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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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영문법 학문연구기
중고등학교시절 나는 영어신동이었다.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겐 나름의 룰이 있었다. 당시 일반학생들은 이해하기쉬운 맨투맨 기본영어를 공부했고 공부를 쫌 잘한다 싶은 애들은 성문기본영어를, 겁나 잘하는 애들은 성문종합영어를 공부했다.

나는 당빠로 성문종합영어를 중학교 때부터 보고 이해하는 영어신동이었던 거시다! 따라서 나는 S(주어) V(동사) O(목적어) C(보어)의 위치에 따라 문장의 형식을 완벽히 맞췄고 남들이 어려워하는 '독립분사구문' 문장도 척척 맞춰내는 능력자였다.

따라서 영어시험에서 점수를 잃는 일 따위는 나와 무관한 저급한 학생들의 문제였고 나는 구름위를 날듯 영어 과목에서 항상 우위를 선점하던 시기를 한동안 구가했다.

그러나(급전환 모드)... 당시 나는 실제로는 New England를 "새로운 영국"이라고 번역하는 수준의 영어공부생이었다.



제2기: 단어왕 및 독해왕기
성문종합영어파들은 괄호 안에 들어갈 변형, 이를테면 원동사를 주면 형용사형으로 변환할지 부사형으로 변형할지, 조동사+have PP로 넣을지를 기똥차게 맞추는 능력자들이었지만 실제로 뉴욕타임즈나 미쿡서적들을 단 한 줄도 번역하지 못하는 도메스틱파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영어신동이던 나는 그런 일본식 영어공부의 문제점을 간파했다. 그래, 일본에서 수입된 일본식 영문법을 공부해서는 본토 영어를 이해할 수 없구나. 시험문제를 다 맞춰도 영어 한줄 번역 못하니, 오호 통재라. 그런 낙심을 하던 차에 국가는 입시를 수학능력시험으로 전환했고 수학능력시험에는 수학만 나오지 않고 영어도 나오고 국어도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런데 내가 간파한 영어공부의 문제점을 국가도 간파했던지 영어 시험은 독해의 비중을 엄청 높였고 급기야 5문제나 듣기시험도 보게 만들었다. 그때 나를 비롯한 영어신동들이 교재를 바꾸기에 이르는데 그때 불같이 번진 교재는 바로 이찬승 박사의 능률영어 씨리즈. 과학적 영단어 암기비법과 함께 리딩튜터라는 걸출한 학습지를 내놓은 능률영어사의 교재들은 입소문으로 순식간에 영어신동들 손에 들리게 된다.

고2 시절. 능률영어사의 도움에 힘입어 하루 100개의 단어를 외우고 20-30개의 독해본문을 풀며 입에 단내나게 영어를 연마한 나는 급기야 고3 수능시험에서 일본식 영문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영어만점의 영예를 누리지만... 입시에는 낙방하고 2지망 대학에 안착한다.

그러나(다시 다크포스 스멜)... 당시 나는 실제로는 미국사람을 만나면 "암... 엄..." 수준의 회화를 구사하는 영어공부생이었다.



제3기: 본격 솰라솰라-기(이른바 회화가능시기)
중고등학교 6년을 영어를 연마한 학생들이 어메리칸을 만나면 단 한마디도 못하는 상황에 대해 학계는 여러가지 추론을 해왔다. 동방예의지국에 사대주의 정서도 있는지라 대화를 주도하기 보다는 경청해서 그렇다느니 동양인들은 내성적이라 자기 표현에 약하다느니 나름 난리BLUES였다.

허나 그간 영어의 문제들을 척척 극복해온 신동이 입장에서 볼 때 그런 학계의 추론들은 개소리였다. 영어신동인 내 입장에서도 미쿡사람이 솰라솰라 하면 80% 이상이 안 들렸다. "씨바... 뭐래는거야..ㅠㅠ" 수능 영어만점에 빛나는 내가 이정도니, 이건 국가의 명예 측면에서 보더라도 내가 솰라솰라를 못알아듣고 말도 한마디 못한다는 사실은 정말 국익에 반하는 행위가 아닌가.

그래서 영어신동의 영어회화 학원 탐방기가 시작된다. 처음 학원에 가자 상담실에서 언니가 물었다. "미(국)인 회화반을 원하시나요?" 조금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기왕이면 미인이면 좋죠." 아놔... 그 때 언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저넘은 시골마초임에 분명하다'는 눈빛이었음.)

