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Posted
Filed under 단문모음/단상
한 주동안 너무 피곤하였습니다. 특히 이번 주는 하루에 4시간도 채 못자는 날들이 많았던 지라 주말이 다가오자 부족했던 잠을 잘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했습니다.

"용주야, 너 토요일에 뭐하냐?"
"글쎄, 뭐 특별한 일은 없는데...좀 피곤하긴 해. 근데 왜?"
"아니, 별 일 없으면 토요일에 애들이랑 농구나 하고 밥이나 같이 먹게."
"그러지 뭐. 요즘 같이 놀아본 지도 오래되었는데..."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워낙에 좋은 녀석들이라 쉬고 싶은 마음은 접어둔 채 그렇게 말해 버렸습니다. 사실 녀석들에게 매번 도움도 많이 받고 항상 서로를 걱정해 주는 이 친구들을 만난 것이 그 동안에도 너무 감사했거든요.(^^)
키에 걸맞지 않게 농구에 약한 나이지만, 그래도 잘 해야 좋아하는 건 아니란 생각에.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피곤하게 또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토요일 아침을 맞았습니다.

일어나 보니, 시간은 30여분 늦어졌고, 도착 시간도 그 정도로 늦어질 것 같았습니다.
허둥지둥 옷을 챙겨입고 버스를 타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용주야, 어디냐?"
"이제 출발했는데 한 30분 정도 늦을 거 같아."
"그래? 그럼 오면 한마당 쪽으로 와~"
"알았어."

그럭저럭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도착할 즈음에 문자 메세지가 왔습니다.
'나  집에 간다"...허둥지둥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 이제 학교에 가는 길인데, 너 왜 집에 가니?"
"야이 자식아! 지금이 몇 신데 이제 오는 거야?"
"내가 한 30분 늦는다고 했잖아?"
"언제? 10분정도 늦을 거라더니...하여튼 나 집에 다 왔어. 학교에 애들 아직 있으니까 거기나 가봐."
"야, 그러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미안한 줄 알면 다음에나 잘해!"

갑자기 크게 잘못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은 학교를 올라가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지친 상태로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당에 가니 친구들 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호가 너 기다리다가 먼저 갔어."
"이제오면 어떻게 해!"
"미안해..."

그렇게 고개를 숙이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붙잡았습니다.

"하하하. 내가 집에 간 줄 알았지?"
"휴, 야 너 뭐야. 내가 얼마나 미안한 마음이었는지 알아? ...니들 짰구나?"
"너 오늘이 만우절인거 모르냐?"

우린 다 같이 웃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늦긴 늦은 관계로 운동은 못하고 바로 점심을 먹으러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리에 앉으려는데 갑자기 한 녀석이 케잌을 꺼내들었지요. 다들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습니다.

"생일 축하한다. 용주야!"

하하. 고마운 녀석들...가슴 한 구석이 뜨겁게 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친구들이 생일 선물까지 준비했다고 합니다. 눈을 감고 셋을 세면 눈을 떠도 좋다고 해서 셋에 눈을 떴습니다.

"하나, 둘, 셋!"
"윽, 이게 뭐냐?"
"하하하! 뭐 좋은 거 줄 줄로 알았냐?"

  순진한 나는 피할 생각도 못한 채로 케잌 세례를 받았습니다. 많이 준비한 친구들의 흔적이 역력한 자리였습니다.

"이래놓고 밥은 나더러 사라는 얘기지?"
"무슨 소리야? 생일 날 밥 한끼로 그냥 넘어가려는 거야?"
"그럼, 밥까지 니네들이 낼래?"

그렇게 농담을 섞어가며 축하도 받고 케잌도 먹고 서로의 사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럭저럭 시간이 지나서 집에 가려는데 또 다시 이 녀석들이 나를 잡았습니다. 용산에 가자는 것입니다.
일전에 컴퓨터의 ram 용량이 적어서 투덜댄 적이 있었는데 글쎄 이 녀석들이 그걸 용케 기억하고 있다가 오늘 용산에 같이 가기로 한 모양입니다. 다짜고짜 나를 끌고 용산에 가서 지네들이 가게마다 들어가서 가격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냥 사자고 하는데도 마치 자기 일인 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더 싼 곳을 없나 알아보더니, 가장 적절한 가격에 64메가짜리 램을 제 손에 쥐어 주고야 말았습니다.

"자아식! 빨리 가서 보드에 꽂아보고 싶지? 빨리 가봐! 성공하면 우리 집에 전화해."

함박 웃음 지으며 집에 돌아와서 ram을 꽂고 컴퓨터를 돌려보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전화를 걸었습니다.

"야, 잘 된다."
"용주는 좋겠네! 아무튼 축하한다. 생일도 그렇고 컴도 그렇고."
"오늘 너무 고마웠어. 그럼 월요일에 보자."
"그래, 좋은 주말 보내~"

요즘은 마음이 좀 우울했었습니다. 일도 많았고 삶도 즐겁지 않아 보인 적도 많았습니다. 특히, 새로 시작된 나의 삶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집에서 컴퓨터를 보며,  얼굴에서 나는 크림 냄새를 맡으며, 감쪽같이 속이긴 했지만 리얼했던 친구의 화난 표정을 떠올리며...
친구들이 나를 향해 외쳐주었던 고마운 말 "생일 축하한다!"을 되내이며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광고 속의 대사 같지만 정말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2000/04/02 18:21 2000/04/02 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