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상황] 회색지대 보고서(1): 술 문화 보고서 (2003. 2.)
/김용주
<조금 긴 도입부>
대 학 졸업을 앞두고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수도권 대학의 공대출신이라는 “간판”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복학을 하면서 나는 선교단체의 리더 생활을 시작했고, 한양대 기독학생연합회의 문서팀과 “복음과 상황” 독자모임에 비중을 두게 되면서 다소 분주한 대학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3학년 말 즈음에 학교의 기연 쪽 일을 하던 후배들이 총학생회 진출을 결심하고 도움을 요청하면서 나는 다시 대학의 말년까지 도서관에 앉아 선거를 위한 정책을 짜는데 시간을 보냈다. 사실 처음부터 나는 우리가 총학생회 진출에 실패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복음주의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자칭하는 선교단체 학생들이 무기력한 애완동물처럼 양육되고 그렇게 타성에 젖어가는 모습에 심한 좌절감을 느끼던 터라, 역량이 부족해 보이긴 했지만 캠퍼스에 대한 소망함을 가지고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후배들에게 큰 감동을 받아 결국엔 그들에게 ‘코’가 끼고 말았다. (전에 연재된 “약간은 도발적인 캠퍼스 보기”는 그런 몸부림으로 경험한, 거시적인 관점으로 본 캠퍼스 생활의 결과물이었다.)
나는 어떤 행동을 하기 이전에는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스스로가 사회에 나가기에 준비가 덜 되었다고 느꼈다. 물론 분주한 생활로 인해 학업에서 부족한 부분이 생긴 면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주변 신앙의 선배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90년대 중반 학번이다. 80년대 대학 문화가 운동권 문화였다고 한다면 90년대 초반은 변질된 운동권에 대한 회의감을 가진 학생들이 생겨나는 시기였고, 90년대 중반은 그 틈을 타서 신세대니 X세대니 하는 말로 대학생들에게 운동권 문화를 단절시키게 만들고 소비문화를 조장하는 시기였다. 그렇게 캠퍼스는 문화창조의 주체에서 소비문화의 주체로 돌변했다. 이제껏 대학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마치 나를 따르라는 식의 거시적인 이야기들을 해온 나는 졸업과 함께 잠시 멈춰서야만 했다. 아직 내 주변에서 도전이 되고 본이 되는 선교단체 출신의 선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선교단체의 선후배들이 운동 중심의 대학문화에 회의감을 보이고 있으며, 로잔 언약이 천명한 사회참여라는 이슈가 더 이상 우리의 상황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게다가 몸바쳐 공동체에 헌신했거나 뭔가 변화를 위해 캠퍼스에서 열정을 불태웠던 선배들은 냉엄한 사회의 현실에 직면하면서 생존을 위한 노력에 몸부림치고 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이제 사회인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직장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막상 그들에게 정죄의 화살을 돌릴 일도 아니다. 생존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서론이 길어졌다. 전문성의 개발과 바른 사회인의 모델 제시를 위한 준비를 위해 대학원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났다. 전에 나는 어설프게나마 직장생활도 했고 공장에서 막일도 했다. 지금은 대학원에 있으면서 학회 사무직 일도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학업을 계속하고 있으면서 학부생들을 가까이에서 피부로 접하고 있다. 나는 캠퍼스와 사회의 중간, 즉 ‘회색지대’에 있는 셈이다. 문득 양쪽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지금 내 위치가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정부분의 한계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과 거의 동일한 경험을 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각인된 경험들을 보고서로 작성하고 그것을 가지고 같이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기대를 갖기 전에 절망부터 하라는 복상의 논객 Gramsci님의 말처럼, 나는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닌 이 어정쩡한 위치에서 절망으로부터 시작했다. 언젠가는 희망을 가질 날이 올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기쁜 맘으로 중간 다리 역할을 해 볼 마음을 먹었다. 이번 달에는 내가 경험하는 회색지대의 술 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연재를 시작하려고 한다.
<술 문화 보고서>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있는 것이 신입생 환영회다. 나는 흔히 ‘사발식’이라고 불리는 신입생 환영회의 신고식을 한 마지막 학번이 아닌가 싶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게도 난 당시에 건강이 좋지 않아 신고식을 치르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기독학생들이 많았던 터라 그 이후로도 최소 1년 동안은 술 문제로 신앙적인 고민을 했다. 개중에는 신고식을 하는 것을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하는 것처럼 여겨 정색을 하고 선배들에게 기독인임을 ‘선포’하는 친구도 있었고, 애교로 유연하게 넘기는 친구들도 있었다. 술과 신앙은 별개라며 사발을 마시고 술에 취해 정신을 잃는 친구도 있었다. 신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딱히 말해주는 선배도 없었다. 신입생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기 때문에 지금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편이지만, 당시에 나는 술에 대한 정리된 ‘행동지침’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실했다. 오죽하면 선교단체에 가입하면서 처음 배운 귀납적 성경연구 방법으로 혼자서 하루 종일 공부했던 주제가 “술”에 관한 것이었겠는가!