어쨌거나 나는 이 시기를 회화학원에 돈퍼주기, 갖다 바치기...시기로 칭한다. 또한 이때를 갠적으로 내 멘탈에 대한 미국문화강점기로 칭한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할 수 있다면 닥치는대로 뭐라도 할 거 같았다. 그래서 나는 회화반 선생이 자기네 친구들이랑 밴드연주한다는 미국인 클럽에도 따라가서 음악도 듣고 미쿡선생님 친구들과 술마시며 내가 원어민의 일원처럼 보이면 겁나 흐뭇해하던 시기를 보냈다. (그 시기에 나는 술취해서 횡설수설하는 미쿡사람 첨봤다. 그 와중에도 나는 술주정도 명확히 듣기 위해 음주를 자제하고 귀를 쫑끗 세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씨바.)

집에서는 비디오 틀면 자막 안보이게 TV 아래부분에 마분지를 붙여놓고 헐리우드 영화 눈에 단내나게 봤다. 미쿡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꿈도 꿀 정도였다.-_-;;;;; 언어란 게 참 재밌어서 영어를 배우려던 나는 미쿡 문화를 통째로 거의 흡수하다시피했고 나는 햄버거에 콜라를 먹으며 원어민의 삶을 동경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뼈속까지(투더코어~) 친미....처럼 보였다.(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럴 듯.)

그러나(다시 다크포스 스멜)... 휴학 후 나는 영어 침체기에 빠진다. 내게 있어 휴학기는 내 인생 최고의 폭풍독서시기로 정의되는데 그 때 불온서적 참 많이 읽었다. 뼈속까지 친미가 되어가던 내가 빨갛게 물드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두둔.



제4기: 침체기, 이른바 진보주의자 시기
폭풍독서기에 섭렵한 책들은 노암 촘스키(노안 아니고.), 하워드진과 같은 진보 지식인의 책들과 국내에 열풍이 분 안티조선운동의 멤버들, 이를테면 강준만, 진중권, 고종석, 김규항, 박노자 등의 책들을 흡수하던 시기. 오리엔탈리즘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등등 빈 대가리에 채워넣으면 넣을수록 우리 미쿡 친구들이 마구마구 싫어지던 시기...라 할 수 있겠다.

유학 준비 때문에 3-4번 갔던 미쿡땅도 그리 달갑지도 않았고 거기서 본 디즈니랜드, 유니버셜 스튜디오, 라스베가스 등등. 다 나쁘게만 보였다. (당시에 나를 봤다면 미국에 간 북한사람 같은 느낌이었을거다. 미국에 사시는 이모가 현지 가이드를 해주셨는데 당시에 결례를 많이 했다. 이모는 개고생하고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들으셨으니... 이모, 죄송합니다. 흑흑)

어쨌거나. 자연스레 미쿡에 대한 반감이 내 영어사랑에 제동을 걸었고 점점 영어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 (사실, 그런 맘도 있었다. 영어공부 할만큼 해서 나... 이정도면 됐지 않나. 영어회화만 5-6년 했는데 뭘 더 바래. 뭐 이런 생각?) 유학에 대한 기대치도 비슷하게 줄어들어 결국 대학원도 국내로 들어간다.

예전에는 미쿡사람만 보면 반가워서 겁나 말걸고 싶고 내 영어가 잘 먹히나 확인도 받고 싶은 충동이 컸는데(아... 창피하다) 그 시기에는 미쿡사람만 보면 왠지 내가 아는 지식을 다 동원해서 앵글로색슨족들을 까대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그래서 간혹 미쿡사람 길 물어보면 가르쳐주고 나서 "여기는 한국이니 니가 한국말을 배워서 물어봐야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흠흠... 그거 영작해서 외우느라 30분 정도 걸렸다.ㅋㅋ)

그러나(다시 다크포스...예감) 세상은 나에게 영어를 하라 하네...의 시기가 왔으니. 직장을 알아보다보니 영어점수를 내야 했고 나는 머리털나고 첨으로 토익을 봤다. 나의 영어신동의 기량을 보여줄 시험이라 여겨서 나는 건곤일척의 마음으로 시험을 봤다. 한달뒤 나온 점수는 695점이었다. 뭥미!!!!!



