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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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이것은 책의 제호가 아니다. 93세 노투사의 육성이다. 혁명과 코뮌 그리고 레지스탕스의 역사가 만들어낸 프랑스 지성의 절정이다. 그리고 청년들과 미래를 향한 절절한 애정이다. 앵디녜부! 레지스탕스! 앙가주망! 분노와 저항과 참여를 통하여 거대한 역사의 일부가 되기를 호소한다. 프랑스보다 분노할 것이 훨씬 더 많은 우리들에게 그의 외침은 정수리에 올려놓은 얼음조각처럼 가슴 서늘한 깨달음이 된다. 분노의 표적을 잃은 채 부당한 증오에 함몰해 있는 자신을 깨닫고 진정 분노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격렬한 희망’, ‘평화적 봉기’에 이어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이 곧 창조이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스테판 에셀의 를 읽던 중 문득 책 뒤표지에 신영복 교수님의 추천사를 보게 되었다. 93세 노투사에 대한 존경과 앙가주망(참여)를 통해 거대한 역사의 일부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신 교수님의 말이 공감이 되면서 조금은 마음이 불편했다. 스테판 에셀의 일생과 달리 신영복 교수님은 한국사회에서 사회참여적인 지식인은 아니라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분의 존재 자체가 가져다 주는 역사적 상징성이 있으며 30년 간의 복역 자체가 그 분에게 가져다준 결핍, 상실이 크다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신 교수님은 출소 이후 보수 언론에 글을 기고하셨고 정치적 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를 자제하셨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나는 일부 진보적인 이들이 비판하듯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신교수님의 행보에 정서적 지지와 공감을, 그리고 그 분의 여생이 그 분 자신에게 행복하길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지만 정서적 지지와 달리 93세 동안 쉴세없는 분노와 저항, 참여의 길을 힘들게 걸어온, 그리고 인생의 말년에까지 장문의 글로 프랑스의 청년 지성을 고취시키는 한 참여적 지성인의 추천사를 신 교수님이 쓴다는 게 마음이 그렇게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나의 불편함은 스테판의 짧은 글을 읽으면서 더욱 커져갔다. 물론 그 불편함은 자책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더욱 큰 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 마음은 신 교수님의 글로 인해 스테판 에셀의 분노, 저항, 참여의 메시지가 한국사회에서는 감동을 동반한 지적인 수준의 공감, 박제된 지식의 습득 수준으로 전락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수장격으로 신 교수님이 서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내 한몸의 안일을 위해 그 정서에 편승하려는 내 속마음이 엿보여 또한번 마음이 불편하다. (끝)

서평은 다음 기회에.



*프랑스를 들썩인 <분노하라> 한국 도착! 저자 인터뷰 공개 - 알라딘인문MD 
 
http://blog.aladin.co.kr/bookeditor/4829257
2011/07/07 21:28 2011/07/07 2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