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대한 소고(4): 변화와 반론(3)
이원론과 혼합주의(2)
지난 연재에서는 분량상 이원론과 혼합주의의 양립 가능성만을 언급하고 재세례파에 관한 소개로 인해 논의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이원론과 혼합주의의 양립 가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전에도 설명한 것처럼 개혁주의의 변혁모델과 제새례파의 대립모델이 각각 이원론과 혼합주의의 문제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논지를 전개함에 있어 에큐메니컬 진영에 속해있는 레슬리 뉴비긴을 주로 인용하려고 한다. 먼저 이원론의 극복이 여전이 중요함을 언급했던 나의 이전 글을 잠시 인용할까 한다.
“하지만 내가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김기현이 이성주의 시대로 대변되는 ‘모더니즘’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듯이 근대주의는 이성의 절대성을 강조하여 경험적•합리적•과학적인 것들을 신격화했다. 근대 기독교인들은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가 무엇인지에 대한 수많은 탈기독교적인 답변들 속에서 혼란의 시기를 겪어야 했다. 모더니즘이 한 세대를 휩쓴 후, 기독교 신앙을 포함한 종교는 사유화, 내면화, 탈사회화 되었다. 종교는 이제 학문•정치•문화•사회에 개입할 수 없으며 신 존재에 대한 문제는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그 무엇이 되었다.” (김용주, “’다시 쓰는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소견”)
이 글을 쓰고 난 후 나는 신광은 목사로부터 신앙의 사유화와 내면화가 모더니즘 때문이라는 진단이 너무 단순한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내가 쓴 ‘모더니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학문적으로 다양한 의미로 쓰이므로 그 정의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 표현상 문제가 있었다고 치고, 레슬리 뉴비긴의 표현을 빌어 내 생각을 전달하고자 한다. 뉴비긴은 자신의 책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에서 계몽주의가 끼친 신앙의 사유화와 이분법적 사고를 지적했다.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의 삶을 사실 중심의 공적 세계와 가치 중심의 사적 세계로 나누는 계몽주의 이후의 이분법과 맥을 같이 한다…이 주장의 부정적 측면 즉 교회가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긍정적 측면 곧 교회 본연의 과제는 개인 영혼의 영원한 구원과 관계된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여기서 이제까지 인간의 종교 사상을 다분히 특징지어 온 이분법을 접하게 되는데 주목할 점은 성경에서는 그런 이분법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이런 식으로 이해하게 되면 내적이며 영적인 것과 외적, 가시적, 사회적인 것을 따로 분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레슬리 뉴비긴,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뉴비긴은 자신의 짧은 이 책-부제는 ‘복음과 서구문화’이다-에서 계몽주의의 업적에 대해서 일면 긍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계몽주의 이후 근대사회에서의 공적 세계(정치)와 사적 세계(종교)의 이분법, 이원론적 사고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다. (이러한 이분법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실상 송인규의 진단과 유사하다.) 그는 세상과 기독교의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 콘스탄티누스 이전 시대의 회복, 즉 혼합주의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토대에서 긴장점을 유지하려면서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애쓴다.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그리스도인 사이에 일종의 무정부주의적 낭만주의가 유행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 점을 아주 강조할 필요가 있다-우리가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순수성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초대교회의 본보기를 사용해서 마니교도가 했던 식으로 모든 권력을 악하게 여겨 정치 권력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손을 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갈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은 가능다. 어쩌면 콘스탄티누스 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삶 전체-정치적 경제적 도덕을 포함한-에 걸친 그리스도의 왕권을 증언하는 것을 교회의 삶에 구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 세대에 주어진 그야말로 새롭고 유래 없는 굉장한 도전거리다. 이 도전을 단호하게 수용하는 것이 복음과 서구 문화의 선교적 대면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요건이다.” (레슬리 뉴비긴, 같은 책)
아우구스티누스, 교회와 정치 권력간의 관계에 대한...
