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그에 대해서는 지금도 공중파를 통해서 연일 그의 삶을 조명하는 내용의 방송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나는 예전부터 그를 좋아했고 대통령 선거 때도 그를 뽑았다. 그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선의로 받아들였으나 집권 후에는 다소 실망한 감이 없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과 갈라섰던 대목에서 나는 민주당에 잔류했던 추미애를 더 높이 평가했고, 이후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은 채 진행된 한미FTA 협정에서는 그의 정치 철학을 뒤집는 듯한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런 때문인지 이번 검찰 조사에서도 노무현에 대한 실망이 그리 크게 생기지는 않았다. 항시 권력 주변에는 자신이 원치 않아도 비자금이 어떤 식으로든 생길 수 있으며 그 금액조차도 미미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굳이 사법처리하겠다는 데에 나는 반대였지만, 진보적인 이들이 MB를 겨냥하고 법대로 집행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반드시 사법처리하라는 이들의 말을 굳이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돌연 목숨을 끊었다. 조사를 받고 나온 날 기자들을 향한 어색한 웃음을 뒤로 한채 고향 봉하마을에서 생을 마감했다.
대다수는 그렇지 않으나 간혹 주변에서 노무현과 그의 죽음에 대한 비판적인 말을 듣는다. 그 중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비판은 그 주변이들에게 한(恨)을 남겼다는 점이다. 그의 죽음이 권양숙 여사와 그 자녀들에게는 한국 정치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가져다 주었을 것이고, 그들이 어느정도 연루되었었기 때문에 그 마음의 상처를 씻어내기 힘들 것이다. 유시민을 비롯한 그의 측근들도 아마 남은 삶을 살면서는 현 정권에 대한 분노의 정치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러한 분노와 비극의 화살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던지는 것은 그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일 것이다. 마치 벼랑 끝에 내몰고 나서도 떨어지지 말고 버티길 명령하는 것처럼. 그것은 목숨을 뒤흔들어 놓고도 혼들리지 말라는 요청에 다름 아니다. 노무현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대통령직을 잘 보존했다지만 그는 어떤 의미로든 자신의 진의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힘들어하는 여린 존재였다. 냉정한 정치판에서 눈물을 보이기 일쑤였고 자주 흥분했으며 말을 삼킬 줄 몰랐다. 그런 그를 국민들은 지지했고 때론 크게 실망했고 이제는 결국 그런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생의 마지막 며칠은 병원에 입원을 권유받을 정도로 우울증이 심해 보였고 기력이 없어 보였으며 심하게 자주 스스로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를 둘러싼 많은 조력자들을 하나둘씩 단지 노무현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구속에 들어갔고, 점차 가족들에게도 그 수사망을 좁혀 압박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비난의 잔을 그는 피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그의 마지막 죽음을 놓고도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지만 나는 그의 죽음이 여린 그가 견뎌내기에는 너무 가혹한 방법으로 그를 몰아세워갔고 이 비극이 그가 벼랑끝에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정이었다고 느낀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를 만들고는 잘못을 했으니 그것을 달게 받고 끝까지 견디라고 하는 것이 과연 그에게 우리가 요구해야 했던 도덕성의 본질이었던가.
나는 마음이 아프다. 그를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전직 대통령이 아닌, 인간 노무현이 너무 안타까워서 매순간 현기증이 난다. 봉하마을에서 그의 원대로 농사를 지으며 말년을 보낼 수는 없었을까. 정부가, 검찰이,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그를 심판하고 싶었던가. 그를 지지했건 그렇지 않았건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를 애도할 것이다. 그의 생전에 그의 비판적 지지자였던 나도 그를 가슴에 묻어야겠다. 권양숙 여사의 말처럼 이제는 더이상의 고통없이 편히 쉬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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