제5기: 토익시험 쪽집게 추종기
토익시험을 본 첫 인상은 그러했다. 일단 2시간 내도록 달려야 하고 화장실도 못간다는 규정? 지침?이 왠지 더 내 오줌보를 자극했다. 그리고 리딩파트는 인간적으로 너무 문제가 많아보였다. 눈알을 이경규처럼 굴려야만 시간내에 다 풀수 있겠거니 싶었다. 영어신동의 자체 평가와 달리 내 근방에 있는 사람들은 문제를 다 푼 사람도 있었다! 뭐야 너도 신동이야?

그런데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뭐라고 이야기하는데.. 글쎄 확 꽂힌 말이 있었다. "야... 진짜 다 나오지 않았냐? 나 반은 그냥 다 맞췄어." 허걱. 뭔소리야... 씨바 지금 문제 사전 유출이라도 했다는거야.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가방을 싸는 척하며 내 온갖 기를 모아 그들의 대화를 줏어들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린 사람의 이름...이 있었으니. 이름하야 김.대.균...

집에가서 유사 인터넷검색사의 실력을 가진 나는 겁나 뒤져봤다. FTP 사이트며 웹하드, 대학원 연구실 네트워크...

유.레.카.

한때 김대균이 토익을 평정하던 시기가 있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김대균이 유명해진 데에는 영어공부에 대한 그의 정공법과 더불어 꼼수가 공존함을 아는 사람은 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김대균은 거의 매달 토익시험을 봤고 그는 시험문제를 외워서 나오기를 거듭한다. 그가 깨우친 토익의 맹점이 있었는데 2달에 한번은 전세계적으로 치는 시험이지만 격달로 치는 시험은 그렇지 않아서 대체로 문제은행에서 뺑뺑이를 돌리는데 한국이 경우 그 전년도의 같은 달 문제가 절반 이상 출제됐다.

몇년을 시험을 친 김대균은 그 패턴을 알아챘던 거다. 그래서 2월에 시험을 치는 수험생들에게 전년도 2월에 출제된 문제들의 상당수를 알려줬고 그 문제를 풀어본 수험생들은 토익시험장에가서 자기가 아는 문제가 절반이 나온 토익시험에서 2시간을 여유있게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그뿐이 아니다. 김대균은 토익시험에서 선호하는 답들을 DB화 해서 그 패턴을 알려줬다. 이를테면 "답 중에 instead가 있으면 그게 답이다" 뭐 이런 식이다.

물론 김대균은 이런 꼼수보다는 정공법을 더 강조했다. 본인도 그렇게 정공법으로 영어공부를 했기에 지금의 베스트셀러 선생이 된 것이고. 지금은 김대균 덕분에 토익시험도 자체 시험패턴들을 모두 바꾸었다. 허나 그의 꼼수가 사실 사람들을 모았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다. 어쨌거나.

나의 식어버린 미쿡사랑과 김대균의 꼼수가 절묘하게 어울려서 나는 토익시험을 겁나 잔대가리 굴려가며 봤다. 내가 입사하기 직전에 받은 토익점수는 800점 정도. 정확하게 기억은 안난다. (나중에 더 얘기하겠지만 나는 영어를 공교육+사교육 토탈 10년을 공부했다. 내또래들이 공감할지는 모르겠지만 참 웃기는 일 아닌가. 뭐하나를 10년 공부했으면 거의 박사끝내고 포닥하고 있을 시기인데 말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그 점수로 회사를 들어갔다. 문제는 다시 발생하는데. 교육받을 때 사무실 배치받으면 적극적으로 의지를 보이라고 겁나 세뇌교육 시킨다. 나도 사무실 배치 받고 눈에서 레이져 뿜으며 대기하고 있는데 사수님이 물었다. "김용주씨 영어 잘하나?" 나는 질문이 뇌로 올라가기도 전에 대답했다. "네 잘 합니다." 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 이후로 나는 1년간 독일업체와 기술용역에 쓰임받게 된다.



제6기: 기술고문 응대시기~현재
독일 업체와 용역이 시작되었고 그날이후 '영어잘하는 신입사원'이 된 나는 신입사원인데 회의 때마다 끌려가서 회의록을 작성하고 파란눈의 아저씨들에게 업무적으로 말도 해야하는 위기일발...마징가...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문제는. 내가 하는 말에 따라 업무의 범위가 결정되거나 책임소지가 뒤바뀌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는 점. 특히 용역 계약서를 받고는 며칠을 혼자끙끙대야 했다. (영어잘하는 신입사원인데 계약서의 업무분장을 어떻게 하기로 한건지 도통 이해가 안 되더군. 검은 건 글씨요 하얀건 종이로다... 아하하하하하)

특히 기억에 남는 일화. 업체선정을 앞두고 업체들이 제대로 자료들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사수의 지시에 따라 위협적인 메일을 보낸다. 오늘까지 자료 안 주면 업체 선정에서 배제하겠다는 게 메일의 내용이었다. 다소 무시무시한 선언을 하자 현지 출근시간이 되자마자 업체 부사장이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근데 윗사람들은 퇴근한 상태였고 급기야 내가 전화를 받았다.

