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세계의 오지나 전쟁, 대지진, 전염병 등 재난의 현장에서 자발적인 무상 진료 활동을 펼치는 쿠바 의사들의 인도적인 의료 지원은 유명합니다. ‘아픈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는 모토 하에 지난 45년 간 101개국에 무려 10만 명이 넘는 쿠바 의사가 파견되었답니다.
대지진의 현장에서 반년 넘게 천막 진료를 하고 있는 의사나 한 번의 진료를 위해 몇 시간 동안 밀림을 헤치고 걸어가는 의사나 그들이 바라는 보상은 간단합니다. ‘의사가 친절하고 좋다’는 말만 들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거지요.
그렇지요. 의사에게 ‘친절하고 좋은 의사’라는 말보다 더한 보상이 어디 있을라구요. 선생님에게 ‘졸업하고도 계속 보고 싶은 스승’이라는 말만큼 짜릿한 보상이 또 있을라구요. 부모에게 ‘나는 엄마 아빠가 참 좋아’라는 말 이상의 보상이 다시 있을라구요.
모든 혁명의 처음이 그런 것처럼 본래 인간의 모든 행위와 관계는 본질적이었을 겁니다.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영양 공급으로 비만을 초래하는 식탁처럼 자꾸 넘치는 욕망 쪽으로 몸을 기울이다가 종래에 알맹이는 없고 덧대기만 남아 있는 형국인지도요. 특별히, 인간의 모든 관계에서는 본질을 꿰뚫는 쿠바 의사같은
‘혁명가 정신’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출처]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본질|작성자 혜신이
오늘 정혜신의 그림 에세이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본질을 꿰뚫는 혁명가 정신의 '본질'이라는 것이 친절한 의사가 되는 것, 졸업하고도 제자가 찾아오는 스승이 되는 것, 그리고 자녀가 좋아하는 부모가 되는 것이라는 점에 이제는 크게 동의가 되었다.
사실 청년기에 나는 거대담론에 빠져 있었고, 세상을 변화시키자는-그것이 '종교'적인 의도에서건 '진보'라는 잣대에서건 간에-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포부가 크면 클수록 사실은 본질적인 부분보다는 인정받고 싶은 허영과 공명심에 취해 있었던,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욕구가 존재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인격적인 관계에서 오는 원초적인, 그리고 본질적인 동기가 사람을 진정한 혁명가로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가 장애를 가진 이들에 더 관심을 갖게 되듯이 사람을 대하면서 갖게 되는 단순한 기대와 소망들이 사실 우리 안의 본질적인 혁명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글은 <작은 도서관 운동>을 처음 시작한 최해숙 관장님의 인터뷰 글이었다. 이 운동을 하게된 계기를 묻자 그 분은 이렇게 말했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 교사로 일을 해서 아이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손자를 돌보면서였다. 내 아이들이 자랄 때에는 생계를 위해 은행에서 일하느라 아이들을 내 손으로 직접 키우지 못했다. 손자들이 생기자 ‘도대체 무엇을 위해 남에게 아이들을 맡기면서까지 일을 했나.’하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손자만큼은 온 정성을 다해 키우고 싶었다.
책을 좋아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육아일기를 꾸준히 썼다. 아들을 키우면서 썼던 육아일기는 며느리에게 선물로 주었다. 손자를 3년 반 키우면서도 자연히 일기를 쓰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손자에게 책도 많이 읽어주었다. 그러던 중 꾸준히 구독하고 있던 <새가정> 잡지에서 어린이를 위한 좋은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 잡지를 통해 어린이도서연구회라는 부모들의 모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고, 아이를 위해 좋은 책과 나쁜 책을 선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책을 내 아이들에게만 읽힐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읽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잘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다른 아이들도 같이 잘 자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민간 어린이 도서관은 아마 내가 처음으로 시도했을 것이다. 큰 비전을 보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좋은 책을 골라서 읽혀야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했다.
(출처: 주간기독교 인터뷰 내용 중에서)
'내 아이를 잘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다른 아이들도 같이 잘 자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은 도서관 운동>을 시작한 최해숙 관장, 그리고 ‘아픈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는 모토 하나로 세계를 누비는 쿠바 의사들. 나도 이러한 작은 혁명을 꿈꾸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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