류의 기독인들이 이러한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데 선교단체 출신의 신학도들이나 석사, 박사 과정 중에 있는 학생들, 주로 대학원생들이 이런 부류이다. 이들은 여전히 캠퍼스에서 고민했던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하고 있으며 어떤 사안에 대하여 최신의 자료들을 가지고 균형있고 시의적절하게 문제를 접근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들의 실천이 비교적 약해 보인다는 점이다. 어떤 기독 잡지 기자는 내게 교계에서 비판적인 글을 쓰는 몇몇 교수와 대학원생들을 거론하면서 그들의 이론에 진정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가 느끼기에 지성적인 영역에서 소리를 내고 있는 교계의 다수의 사람들이 비판적인 논조에만 그치고 실제로 그 문제의 현장에 뛰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 같다. 나 또한 이에 동의한다. IVF가 됐건 복음주의권이 됐건 간에 그간 지성사회 복음화를 부르짖으면서 어떤 현장에서의 실천이 전혀 담보되어 있지 않은 많은 담론들은 어떤 의미에서 지성적 탁월함 자체에만 매몰되어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과거의 낙선 운동이나 목회세습 반대 운동, 그리고 최근 IVF 출신 학사들이 하고 있는 러빙핸즈 같은 사역들에서 간간이 열매들이 파편적으로 나오고는 있지만 그것이 어떤 패턴이나 연결고리를 가지고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단회적이고 개인의 역량에 국한된다는 느낌을 자주 받곤 한다. 잘 찾아보면 주변에 지성 영역에서의 변방의 고수들은 많으나 그들의 이른바 선지자적 방관주의는 그들로 하여금 실제로 현장으로 내려와서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첫발을 내딛는 행위는 시도조차 않은 채, 헛딛는 교계의 행보들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일에 그치는 것 같다. 그리고 북미 중심의 기독교 이슈들과 출판물들에는 비교적 빠른 습득과 전파를 보이지만 한국적 상황에 대한 성경적 적용이나 토착화 문제, 그리고 외부에서 오지 않은 독특한 기독교적 관점의 생성에는 미흡한 면이 없지 않은데 이도 결국 돌아보자면 이론과 실천의 괴리가 한국 사회의 저변에 딸려 있는 상황들과 기독교 지성운동이 따로 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4. 참여와 연합을 꿈꾸며
직장인의 입장에서 졸업 후에 복음주의 운동, 혹은 지성사회 복음화 운동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학부시절 그렇게 존경하던 선배들이 학사가 되고 나면 수면에서 사라지곤 하는 일들을 보면서 실망도 많이 했지만 정작 30대로서, 직장에서 중간 직급의 위치에서, 그리고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조차 버겁고 힘들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매순간 하나님께 매달리고 기도하고 고민하게 된다. 이런 치열함 때문에 과거에 사회 문제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 기독인들이 이 시기에 어떤 교계의 중추세력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선교단체의 방향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그리고 여전히 이러한 현장의 무게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지성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인들은 한 발 물러난 위치에서 현장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에 머무르는 느낌이다. 이 두 부류는 운동성을 담보로한 어떠한 연결 고리도 가지고 있지 않아 보인다. 내가 학부시절부터 가지고 있는 소명은 복음주의권 안에서의 참여와 연합이다. 남들이 보기에 다소 무력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기독 직장인들은 나름 몸부림치고 있다. 이들을 실천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운동과 그에 대한 참여 방법들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끝)
2012/10/11 23:51 2012/10/1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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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의 이웃인가

/김용주 (예수가족교회)
 

모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교정 뒤편의 길목에 한 젊은이가 쓰러져 있었다. 그의 팔은 뒤틀려 있었고, 지갑이 열린 채로 중요하지 않은 카드들만 주변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도 외진 길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폭행하고 지갑의 돈과 신용카드를 훔쳐간 모양이었다.

마침 한 교수가 세미나 장소를 가로질러 가기 위해 외진 길을 들어서다 그 젊은이를 보게 되었다. 이 교수는 조교수로 있지만 이 세미나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 정교수 혹은 부교수로 임명될 것을 약속 받은 터였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다 그 젊은이를 힐끔 보고는 누군가가 들으라는 듯이 소리치고 지나갔다. “술 취한 학생 아냐? 지금이 몇 신데 벌써!”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한 선교단체의 대표로 있는 간사가 그 길을 지나갔다. 그는 오늘 지부 선교단체 학생들이 모두 모이는 집회를 인도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차가 막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늦은 터였다. 평소 시간엄수를 중요하게 여기고 동아리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했던 이 간사는 이미 죄책감이 그를 누를 만큼 누르고 있는 터였다. 그는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다가 쓰러진 젊은이를 발견했다. 그는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보이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으며 젊은이 가까이에 가서 말했다. “젊은이, 지갑이 떨어졌어. 카드도 챙겨야 할 거 같네. 시간이 괜찮으면 집회에 오게. 복음에 관해 듣게 될걸세.” 그리고는 집회장소로 걸음을 재촉했다.