결국 뉴비긴이 관심을 가지고 풀어가는 핵심 의제는 ‘복음과 서구 문화의 선교적 대면’이다. 뉴비긴은 복음과 문화의 관계 설정에 있어 흥미롭게도 아우구스티누스에게로 돌아가고자 하는데 이는 당시 기독교와 국가 간의 구도가 이후 천년 간 서구 기독교의 사상과 관습을 좌우하게 되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 시기는...교회가 핍박을 받던 상황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에 도달한 시점도 아니었다. 하나는 지상의 국가로서 자신에 대한 사랑에 의해,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따라서 지상의 도시에서 재류 외국인으로-동시에 하나님의 시민으로-사는 자들은 그 곳의 선한 질서를 위해 애써야 하고, 통치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에는 공동선을 도모할 종의 심령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그래서 천상도시의 시민들이 지상도시의 평화와 선한 질서를 열심히 도모하되, 최후의 심판 곧 그 둘이 가시적으로 분리되고 천상의 도시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모두 드러낼 때를 앞서서 재촉하지 않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자세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뉴비긴 , 같은 책)
뉴비긴은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의 기독교가 현대의 상황과 흡사한 면이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먼저 ‘사랑’이 사회의 기초이며 그러한 사랑은 질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피지배자들을 섬기는 정부에 의해서 질서가 유지되어야 함을 전제한 후, 교회가 지상 도시의 정의 실현에 있어 평화와 선한 질서를 열심히 도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함을 입증한다. 그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교회와 정치 권력간의 관계에 있어 교회가 정치권력과 동일시되거나 반대로 사적 종교로 전락하지 않으면서 지상 세계에서의 책임을 다해야 함을 역설한다. 다소 긴 내용이지만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교회는 그 나라와 결코 동일시될 수 없고 다만 그 나라의 종이자 증인이요 표지의 역할을 하고자 애써야 마땅하지만 그런 역할을 사적인 부문에 한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내가 믿듯이, 교회와 정치 질서 사이에 전적인 동일화나 전적인 분리가 있을 수 없다면 양자간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많은 토론의 여지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선한 목적을 위해 제정하셨으나 악의 도구로 전락하기 쉬운 이런 권세들이 올바르게 작동하는 일에 무관심할 수 없다...오늘날에도 교회가 기독교 신앙에 비추어 국가의 공적 삶과 산업 및 상업 분야에서 세계적 질서를 세우는 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도 그 책임을 저버린다면 결코 죄책을 모면할 수 없을 것이다...그들(정치 권력)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권세는 자기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에 달려있다. 그들은 자기에게 위탁된 권력을 오용할 수도 있는, 그리고 때로는 실제로 오용하는 죄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바른 일을 행하고 진리를 인정할 책임이 있으며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그들에게 이 사실을 상기시킬, 즉 피해서는 안 될 책임을 언제나 지고 있다... 공적 이데올로기에 도전하지 않는 개인 구원의 사적 종교는 과거 로마의 법 아래서 완벽한 안전이 보장되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그런 식으로 오늘날 복음주의가 우리 사회의 보호 아래 아주 번창하게 되었는데 초대 교회도 이와 동일한 입장이었다면 처음 3세기에 거쳐 윤리우스의 통치하에 굉장히 부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복음은 이런 식의 전략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는 국가가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반영할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도록 요구한다.” (뉴비긴, 같은 책)
내가 판단하기에 뉴비긴의 이러한 주장이 의미심장한 이유는 그가 계몽주의 이후의 이원론(이분법)적 사고와 혼합주의라는 현대 기독교 문제의 진단 모두를 긍정하면서도 기독교와 서구문화, 기독교와 정치 권력 간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훌륭한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그는 교회와 서구 문화와의 관계에 있어, 교 회가 그 어떤 정치 질서도 하나님의 통치와 동일시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혼합주의를 비판했고 공적 이데올로기에 도전하지 못한 채 개인구원의 사적 종교로 전락한 이원론적인 기독교 또한 책임을 방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논증하였다.
교파 안의 기독교 세계관, 교파 밖의 기독교 세계관
지 난 연재에서 설명한 바 있듯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기독교 세계관은 개혁주의라는 교파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으로 그 외에도 다양한 기독교적 관점의 세계관들이 가능하다는 비판이 있었고 그러한 잣대로 지적되어온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의 비판적인 몇몇 이슈에 대해 살펴보았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기독교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신학적인 선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결국 그러한 선이해는 교파적인 배경을 넘어설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기독교 세계관의 주된 이슈는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과 기타의 기독교 세계관이 양립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이제까지 이원론과 혼합주의를 예로 들어 개혁파와 재침례파의 세계관이 양립 가능하다는 것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용어 자체를 개혁주의 밖에서는 명시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고 타 교파들, 혹은 신학자들이 기독교 세계관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독교 세계관이 유일하다거나 자신들의 입장 자체가 정리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주 인용되는 리차드 니버의 책 <그리스도와 문화>는 결국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에 관한 4가지 유형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것은 동일하게 4개의 세계관으로 환원 가능하다. 지난 연재에서 자주 인용했던 하우어워스와 요더의 대안 모델, 혹은 고백 교회 모델은 재세례파의 신학에 기초를 둔 또 하나의 기독교 세계관이라 불릴만하다. 이러한 초교파적 관점에서 기독교와 세상, 기독교와 정치권력, 기독교와 문화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실로 다양하며, 갈수록 많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이 그러한 이들의 관점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물론 교리와 명제를 중시하는 정통 개혁주의자들에게는 이들의 입장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기는 힘든 부분들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글을 마치면서는 기독교 세계관의 변화와 반론 가운데 연재 중에 자주 언급했던 개혁주의 외부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존 하워드 요더와, 스탠리 하우어와스, 그리고 N. T 라이트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고 개혁주의 입장에서 지적되는 비판적 요소가 무엇인지를 짚어보는 것으로 마무리 하려고 한다.