‘노아는 처음 포도주를 마시고 실수를 범했으니 술은 악한 거야.’
‘근데 예수님은 처음 이적을 행하실 때, 왜 굳이 물로 포도주를 변하게 하신 걸까.’
‘시편에는 술에 대해 좋게 쓰여 있군.’
‘사도 바울은 술 취하지 말라고 했는걸.’
지 금도 대략 기억이 나는 이와 같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나름대로의 행동지침을 마련했다. 사실 고민은 많이 했었지만 학교에 있을 때에는 술자리로 인한 큰 문제는 없었다. 주량이 센 면도 없지 않았고 자기 관리에 어느 정도 철저한 편이었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술을 먹지 않았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술에 의지하려는 유혹을 사전에 배제하자는 의도였다. 게다가 외향적인 성격으로 인해 분위기를 중시하는 술자리에서 내가 술을 마시고 안 마시고에 주변 선배들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휴학 이후부터 생겼다. 휴학을 하고 공장생활이 시작되면서 막일을 하는 공장 노동자들과 술자리가 잦았다. 그 자리는 고된 노동을 마치고 술로 삶의 위안을 삼는 자리인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저씨들이었고 또한 인정(人情)이 많은 분들이었다. 그 분들 사이에서는 술자리에서 모든 회포를 풀고 자신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 개입하려면 술자리에 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때로 나는 그런 술자리가 좋기도 했다.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때론 마누라 얘기, 때론 자식 얘기를 늘어놓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찌든 삶을 씻어내는 정화의 기운마저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이 분들의 음주가 과하다는데 있었다.
술 취하는 게 죄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이 분들은 항상 필름이 끊어질 때까지 마시려고 하기 때문에 난 그 점이 항상 불편했다. 이들에게서 구별된 자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것인가. 결국 술 취한 자들을 정죄하는 자로 남는 것이 복음인가. 며칠을 고민하다가 예수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후에 난 그 분들과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그 분들이 주량을 넘기려고 하면 난 자주 부드러운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오늘 애들 선물 사가지고 일찍 들어간다면서요. 이제 그만 마시고 일어납쉬다!”
<접대 문화 그리고 여성에게 불리한 술자리>
술 자리의 또 다른 문제는 접대이다. 지금은 기업들이 선진화(?) 되어가고 사람들도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보다 강해지고 있어서 덜 한 편이지만, 회식이 있거나 접대를 위한 술자리는 좀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지금도 여전히 공대출신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선후배 간에 군기를 잡거나 술자리에서 술을 강권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회사에 있는 분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 업무시간에는 바쁜 일정 때문에 별 다른 얘기를 못하고 그저 딱딱한 분위기에서 일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직장선배가 딱딱하게 느껴지고 선후배 간에도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저녁 술자리에서는 그 냉랭했던 분위기가 사라진다. 사내의 구조는 선진화가 되었어도 그 안의 사람들은 80년대 공대출신인지라 술 몇 잔을 기울이다 보면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나오기 마련이며, 그 때 하는 얘기는 공과 사를 넘나들며 오히려 정작 중요한 업무 얘기가 술자리에서 오고 간다. 나아가서 중요한 결정을 그 자리에서 내리기까지도 한다! 공대출신이 술을 마시는 분위기는 좀 묘한 구석이 있는데, 그건 돌아오는 술잔들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초반에 취해 버리거나 술을 안 마시는 직원은 중요한 정보를 얻는 데에서 제외되는 일도 생긴다.
