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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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이 많이 늦었습니다. 이미 정리가 끝나는 마당이라 사실 글 쓰기가 좀 주저스럽습니다. 예전에 대학원 다닐 때는 한참 온라인에서 북적거리다가 갑자기 뒷북치는 논객들을 좀 답답해 했습니다만, 지금 제 처지가 그렇네요.ㅜㅜ


미리 말씀드리자면 제 글은 시기가 한참 늦었기 때문에 논쟁이라기 보다는 후기에 가깝겠습니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미리 말씀 드리고 시작하려 합니다. 따라서 글은 구어체 형식으로 편하게 쓰려고 합니다.^^

 

신광은 목사님과 양희송 전도사님(직업을 맞추다보니 그렇습니다.ㅡㅡ;;)의 글들이 기세 논쟁을 정리하는 데에 제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양희송 전도사님이 김기현 목사님의 기세를 리차드 니버의 구분을 가지고 "대립 모델"에 매핑시킨 부분이 제게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물론 김기현 목사님이 별 말씀 안 하시는 걸로 봐서는 "대립주의자" 혹은 "대립 모델의 기세"라고 인정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김 목사님의 기세를 신광은 목사님이 "무늬만 기세"라고 이야기한 듯 합니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예전에 김기현 목사님이 번역하시면서 자주 언급하셨던 레슬리 뉴비긴의 <요한복음 강해>가 떠오르더군요. 헬라 철학의 옷을 입었지만 기독교의 정수를 드러냈던 사도 요한의 서신을 김목사님이 기세라는 종목에 적용시켜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김기현 목사님은 인용의 대가이시니 충분히 가능하다는 음모론적 생각..) 기세의 옷을 입고 있지만 속을 까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듯한 것이지요.^^

 

그건 그렇고, 신목사님 글에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광은 목사님은 답글을 쓰시면서 "용주님의 솔직 담백한 지적에 많은 부분 공감하면서도 지나칠 정도의 방어적 태도에 의아"했다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글들을 죽~ 읽어보면 제 글에 대해 신목사님이 공감한 ‘내용’이 거의 없습니다.ㅡㅡ;;;


글 쓸 때 자주 하는 실수인데 사실 이런 글을 접하면 부부싸움 할 때 상대편이 "내가 참 많이 미안하긴 한데, 당신 그러면 안돼!"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자꾸 떠오릅니다. 신 목사님은 중간 중간에도 이런 류의 자극적인 표현들을 좀 쓰시는데 읽으면서도 진의가 의심스러울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기세 옹호론을 펼침으로써 지나치게 방어적인 자세로 변론하기 급급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는 지적도 그렇습니다. 저는 김기현 목사님의 연재를 읽다가 좀 과하다 싶은 부분들 몇 가지-신목사님에 따르면 3가지로 요약됩니다-를 지적했습니다. 논쟁의 과열이나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나머지 부분은 다 동의한다는 꼬리글까지 붙였는데 그렇게 읽으셨다면 그게 더 지나친 왜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려다 보니 오히려 신목사님이 제 글을 읽으시면서 "지나치게 방어적인 자세로 변론하기 급급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던 건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게 만듭니다.

 