1.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
존 하워드 요더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내 기억으로는 신원하 교수의 <전쟁과 정치, 대한기독교서회>를 통해서였는데 이 책에서 그는 존 요더의 평화주의와 정치윤리에 대해 개략적으로 설명하였다. 이후로 최근에야 비로소 요더의 대표작격인 <예수의 정치학>이 번역되어 그의 사상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김두식의 <평화의 얼굴>에서도 기독교 평화주의의 근간이 되는 재세례파의 역사와 그 중심에 서있는 신학자 존 요더를 다룬 바 있다. 이렇게 최근 복음주의권에서 회자되고 있는 요더는 20세기의 걸출한 신학자이자 기독교 평화주의자, 현대 메노나이트파의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로 국내에서는 소수 교파인 재세례파의 신학과 윤리를 재탐구하고 보수하여 현대 신학계와 윤리학계에 그 입장을 재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원하 교수는 요더의 업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그는 기독 교회의 문화와 사회에 대응하는 유형과 방식을 다섯 가지로 유형화한 리처드 니버의 고전적 유형론(typology)에 지배되어 온 신학계와 윤리학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문화와 사회에 대한 역사적 교회들의 대응 방식에 대해 새로운 틀에 의한 이해를 촉구하였다. 그리고 철저한 평화주의(pacifism) 윤리사상을 주창하면서 기독 교회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의 지성인들에게도 평화주의를 알리는 전도자 역할을 하였다. 요더에게 기독교 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예수께서 직접 보여 주신 그 삶을 모범으로 하여 어떻게 그를 닮아가고 실천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은 당시의 제자들과 교회들뿐만 아니라 오늘의 개인들과 교회 공동체의 사회 윤리에서도 실제적인 모델과 규범이 된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행동과 가르침,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행동을 위한 규범적인 유형도 제공한다는 것이다.” (신원하, ‘존 하워드 요더의 생애와 그의 윤리학의 중요성’ 중에서)
물론, 요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신원하 교수는 <예수의 정치학> 후기에서 요더가 기존 사회의 질서와 정치가들의 정치와 그 산물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으로 이해한다고 전제한 후, 그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사회에 무관심하기를 권하지는 않지만 행동의 구체적인 제시가 없음을 지적했다. 또 한 그가 국가 또한 그 자체를 악한 것으로 보지는 않지만 국가가 국민들의 삶과 복지를 위해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타락한 창조 세계에서의 국가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신원하 교수는 요더가 국가의 역할에 있어서도 명확하게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2.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
2001년 타임지로부터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호평을 받았으며, 미국 인문학 분야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기포드 강좌 강연자(2000년-2001년)로 선정되기도 한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존 요더의 기독교 평화주의를 널리 알린 장본인으로도 유명하다. <복있는사람>에서 그의 대표작인 <하나님 나그네 된 백성>을 비롯하여 <십계명>, <십자가 위의 예수> 등을 꾸준히 번역하여 하우어워스의 저서들을 널리 보급하고 있다. 문시영 교수는 하우어워스의 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타임'지가 2001년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이름 붙인 스탠리 하우어와스는 독특한 제안을 한다. '예수 이야기'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덕성의 함양을 통해 평화의 사람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다르게' 사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의 윤리는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흠뻑 젖어 있다. 교회를 통해 예수 이야기대로 살아갈 모티브를 얻으며 교회 안에서 신앙인의 성품과 덕성이 훈련되고 성숙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굳이 '내러티브'라는 용어로 표현한 예수 이야기는 여기에 충실하게 살아가면 사회가 교회를 본받게 될 것이며, 윤리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스며 있다. 하우어와스는 교회가 사회 문제들에 어설프게 개입하기보다 예수 이야기에 충실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교회와 세상을 동일시하는 기독교 내부의 성향이 기독교를 세속적 권력과 결탁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우어와스가 평화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존 하워드 요더의 영향이 클 듯 싶다...요더가 예수 이야기대로 살아가려는 노력과 평화의 가치를 강조했다면 하우어와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 공동체의 가치와 신앙인의 성품에 초점을 맞춘다... 포스트모던 문화를 비판하고 덕의 윤리를 회복하자고 제안한 매킨타이어와의 교감은 하우어와스에게 큰 통찰을 주었다. 신앙인의 윤리는 자연법 윤리와 다르며 신앙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복음 속에서 정체성과 역할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는 평화를 위한 기독교적 덕성의 훈련장이요, 탁월한 성품의 공동체라 할 수 있다. 교회 공동체에 속한 자로서 세상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문시영, 국민일보 “21세기 신학자들―⑭ 스탠리 하우어와스 듀크대교수” 중에서)
그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도 있다. 문시영 교수는 같은 글에서 ‘하우어워스가 소종파주의적이고 세상으로부터의 퇴거주의라는 비판을 받는다’고 지적한다. 기독교의 독특한 '다름'에 대한 주장이 지나쳐 윤리적 게토에 갇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실 제로 현대 기독교 윤리학의 흐름에서 공공신학과 라이벌이기도 한데 공공신학이 말하는 것처럼 신앙을 사적인 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으로 나아가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변증하며 윤리적 통찰을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그는 하우어워스의 신학적 과제로 제시했다.
