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일, 그간 사랑의교회 예배당 건축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사랑의교회 건축, 어떻게 된 것인가?' 카페에는 옥한흠 목사의 아들인 옥성호 본부장이 사랑의교회 목사와 장로들에게 보냈다는 메일이 공개되었고 23일에 <뉴스앤조이>는 이와 관련해서 '아들의 격노, "아버지 옥한흠 목사를 이용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그 메일의 핵심 내용을 정리한 기사를 내보냈다. 관련 기사와 메일 전문을 읽어 보면 고 옥한흠 목사가 사랑의교회 건축을 지지했다는 교회 측 설명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구구절절 설명하였고 교회 목사와 장로들에게는 사진과 동영상이 함께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만일 이것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사랑의교회 측은 이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 해명이 필요하게 될 것 같다.
이 문제는 즉각 인터넷 사이트에서 회자되었고 지금까지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도 의견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메일의 내용은 이렇다. 옥한흠 목사가 원하고 찬성해서 건축을 추진했다는 교회 측 주장과는 달리 옥한흠 목사는 교회 신축과 함께 잃어 가는 사랑의교회의 명예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했다는 것이다. 또한 2009년 예배 시간에 상영된, 교회 건축을 독려했던 옥한흠 목사의 동영상은 사실 옥 목사가 오정현 목사의 거듭된 부탁에도 거절하다가 교회가 둘로 쪼개질 수 있다는 오 목사의 말에 괴로워하며 힘들게 찍었던 것이며 그 영상조차도 옥 목사의 우려의 목소리가 삭제된 채 방영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옥성호 본부장의 입장은, 교회에 실망한 교인들이 떠나가고 공공 도로 점유로 사회가 교회를 비판하며 사역 헌금들이 공사 대금으로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상상을 초월하는 은행 대출금의 이자를 내는 현 상황에서 건축은 중단되어야 하며 옥한흠 목사는 결코 '이런' 건축을 찬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옥한흠 목사는 생전에 인터뷰나 설교 등을 통해 자신이 강남에서 시작한 사랑의교회가 규모의 교회, 맘몬의 교회가 될까 봐 매순간 노심초사했다. 교회의 세속화를 늘 염려하며 행여 교회의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 그것이 자신의 죄라며 괴로워했다. 교회 건축에 원론적으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은퇴 후 자신의 후임인 오정현 목사가 건축을 결정했을 때에도 그 결정이 사실상 자신이 교회를 너무 키웠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여겨 그것마저 회개의 제목으로 삼았다. 옥성호 본부장도 자신의 책에서 옥한흠 목사가 생전에 교회의 규모에 대해 우려했고 교인 수가 많아지는 현상을 반기지 않았음을 언급했다.
"은퇴 후 저(옥한흠)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 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목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 수 2만 3000명, 전체 등록 교인 수 5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어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옥성호, <아버지, 옥한흠> 143쪽 인용)."
이에 반해 오정현 목사는 교회 내의 늘어나는 교인들을 가지고 끙끙거려 온 옥 목사와는 달리 예배당 건축이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행보는 사랑의교회의 또 다른 욕망이다. 사실 오정현 목사는 그간 사랑의교회에서 억압되어 온 교인들의 '이드(id)'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도 교회 내 성도들의 절반 이상이 오정현 목사를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해석한다면 사랑의교회 성도들은 그간 '초자아(superego)' 역할을 감당한 옥한흠 목사 아래서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왔던 건 아닐까. 내가 전해 듣기로 몇몇 성도들이 '우리 교회는 능력(돈)도 있는데 건물도 높게 올리고 구질구질한 공간들을 대기업 교육장처럼 깔끔하게 단장하면 안 되겠나'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교회 신축 문제 이전부터 이런 조짐은 있었다. 새벽 기도의 기복성을 경계한 옥한흠 목사와는 달리 오정현 목사는 부임 직후부터 '특새(특별 새벽기도회)'를 무슨 대형 집회처럼 열었고 그곳에 온 사람들의 복을 빌어 줬다. 지방에서도 사랑의교회 '특새'에 참석해서 자신의 작은 교회에서는 받지 못했던 하나님의 복을 받아보겠다며 심야 버스를 타고 올라오던 까닭에 한동안 예배당은 타 교회 성도들로 넘쳐났다. 아마 그때부터 사랑의교회 교인들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자교회의 엄청난 스케일에 스스로도 놀라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이러한 총동원 형태의 집회 스타일에 익숙해지면서 사랑의교회 성도들은 이전에는 억눌러 왔던 메가처치의 '규모적' 감동을 영적인 코드로 욕망하게 된 것은 아닐까.