이원론-혼합주의 문제에 있어 신 목사님은 제가 "김목사님의 의견을 별로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 같으며 이원론의 문제를 모더니즘 탓으로 돌리는 단순한 논리를 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에서 신 목사님은 저의 "현대 사회에 대한 이렇게 놀라울 정도의 단순한 분석에 그저 할 말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신 목사님 반응에 사실 저도 좀 그렇습니다.ㅡㅡ;; 신 목사님이 안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게 말씀하실 수는 있겠으나 좀 오버하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모더니즘 때문에만 신앙이 사유화, 내면화, 탈사회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김기현 목사님이 이원론을 혼합주의로 대체할 때 논리적 비약이 좀 있었다는 것이었고 의도적으로 개혁주의 기세에서 상당한 부분의 변증을 일삼고 있는 모더니즘을 통째로 날려버린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모더니즘적인 요소를 부각시킨 것이지 신목사님 지적대로 모더니즘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닙니다. (제 글을 다시 읽어보아도 매도당할만큼 그렇게 강하게 읽히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ㅜㅜ) 신앙의 사유화, 탈사회화와 같은 문제는 사실 모더니즘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사실 오히려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적인 요소가 더욱 신앙의 사유화와 탈사회화를 가속시키는 요인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군부 독재라는 상황적 특수성으로 인해 신앙의 사회적인 역할의 고리들을 많이 잃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김기현 목사님이 모더니즘을 빼놓고 이원론을 비판하면서 혼합주의로 넘어가고 있었고-저는 그것이 좀 지나치다 싶었고-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독교가 개인적이고 내면적, 탈사회적인 종교로 축소될 것을 강요 받았던 근대사회에서 개혁주의 기세가 그에 대한 좋은 모델이 되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첨언하자면 저는 김목사님이 이원론이 아니라 혼합주의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면서 이 두가지의 문제를 쉽게 대체시키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양립하거나 통합 혹은 병렬적인 구조가 아니라 배제 혹은 대체로 읽혔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한 것입니다. 김목사님의 주장과는 달리 여전히 이원론이 문제라고 말이지요. 이원론 문제를 포함시킬 수 있는 기세로 논의를 통합하거나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덧붙여 기존의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저의 관점을 정리하자면 수정(modified) 개혁기세 혹은 확장(extended) 개혁기세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신목사님이 지적하신 것은 "현장성 문제"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동의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는 말로 운을 떼시는데 앞에서 동의되는 부분을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좀 서운합니다.(아예 말을 마시지.. 저 엄청 기대했었습니다.ㅜㅜ) 이 대목에서 신 목사님은 제가 적반하장을 했다고 말합니다. 이유는 김 목사님의 연재가 기존 기세의 문제 지적과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인데 연재를 마칠 때까지, 그리고 그 대안적 기세 모델을 적용할 때까지의 유예기간을 줄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겁니다. 덧붙여서 글이 현학적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따질 것 없이 실천 가능성을 가지고 판단하자는 말씀도 하였습니다만 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제 반론에서 충분히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실천 가능성 여부는 사실 또 다른 문제입니다.)


다시 유예기간 문제로 돌아가자면, 저는 좀~ 그렇습니다. 물론 일리가 없는 말씀은 아니나 이번에 번역하신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은 1995년에 나온 책입니다. 김목사님이 인용하시는 많은 책들도 사실 옛날 책들이 많습니다. 제가 그 책을 원서로 본 것도 2003년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이제와서 다시 기세를 이야기한다면 그 유예기간은 좀 과하며, 좀더 짜게 말씀드리자면 이미 적용 사례를 이야기할 정도가 되어야만 이제 와서 이 지루한 기세 논쟁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에 대한 '용서(?)'가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제가 지나친가요? 그렇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만 제 주변의 많은 분들이 이미 기세 논쟁을 좀 지겨워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습니다만(사실 이야기를 많이 하니 흥미롭습니다.^^), 지금도 기세 논쟁은 상당 부분 울궈먹기 내지는 '짜고 치는 고스톱' 같기도 합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오버라는 생각도 듭니다. 양희송 전도사님 지적대로 제가 기독교 세계관 전문가도 아닌데 제 영역을 넘어서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르게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그렇습니다. 공학 분야에서는, 아니 이미 여러 학문 분야에서는 이론에 대한 검증을 가짜로 해보는 일이 잦습니다. 자신의 이론을 가적용해보는 것이지요. 제안서도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될 것이다, 기대되는 효과는 이러이러하다는 등. 일종의 시뮬레이션이지요. 제가 김목사님 글에서 답답한 대목은 마치 통합적인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듯하다가 '무늬만 기세'인 다른 기세(another Christian worldview)를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적용 사례가 없다는 것입니다. 검증 사례가 아니라 적용사례 조차 없다는 말입니다. 지나치게 이야기하자면 김목사님은 자신의 기세를 현장에 적용해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저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기독교적인 모델을 구축하면서 그것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덜하더라는 것이지요. 물론 김목사님은 연재를 통해 "성경"이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가 중요하며 무엇보다 거기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논리로 새 모델, 혹은 대립 모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아우를 수 있는 모델을 기대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물론 적용 사례들이 풍성하다면 그것이 더 좋겠지요.

 

글이 길어졌네요. 토른 글들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부분들도 있었고 배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논의가 풍성하게 전개되기를 바라고 또한 무엇보다 김목사님의 연재와 다른 분들의 글들에 도움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신목사님 글에 좀 과하게 이야기한 부분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한 부분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자꾸 신목사님 글의 스타일을 자꾸 이야기하게 되었네요. 부디 신목사님의 글에 대한 애정이라고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글 중간에 김목사님이 저에게 '이쁘'다고 하셨더군요. 감사합니다. 김목사님도 연재 잘 마치시고 좋은 글들과 좋은 책 소개 많이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양희송 전도사님의 글은 언제나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군요. 역시 글쟁이 답습니다.^^
그럼, 샬롬.

2007/07/01 22:49 2007/07/01 2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