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말과 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말이나 글과 그 담화자의 인격과의 연관성에 대한 생각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예전보다는 말로 사람을 평가하려는 습관을 버리려고 애쓴다. 말과 사람 사이의 연관성이 그리 견고하지 않은 까닭이다.
극단적인 예로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의 저자 은수연씨는 아버지에게 유년시절부터 성폭행을 당했는데 그 아버지란 사람은 교회 목사였다. 은수연씨가 집에서 도망쳤다가 아버지에게 잡히면 길거리에서건 경찰서에서건 그 목사 아버지는 말로 주변 사람들을 구워삶았고 세상사람들은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은수연씨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내곤 했다고 한다.
2.
그 반대로 말로 자주 오해를 사게 만들고 말만 하면 그 의도나 진정성을 의심받는 사람들이 있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도 그런 사람이었다. 김어준 총수는 유시민 전장관이 말 때문에 피해를 입는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종종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공인이나 연예인들(이 두 그룹은 구분되어야한다는 생각이다)의 한 두 마디에 그 사람의 사활을 거는 감정적 평가들, 그 극단적 비난에 회의적이다.
그런 단회적인 말 몇마디로 그 사람의 인격 전체의 퍼즐을 맞추려는 시도들은 대체로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사람이 어떤 말을 했든지 그 사람을 10년, 20년 주시하고 그 사람이 어디를 가는지 어디에 돈을 쓰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며 지내는지를 지켜보다보면 그 사람이 정작 마음에 두고 있는 바를 자연히 알게 된다. 말은 자주 사람을 속인다.
3.
안타깝게도 우리는 한 사람을 10년씩 지켜볼 아량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다. 사실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내 관심에 엮여있는 사람들이 내 가치관에 부합하는 말을 하는지, 반대하는지, 혹은 배신의 언사를 했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단기간에 한 인간의 숨은 속내를 찾기 위해 드러난 말로 퍼즐을 맞추려고 애를 쓴다.
그렇다고 말과 글이 그 사람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건 너무 멀리 나아가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푹빠져서 허우적대다가 지향점마저 잃어버리는 모습이랄까. 대체로 우리는 누군가 말을 하고 글을 쓰면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고 가정하는 편이 옳다. 물론 말과 인격은 자주 어긋나고 결을 맞추려다 실패할 확률이 항상 존재하겠지만...
4.
나는 말과 글을 한 인격을 단기간에 평가하는 도구나 잣대로 활용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말과 글을 통해 그 사람의 균열점, 숨은 속내를 훔쳐볼 수 있는 하나의 보조구로 사용하는 것에는 적극 찬성한다. 말과 말 사이에 끼어드는 실수들, 헛나온 말, 행간에 독립적인 어색한 문장들. 그 속에서 정작 담화자의 민낯을 추정해볼 수 있다.
멀쩡하던 설교자가 어떤 사건을 접하고는 이전과는 공유할 수 없는 어떤 주장을 뜬금없이 할 때,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질타에 오해라고 손사레를 지을 때. 우리는 그의 안정된 일상 속 잘 정돈된 담화에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어떤 속내를 경험하게 된다. 그 말(실수)가 말하는 사람의 전부를 규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균열지점을 통해 적어도 그 인격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생긴다. 전에 했던 말과 글, 그의 정치, 종교적 스탠스를 새롭게 해석해 볼 필요성 말이다.
...그런 생각, 잠시 끄적여본다. (졸려서, 쓰다가 급마무리.)
2014. 5. 30. 페북 담벼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