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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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퇴근 안 해요?"
남자직원: "그냥 집에 일찍 가기가 싫으네요. 딱히 갈 데도 없고."
나: "왜 싫어요?"
남자직원: "집에 가면 아내가 가만 놔두지를 않아요. 첫째 아이도 제 몫이고 밀린 집안일도 도와야 하는데 오늘은 회사일로도 좀 지치네요."
나: "네…."

일이 다 끝났는데도 귀가를 미루는 유부남 동료들을 종종 본다. 귀가 후에 쉴 수 없어서 회사에 머무는 이들. 한때 간 큰 남자 이야기가 자주 회자되곤 했는데 그와 비슷하게 유부남 직원들끼리 자주 하는 얘기가 있다.

옛날에는 마초와 마초 아닌 남자, 즉 육아·가사를 전혀 분담하지 않는 남자와 분담하는 남자로 구별이 되었다면, 지금은 영혼을 담아 육아·가사를 분담하는 남자와 '영혼 없이' 분담하는 남자로 나뉜다고들 한다. 즉, 가사·육아를 분담하지 않는 남자는 없다는 말이다.


새로운 가족의 출발점, 엄마는 고통받고 아빠는 억울하다

삼십대의 대다수 남자들은 직장에서 자기 에너지가 거의 소진될 정도로 노동력을 공급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귀가한 집은 이들이 꿈 속에서 그리는 '스위트 홈'은 아니다. 아이와 한판 전쟁을 치르고 난 카오스 그 자체의 상황. 집에 도둑이 들었나 싶을 정도의 어수선함 속에서 아내는 지쳐서 애타게 남편의 귀가 시간을 기다린다. 집 문을 여는 순간, 아내의 가사·육아 관련 지시가 떨어진다.

하지만 아내를 돕고 싶어도 띄엄띄엄 알고 있는 집안 일과 육아는 서투르기만 하다. 열심히 해보지만 그릇을 깨거나 아이를 울리거나 걸레와 행주를 헷갈려서 식탁과 주방을 더럽히거나 비싼 겉옷 빨래를 망쳐놓기도 한다. 아내는 남편의 반복되는 서투름에 짜증을 내다가 이내 '곧 죽어도 내가 하는 게 낫지, 저리가'라며 소리를 지른다. '나도 너만큼이나 힘들었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입밖에 내면 싸움이 더 커질까봐 삼킨다.

결혼을 결심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때는 둘이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던 부부였건만, 이들은 아이가 태어나는 시점에 거대한 전환기를 맞는다. 군대를 갔다 와서 정상적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해도 20대 후반, 휴학을 했거나 대학원이라도 간 사람은 30대에 들어서고 나서야 사회 생활이 시작되므로 자리를 잡으려다 보면 결혼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요즘은 중년이 되어서야 육아가 시작되는 커플들이 늘고 있다.

변화도 많고 사색도 깊어지는 중년의 나이. 그 와중에 아이가 태어나고 직장 생활과 가사·육아의 분담 문제만 해도 이미 부부는 넋이 나간다. 사회가 육아를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가부장제도가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그 역할을 강요하다 보니 여성 입장에서는 아무리 주위를 살펴봐도 하소연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거나 분노를 표현할 대상이 남편뿐이다.

죽고 못 살던 연인 사이가 불과 몇 년 사이에 타자화되고 분노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결국 사회에서 새로운 가족의 출발점인 출산, 육아, 자녀 교육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부부 관계는 소원해진다. 엄마는 고통 받고 아빠는 억울하다. 엄마의 고통은 말할 나위가 없으며, 아빠들 또한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나도 힘들어'라고 말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의 반복이다. 반복은 만성이 되고 그 안에서 부부의 생명력은 죽어 간다.

'영혼 없는' 가사육아 분담, 중년 남성은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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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부모>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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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으로 읽은 <대한민국 부모>란 책에서 저자들은 자녀 교육 문제로 일그러진 한국 사회의 가정 문제를 깊이 있게 풀어냈다.

대한민국은 자녀 교육의 늪에 빠져서 가정과 사회, 특히 부부를 찢어 놓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엄마가 매니저가 될 정도로, 아빠가 다른 가족을 이민 보내고 기러기 생활을 할 정도로 자녀 교육에 '올인'하게 된 건 상당히 최근의 일이다.

과거 아이들은 특별한 조치 없이도 그냥 자랐다. 그 세대를 동경하거나 옳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한민국의 모든 부부들이 온 정성을 쏟는 육아와 자연스레 이어지는 자녀 교육, 고가의 사교육 그리고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흔들리는 중년 남녀의 삶의 방향성을 생각해볼 때, 그 효능조차 검증되지 않은 '아이 성공시키기 프로젝트'에 너무 깊이 매몰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덜컥 들곤 한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내 삶도 변했다. 나는 일상에서 더욱 보수적으로 변해간다. 진보적인 생각을 하던 청년 때와 달리 직장 생활도 '가늘고 길게' 가기를 진심으로 바랄 때도 있다. 적어도 아이가 자라는 동안은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아내와 나누던 대화의 질도 비교할 수 없이 낮아졌다.

그저 아내가 지치지 않기를, 그녀의 여가 시간을 확보해주기 위해 육아와 가사를 효과적으로 분담해주는 행위, 그 자체에 몰입할 뿐 우리 부부 관계의 깊이, 영혼의 대화, 이 사람과 진정 마음이 관통한 것 같은 느낌은… 감을 잃은 것도 같다. 잠시만 고생하면 될 것 같던 이 부모 노릇은 생각하면 할수록 단기 프로젝트가 아님을 새삼 절감한다. 우리는 그저 이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 결혼을 했던 걸까.

다행히도 아내는 자주 나를 돌아보기를 권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내와 나의 관계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환기시켜줄 때가 많다. 요즘 특히 더 그렇다. 바꿔 말하면 나는 그만큼 육아과정에서 산만하고, 갈피를 못 잡고, 나를 잃어버리고 있고 아내와의 관계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 부모>에 등장하는 부부들이 그렇듯 나도 육아 과정에서 표류할 조짐이 보인다.

사회에서 내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집에서는 아내를 돕기 위해 '영혼 없는' 가사·육아의 분담을 선택하는 많은 남편들은 가정 안에서 정작 중요한 정서적인 유대감을 잃고 있다. 회사에서 멍 때리면서 집에 가기를 미루거나, 유흥가에서 돈을 주고 연인에게 받았던 위로와 사랑을 구걸하거나, 다른 명예나 성공을 통해 정서적 결핍을 보상받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즐거운 나의 집'을 위해 시작된 중년 남성들의 희생의 종국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요즘 나의 고민은 이런 류이다.
2013/11/15 23:12 2013/11/15 2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