또 이런 직장도 있었는데, 접대를 하는 경우에 술뿐 아니라 단란주점은 물론, 마지막 코스로 사창가에 까지 함께 가야 하는 일도 있다. (여기에서는 나도 갈라서야만 했다) 물론 이런 짜증나는 술 문화는 강준만 교수의 지적대로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부터 내려온 한국 사회의 ‘유산’이며 많은 부분이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회사에서 생활을 하게 되면 심각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대학교 때와 달리 여전히 사회에서는 술 자리에서 여성이 버티는 것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술이 취하면 여성에게 실수를 하는 일이 많았다. 가끔씩 대학 교수가 자신의 지도 아래 있는 여자 대학원생을 술자리에서 희롱하는 경우가 있다는 기사를 간간이 보게 된다. 여성들의 직장 내의 성희롱에 대한 의식과 목소리가 높아진 부분도 있겠지만, 일단 기사로 사건을 접하게 되는 경우 상당히 흥분하게 되는 일도 실제로 술자리에 있어보면 다반사이다. 주로 나이가 많은 상사들은 부하 직원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가 많고 술자리에서는 더더욱 욕지거리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술이 조금씩 취할수록 이야기는 여성들이 듣기 거북한 음담패설로 이어지며 그러다가 옆에 앉은 여직원의 무릎에 손을 얹는다거나 손을 잡고 심지어 포옹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여직원이 당혹스러워할수록 사람들은 즐거워하며 흥청거리는 가운데 분위기는 묘하게 돌아간다. 분명 술자리가 미쳐서 돌아가는데, 대다수의 남자 직원들은 묵인하며 애써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기 일쑤다. 사실, 이런 경우가 가장 힘들다. 이런 꼴 보지 않으려면 회식을 피해야 하는 건가 또 고민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또 다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내가 결정한 선택은 누군가에게 상사에게 술을 권하게 하고, 여직원이 험한 일을 당하기 전에 빨리 귀가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누군가는 미쳐 돌아가는 술자리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부산하게 움직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소금이다.
<폭탄주는 고약하다!>
여러 경험을 하고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는 다시 대학원에 들어왔다. 다시 맞이하는 신입생 환영회. 또 다시, 신고식이 있었다. 교수님과 삼촌 뻘 되는 선배들 사이에서 폭탄주가 돌았다. 옆의 형에게 물어봤다.
“형, 신입생 환영회는 언제 끝나요?”
“네가 쓰러져야 끝나.”
“…”
여 러 가지 방법으로 신입생들에게 술을 권했으나 한 가지만 소개한다. 흔히 뉴스에서 보는 술이 이것인데 조그만 잔에 양주를 채운 후에 맥주가 담긴 잔에다 그 양주 잔을 담근 후에 위를 막고 잘 섞이도록 흔든 후에 후배 앞에 올려 놓는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데, 그 폭탄주는 정말 독했다! 스스로의 주량을 아는 나로서는 이걸 두 잔만 더 마시면 취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신문지 상에 간혹 폭탄주를 마시고 지하철에서 사고로 숨지는 신입사원들 기사가 나오는데 폭탄주는 정말 취하라고 마시는 고약한 술 문화임에 틀림 없었다. 이번엔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신입생이 쓰러져야 끝난다고 했으니 취하기 전에 쓰러져서 자는 척했다. 주변 신입생들에게도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쓰러져야 끝난대.”
<마치면서>
이 글을 읽으면서 당혹스러워하는 이들도 있을 줄로 안다. 직장에 있으면서 경험해 보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미 술 문화의 부정적인 부분이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체험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혹 지금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본인의 술자리에서의 대응을 불편해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순결한 길로 가지 않았다. 술 문화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게 나의 선택이었고 지금 나는 그 기억들을 쓴다. 나는 대부분의 불신자들에게 술 문화가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서 하나의 무시할 수 없는 문화라면 그것도 변화하고 개혁되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했다. 당혹스러운 일도 많았고 처음엔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난감하기 그지 없는 일들도 많았다. 이렇게 이야기들을 나열한 것은 이런 분위기들에 대해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좀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행동지침들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어쩌면 나의 개인적인 선택일 수 있다. 나는 술을 어느 정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아는 몇몇 친구들은 맥주 한 두 잔만 마셔도 취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는 술을 권하지 않는 게 옳다. 그리고 되도록 술 권하는 자리는 피하는 게 옳다. 그리고 술 자리가 편하지 않은 이들은 일부러 술 자리에서 고통 받으며 분투할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술 자리가 아니어도 세상을 파고들 수 있는 길은 많이 있다. 술 문화는 무시될 수 없다 해도, 다른 많은 문화 중 하나일 따름이다.
추가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술을 처음에 어디에서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되도록이면 기분이 좋을 때에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어른과 마시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술은 아버지에게 배우라는 말이 있는 듯 하다. 주변 사람들을 보더라도 처음 술 버릇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 술버릇이 들면 끊는 것이 오히려 낫다. 처음에 가까운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이성을 잃고 잘못된 폭력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술을 마실수록 난폭해진다. 그런 경우에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제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경우에 결혼 후에 폭력을 행사할 확률도 다분히 높다. 한편, 실연의 아픔을 달래려고 술을 마시는 이들도 있다. 술은 위로가 되지 못한다. 술 기운에 위안을 얻고 그것을 의지하려는 생각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오히려 묵상과 기도가 유익하다. 술을 도피처로 생각하지 말고 문제에 올바르게 직면하는 것이 그런 경우에는 현명하며 더 남자답고 멋진 행동이다.
부디 독자들에게 잡글이나마 도움이 되는 “술 문화 보고서”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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