헬로 아이엠 솰라솰라.. 바이스 프레지던트 어쩌구... 니 메일 잘 받았다... 자료 바로 보내주면 우리 안 짜를거냐.. 뭐 그런 이야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일단 독일에서 직통전화가 온 게 당황스럽기도 했고 책임질 사수나 윗분들이 없이 내가 부사장이라는 사람과 통화를 해야하는 상황도 ㅎㄷㄷ인지라. 허나 영어신동이자 영어잘하는 신입사원인 내가 아마추어같이 보이면 안 될 터. 여유있게 이야기를 재확인한 후 이야기한 내용을 내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으니 메일로 다시 보내달라, 처리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업체 선정에 짤릴까봐 걱정했는데 내 대답에 한숨 돌린 눈치였다.

근데 전화를 끊기 직전 나도 모르게 익숙하게 튀어나온 말이 있었으니 "thank you for calling."... 니가 전화해줘서 고마우이...ㅠㅠ 메일로는 너 기한 어겨서 짤리게 생겼다고 위협해놓고, 전화로 아,,, 전화해줘서 참 고맙습니다...라고 하니. 그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전화기에 대고 와하하하하하하...하고 웃었다. 그러고는 "you. are. welcome"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마치 한국사람들은 땡큐-유어웰컴 구문이 도식화되어 있다는 걸 비웃기라도 하는듯.-_-;;;;;;

뭐... 그 외에도 머리를 쥐어뜯을 만한 일화들이 참 많이 있으나 과감히 삭제하고. 요즘은 기술용역, 기술고문 관련해서 간헐적으로 회의가 있다. 나는 영어도 잘 못하면서 영어잘한다고 떠들어댄 관계로. 아직도 끌려들어가는 편이다.

근데 이제는 좀 게을러져서 그런지 점점 영어가 콩글리쉬가 되어간다. 긴장감이 떨어져서 그런 부분도 있겠고 예전에는 유창하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면 지금은 업무진행상 책임소지나 회의록 상에 명확하게 정리되는 게 중요하다보니 '말' 자체를 잘 하고자 하는 부분의 비중이 다소 떨어졌달까.

물론 아마 우리의 외쿡 아저씨들은 내가 영어 겁나 못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얼마전 회식자리에서 파트장이 나를 소개하며 "영어를 잘하는 친구"라고 말했는데 외쿡 업체 아저씨의 표정이 묘했다. 아마 "Do you?"라고 하고 싶었을거다.ㅠㅠㅠㅠ



작가 후기
결론적으로 나는 영어를 10년, 그것도 꽤나 하드트레이닝을 했음에도... 지금도 영어가 딸린다. 예전엔 스트레스였는데 지금은 또 딱히 그렇지도 않다. 원서를 보는 게 여전히 불편하고(지금은 아예 안 보는 편)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 "뭐라고 주절대는거야"하며 이해 못하기 일쑤다.

내 영어공부기는 그런 문제의식에 대한 자기희화화이다.ㅡㅡ;;; 영어신동... 사실 무늬만 그런거다. 10년간 영어를 했는데 중고등학교 때는 시험도 잘봤는데 영어를 대체 뭘 잘한다는 건가. 그렇다고 영문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회화도 따로 공부해야 했고, 토익은 토익대로 꼼수로 공부하고. 참 웃기는 일이다.

한편으로 영어를 언어의 하나 정도의 위치로 놓자는 의견도 있다. 그냥 의사수단의 하나이지 않냐... 의사소통만 되면 되는거지 넘 열올려하지말자... 근데 언어는 그 나라의 문화와 직결된다. 우리에게 영어란 무엇인가는 우리에게 미국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예전 노트를 정리하다보면 영어공부 노트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그때마다 내 머리속이 참 복잡하다.

아, 이 길었던 애증의 영어공부기여...(끝)
2012/01/20 18:34 2012/01/20 1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