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게도 내가 육아를 분담한다거나 가사 기여도가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면 주로 받는 질문이 있다. 맞벌이 하죠? 아내가 파트타임으로 일한다고 대답하면... 다시 묻는다. 그럼 아내는 집에서 뭘해요? -_-;;;
내가 '전담'이라고 했거나 '육아가사 기여도가 높다'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상황은 곡해되고 상대의 관심은 여지없이 아내의 잉여시간에 꽂힌다. 더 흥미로운 건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들도 똑같은 질문을 하더라는 거다. 대화를 하다보면 어느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고,,, 아내는 짬이 나도 안 되고 한시도 멍때리고 있으면 안 될 기세다.
사실, 주중 대부분의 가사육아는 아내가 챙긴다. 나는 퇴근 후에 아이를 씻기고 재운다. 주말에는 원칙적으로 내가 아이를 전담하고 짬이 나면 가사를 돕는다. 따라서 내 육아 분담 비율은 높으면 3:7, 낮으면 2:8 수준. 그런데 2~3의 기여도에 의해 자주 아내는 집에서 뭐하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move! move! 잠시도 가만있으면 안돼..) 그것도 여자들에게.
얼마전 길고양이가 상태가 안 좋아서 아내가 성하를 잠시 편의점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아내는 편의점 아주머니와 친하다) 황당했던 건 돌아오다가 동네 엄마와 마주쳤는데 그 반응이 <성하를 길거리에 내팽겨치고는 지 볼일 보고 온 엄마>취급 하더라는 거였다.
나는 자주 '여자의 적은 여자'라거나 '이이제이'(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제압함)같은 생각을 종종 해왔다. 그리고 그것을 자주 현실세계에서 확인한다. 나의 상식으로 남편이 육아의 일부분을 분담하여 아내에게 잉여시간을 만들어주면 주변 엄마들은 자신의 잉여시간을 만들 궁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잉여시간을 확보한 엄마를 한량 취급한다.
'엄마라면 한시도 자기 아이와 떨어져서는 안 된다', '아내라면 남편 밥은 차려줘야 한다', '딸이라면'... 안타깝게도 이런 윤리가 약자(여성)측에서부터 아주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대체로 강한 분노는 주변과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톱니바퀴에서 이탈한 사람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비난이 쏟아진다. '엄마가 되서는 쯧쯔..', '아내가 그것도 안 하다니..'
1억 로또 당첨된 사람보다는 주식으로 천만원 번 사람에 대한 질투가 크다. 그 결과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일도 열심히 안 하고 주식질이나 해댔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정치도 여야 정쟁보다는 진보당 내에서의 다툼이 더 잔인하고 치사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에서의 젠더 문제는... 갈 길이 멀다.(라고 쓰고 쫌 막막하다..라고 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