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 릴레이에 관한 짧은 생각.
이 릴레이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막연하게나마 아이스버킷 릴레이와 유사하게 3명을 지명하는 트렌드를 따르는 것 같고, 나도 최근 페친들을 통해 이 릴레이를 간간이 접하고 있다. 주변을 보면 릴레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분들도 있고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들, 자신의 생각대로 다소 변형하여 동참하는 분들, 이 정도로 나뉘는 듯 하다.
내 생각을 간단히 말하자면 나는 감사를 공적 릴레이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해 우려감을 갖고 있다.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흔히 주변에서 가끔씩 자신 혹은 주변에서 일어난 성공이나 다행스러운 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어하는 분들을 본다. 당연하다. 우리는 범사에 창조주에게 감사할 수 있고 또한 마땅히 그래야 한다. 오늘 먹은 맛있었던 식사나 만났던 친구와의 행복했던 대화, 자녀의 건강, 나아가 명문대를 입학하거나 큰 돈을 벌거나 치명적인 질병에서 낫거나 가족에게 경사가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그것이 성도에게 혹은 대중에게 드러내 놓고 하나님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릴만한 일인지 따져볼 필요도 있는 부분이다. 누군가의 자녀는 명문대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었다면 명문대에 낙방한 부모는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릴 수 없다. 열차 사고나 공공장소에서의 위협에서 누구는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만 누군가는 그냥 목숨을 잃기도 한다. 누군가의 가족은 병에서 회복되지만 누군가의 가족은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실제로 4월 이후로 우리의 주변은 세월호 참사의 자장에서 직간접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고 나또한 유감스럽게도 이 상황 가운데서 도저히 감사를 표할 수 없다.)
이렇듯 어떤 성공이나 특정한 구원이 신자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는 현실 앞에 우리는 특별히 우리에게 임한 특혜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린다면 누군가는 배제됨의 저주를 하나님께 돌릴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이렇게 되면 고전적인 욥의 문제, 나의 고통과 나의 실패는 모두 나의 죄성에 기인하는 것인가. '나의 신앙에도 불구하고 타 성도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광은 왜 나에게는 임하지 않는가'의 문제가 된다. (혹은 욥과 같이, 합당한 탄식과 저주가 상황과는 무관하게 범사 감사하지 않음에 대한 불신앙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사실상 예수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러 왔기에 기독교는, 불평등한 상황 가운데 특혜받는 성도를 표지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신은 모든 사람을 예수의 구원 안에 두고자 하는 종교다. 이렇듯 불행히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많은 사례들은 '범사 감사'의 특수 사례를 넘어 기독교의 본질을 뒤흔든다. 또한 실제로 그 영광에 가려진 성도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물론, 인간은 감정을 가진 존재이므로 기쁨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다. 허나 동일하게 인간은 주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타인을 더 좌절하게 만드는 감정 표현을 절제할 필요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감사는 내밀한 침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고 느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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