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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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년이 바뀔때마다 반 친구들과 헤어지게 된다는 게 그렇게 싫었다. 때론 친구들이 먼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하고 - 중학교 때 어떤 친구는 '서울대에서 만나자'라고 인사했었다. 그리고 대입을 치르고 내게 전화했다. '너도 붙었냐고' -키우던 강아지를 다른 집에 보내기도 했다.

그 순간순간마다 매번 나는 가슴이 철렁했고 슬픔에 울컥했으며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다. 물론 난 내색을 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헤어지기 아쉽다고 오버하는 친구들 중엔 내가 너무 냉정하다고 서운해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었다.

유년기 시절, 이별의 기억들은 나의 복잡한 심정과 어설픈 행동들을 고착화시켰고 어느덧 하나의 거대한 그러나 다소 막연한 정서를 만들어냈다. 고독, 외로움, 거절감, 영원히 볼 수 없음에 대한 아련함..

성인이 되고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그렇게 나이가 들면서는 이별을 경험할 때마다 그런 정서가 지나치게 반복되어 점점 그 정서를 '인지'는 하되 체감하지는 못하는 시기가 왔다. 정말 나는 이제 '그렇게'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서 해댄 거의 광기어린 연락과 집착, 혹은 무정하게 이별을 고하고는 돌아서던 길. 터벅터벅 의미없고 괴롭기만한 인생을 곱씹으며 어디론가 낯선 공간으로 숨지 않으면 터져버릴 것 같던 가슴앓이.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 스위치를 켰다 끄는 것처럼 일순간에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 여행을 떠나기 직전 찾아보니 어디에 뒀는지 모르게 잃어버린 여권지갑처럼. 내 안의 나름 심각했던 이별의 트라우마들을 잃어버렸다. 그저 윤리적 행동양식의 흔적만 남은 채로. '그래, 그 사람 떠나는데 밥 한번은 먹어야지.'

그렇게 어느덧 시간이 지나는 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시간이 되었다. 뭔가 심오한 고민이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그냥 그렇게 난 식어버렸다.

 


*facebook 노트: 2011년 9월 21일 수요일 오후 2:20 작성

2011/09/25 21:23 2011/09/25 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