시간이 흘러 입회를 청하기 위해 주변을 서성이던 증산도 학생이 쓰러진 젊은이를 발견했다. 그는 놀라서 달려들어 그를 부축하고 나와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에 쓰러진 젊은이의 입원수속을 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으나 이 학생도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증산도에 가입하면서 집에서 쫓겨났고 자기가 아르바이트 하며 모은 돈으로 생활을 유지하던 터였다. 그는 은행에 가서 자신이 가진 돈을 모두 인출하여 젊은이의 입원 수속을 마쳤다. 그리고, 원무과 직원에게 혹 돈이 모자라면 이틀 뒤에 다시 주겠다고 얘기한 후에 다른 막노동 자리를 찾으러 나갔다.

위의 이야기는 기독교인을 위한 누가복음 10장의 비유이다. 우리는 대답할 지 모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증산도 학생이 사랑을 베풀 수 없다고. 설령 그 사랑을 잠시 실천할 수 있더라도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증산도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거짓된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이 진리를 행할 수 없다고. 내가 아는 많은 기독교인은 증산도 학생들을 ‘개’처럼 여겼다. 마치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을 ‘개’처럼 여기듯이. 

우리는 이 비유 이후에 던진 예수님의 “누가 이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라는 질문에, 두 가지의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우리가 생각했던 자비와 사랑과 보살핌의 대상이, 그 이웃이라는 것이 교회의 범주를 넘어서며, 자신의 친분의 범주를 넘어서며, 지금 가장 급박하게 가난과 멸시와 고통으로 신음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사랑 안에서 이웃을 우리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 세상을 단순히 영적 전쟁터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것.

혹은, 그렇지 않다면..

이를 갈며 ‘개’ 같은 증산도는 사랑을 베풀 수 없다고 생각하여, 비유를 들어 말한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도 있다.

2012/10/01 07:38 2012/10/01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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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모처럼 한산하게 재즈 음악을 들으며
성하랑 피자를 시켜먹던 중.
카페 같은 분위기에 나른한 햇살을 맞으며
성하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피자를
먹여주고 있는데 아내가 지나가다가 말했다.
"너희 둘... 데이트하는 커플 같아."
...
...
성하야 성하야, 아빠랑 살자.ㅋㅋㅋㅋㅋㅋㅋ

 

 

'12. 9. 30

2012/09/30 23:46 2012/09/30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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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에게 칭찬스티커를 80장을 붙이면 장난감을 사주기로
약속했는데 어느덧 70장에 가까운 수를 모았다.
성하가 사려는 것은 변신합체 로봇. (반다이 제품 ㅠㅠ)
슬슬 준비하려고 검색해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리스트를 보다가 합체는 안 되지만 로봇이 3개가 들어있는

제품을 발견. 가격이 1/3정도 저렴했다.
흐뭇한 마음에 연습 조금하고 성하와 목욕하면서 물어봤다.
"성하야. 아빠가 알아봤는데 변신합체 로봇..."
"어!!!!! 변신합체로봇!!!!!!!!"

"만화에 나오는 로봇 3개가 같이 있는 장난감이 있더라.
근데 그건 변신은 안 되는데 3개가 같이 있구..."
"우와~"
"변신은 되는데 로봇이 하나밖에 없는 로봇이 있더라구..."
"..."
"성하는 어떤게 좋아? (우후후후...)"
"(단 한번 망설임도 없이) 아빠, 난 변신합체되는 한 개가 좋아."
"어... 어..."
"랄~ 랄~ 랄~ 어푸어푸... (물놀이 중)"
"알았어... 변신합체로봇..."
...
성실하게 스티커 80개 모은 아들에게 좀더 값싼 장난감 사주려는 나.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추가 비싸니 양배추로 김치먹으라는 정부와 닮았다는...ㅠㅠㅠㅠ
(성하야. 미안하다...)