3. N. T. 라이트 (Nicholas Thomas Wright)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N. T. 라이트는 청어람아카데미의 양희송 실장이 복음주의권에 처음 그의 저서들을 소개한 이후 지속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대표적인 신학자 중 하나이다. 톰 라이트는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교수하다가 지금은 영국 성공회 주교로 있으며 현재 영미 신학계에서 부활한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성경의 역사비평을 받아들여 스스로 이름 붙인 ‘제3의 연구’를 통해 새롭게 부활된 역사적 예수의 연구에 집중해왔다. 과거의 역사비평적 방법이 예수 부활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회의주의에 빠지게 만들었다면 톰 라이트는 자신의 제3의 연구 방법을 통해 부활의 역사성을 강력하게 논증하고 있다. 그의 역사비평 방법에 대해서 와싱톤한인교회의 김영봉 목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그는 보수주의와 복음주의 진영에서 아직도 불편해하고 있는 역사비평 방법을 철저히 연마하고 그 방법론으로 신약성서를 연구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역사비평 방법의 전제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그는 ‘비판적 실재론’이라는 철학적 입장에서 역사비평을 사용한다. 비판적 실재론은 연구를 통해 알려 하는 대상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알기 원하는 사람이 알려는 대상과 지속적인 대화를 함으로써 점차 그 실재에 접근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과거 사건을 ‘있었던 그대로’ 말할 수 있다고 믿는 계몽주의적 실증주의와 차이가 있으며, 실재를 부정할 정도로 주관적 의미에 치중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도 큰 차이가 있다. 역사비평은 실증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이 방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려는 경향을 가진다. 라이트는 비판적 실재론에 근거해 역사비평 방법을 창조적으로 사용해 왔다... ‘예수 세미나’로 유명한 존 도미닉 크로산 교수는 라이트의 이러한 태도를 가리켜 ‘고상한 근본주의’라고 비꼬았는데, 라이트는 오히려 “아무 입장도 없는 해석이란 불가능하다”고 반박해 왔다. 많은 역사가들이 철저히 중립적인 입장에 서 있음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그런 입장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많은 사람이 그를 가리켜 ‘정통 기독교의 수호자’라고 평가한다.” (김영봉, 국민일보 “톰 라이트 주교, 복음-자유주의 아우르는 사상가” 중에서)
물론 이러한 라이트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역사 비평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도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으며, 최근에는 바울 연구와 관련하여 칭의론에 대한 존 파이퍼와의 논쟁이 이슈가 되고 있다. IVP 대표간사인 노종문은 톰 라이트를 소개하는 글의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이 논쟁을 소개하였다.
“최근에 신약학자이며 설교자인 존 파이퍼는 The Future of Justification (Crossway, 2007)이라는 책을 통해 라이트의 칭의론이 루터의 성경 해석과 개신교 구원론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새로운’ 이론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라이트는 올해 2월에 나온 Justification: God’s Plan and Paul’s Vision(SPCK)이라는 책으로 응답했다. 라이트는 파이퍼가 성경 자체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친숙하고 안전한 느낌을 주는 과거의 전통에 집착한다고 비판했다. 라이트가 볼 때, 루터와 그 이후의 개신교 이신칭의론의 전통은 지나치게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성경을 읽으며 복음이 원래 주후 1세기 유대인들과 그레코로만 사회에서 어떤 사회-정치적 의미로 전파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회피하는 것이다.” (노종문, IVP 북뉴스, “톰 라이트는 누구인가” 중에서) (끝)
**이 글은 월간<복음과상황> 8월호 기고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