 

 

'12. 9. 24

2012/09/24 23:45 2012/09/2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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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일거리를 집에 가져와도 그 일만 하고 자면 됐다. 원래 수요일은 퇴근을 조금 일찍 하는 편인데 오늘도 성하가 놀이터에 나가고 싶어 했단다. 엄마는 평소와 같이 아빠가 오면 같이 가라고 설득했고 성하는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집에오니 벌써 깜깜해졌건만 성하는 못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엄마가 아빠 오면 놀이터 가도 된다고 약속했다... 그래, 아이와의 약속을 쉽게 어기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평소엔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로 꼬시면 넘어갔건만 오늘은 얄짤 없다.ㅠㅠ 결국 나는 성하르 데리고 놀이터를 나갔고 친구들이 없는 놀이터 주변을 산책하다가 들어왔다. 이윽고 잘시간이 되자, 성하는 굳이 아빠와 자겠다고 했고 나는 다시 막 시작하려던 일을 접고 성하를 재웠다.

 

가끔 아이를 키워야 어른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육아 경험이 없는 청년들을 살짝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대론 내지는 나이로 젊은 사람들을 하대하는 느낌이 들어 반감만 높아지곤 했다. 아이를 키우면 다 어른인가, 철이 들고 매순간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아야 어른이지... 뭐 이런 생각.

 

성하를 키우면서. 아직 성하가 4살밖에 안 되었지만 그 아이로 인한 제약과 구속이 있다. 물리적으로 하루 세끼를 챙겨줘야하고 자주 함께 놀아야 하고, 안 자려고 버티는 아이를 재워야 한다. 유아 시기엔 자주 아파서 주말 약속을 모두 접고 잦은 감기나 기타 고열의 아이를 돌봐야 할 때도 많다.

 

부모가 정말 중요한 일임에도 그것에 열중할 수 없는 시간들이 생기고 그것을 일상적인 무엇으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일종의 없던 의무감, 책임감을 일상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삶에서 배우는 부분이 분명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는 성하르 재우고서도 일을 안 하고 이런 글을 쓰고 있단 말인가... 아.하.하.하. 발등의 불이 떨어져도 이런 글을 끄적일 줄 아는 대인배의 풍모... 그것도 나의 아름다움 아니겠는가. (뭐래는거야...ㅠㅠ)

 

 

'12. 9. 13

2012/09/13 23:45 2012/09/13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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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뒤끝작렬 아빠...(음 여자 아빠) ㅡ.ㅡ++
어제 성하 목욕시키면서 또 물어봤다.
"성하야 아빠 남자야 여자야?"
"(딴짓하고 물놀이하며 건성으로) 여자잖아."
"어... 아닌데 아빤 남잔데."
"아니거든! 나만 남자거든!"
...
이윽고 내 눈치를 조금 살펴다가 결심한 듯,
"아빠도 남자야. 남자 맞아." (혼자 끄덕끄덕하며)
"정말?"

그러나. 뒤이어 성하가 말하길.
"어. 이제 아빠도 남자고, 엄마도 남자야."
뭥미...ㅡ,,ㅡ;;;;;;;;;;;;;;;;;;;;;;;;;;;;;
...
그게 더 기분나빠...!!!!


'12. 9. 11

2012/09/11 23:44 2012/09/1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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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가 파워레인저 흉내를 내면서 쇼파위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총을 쏘면서 상상 속 괴물을
죽이며... 완전 몰입 모드 중 갑자기 소리쳤다.
"이야! 나는 남자거든!"
어린이집에서 여자 아이들과 놀면서 씩씩함을
과시할 때 하던 말인 듯 했다.

성하는 혼자 싸울 수 없으므로 자주 나에게 싸워
달라고 조른다.ㅋㅋㅋ 그래서 피곤하니까 조금만
싸우자고 달래고는 두 세번 정도 총칼을 가지고
'응대'해주곤 한다.

며칠 전에 싸우다가 나도 삘 받아서 진지하게
총도 쏘고 변신도 하고 안방에서 마루로 도망도
치다가 문득 성하의 표현이 떠올랐다.
"이야~! 아빠는 남자거든!"
그러자 싸우려고 따라오던 성하가 멈칫 서서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에게 말했다.
...
"아빠는 여자 아니었어?"
...
...;;;;;; 이건 뭥미...ㅠㅠㅠㅠ
"아니야. 엄마는 여자고 아빠는 남자야."
"아니야 엄마도 여자고 아빠도 여자야. 나만 남자야!"
...
아.... 뭔가 알았다. 성하에게 남자라는 게 뭔지...ㅠㅠ

 

'12. 9. 10

2012/09/10 23:43 2012/09/10 2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