옥성호 집사가 보낸 메일을 통해 말하려고 했던 '아버지의 명예'는, 내가 해석하기로는 일개 가족주의적 아버지의 명예의 회복, 혹은 옹호가 아니다. 그것은 옥한흠 목사가 끝까지 분투하고 지키려 했던 규모의 신, 맘몬 신을 하나님과 함께 섬기고 있는 '강남' 지역 교인들의 '제자도'였다. 어떤 의미에서 오정현 목사는 그간 옥한흠 목사가 힘들게 지켜 내고자 했던 사랑의교회의 금욕적 제자도를 '영 단번'에 풀어 줬다. 건축 결정에 우려감을 표한 교인들도 있었겠지만, 내심 눌려왔던 욕망을 신앙의 이름으로 분출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낀 이들도 많았으리라.
옥한흠 목사는 암이라는 지병을 얻어 가면서까지 교회의 세속화·맘몬화를 막으려고 노력했고, 다행히도 강남에 있는 교회 중에 '복음주의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랑의교회를 만들어 냈다. 이를 두고 청어람 양희송 대표는 사랑의교회가 강남의 핵심부에 자리 잡고 있지만 소망교회, 광림교회 등과 비교해 볼 때 쉽게 동일시되지 않는 "강남에 있지만 강남에 속하지 않는" 어떤 독특한 지점이 있었다고 말한다(양희송 대표도 2009년에 쓴 자신의 글에서 사랑의교회 신축에 대해 우려감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사랑의교회는, 스스로가 원했던 원하지 않았건 간에 한국교회의 역사 속에서 복음주의 진영의 어떤 본이 되었고 실제로 교회의 금전 규모로 봐도 여러 기독교 핵심 사업의 중심에 설 만한 위치였음에 분명하다. 하지만 옥한흠 목사 체제가 끝나고 오정현 목사 체제가 되면서 한국 복음주의의 중요한 축이 급속도로 무너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기우일까.
사실 지역 교회로서, 강남지역 메가처치 교회로서의 사랑의교회에 나는 관심이 없다. 교회 건축을 결정했던 몇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 교회는 강남에 넘쳐난다. 그런 교회들을 다 문제 삼자면 끝도 없다. 문제는 옥한흠 목사로 인해 형성된 한국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의 사랑의교회의 위치와 그 대표성을 넘겨받은 오정현 목사가 복음주의의 소중한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오히려 영적 퇴행의 방향으로 치닫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단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복음주의권의 많은 중간 지도자급 사역자들이 이런 상황들을 그냥 지켜보거나 감내하거나 그도 아니면 그 안에서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어진 '구조'는 일단 덮어 놓고 긍정하는 개혁주의 기독교 세계관의 수혜자들이라 그런 것인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떠도는 풍문이 아닌, 문제의 메일 내용과 기사들을 다 읽고 나서도 옥성호-오정현 간의 세력 다툼 격으로 상황을 이해하는 몇몇 기독교인들의 지적 수준이 의심스럽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아닌 것마저 포용하려는 그 관대한 종교성을 따라갈 수가 없다. 어쭙잖은 지식으로 포스트모던 담론 놀이나 영적인 언어, 현학적 분석으로 사태를 흐리지 말고 그냥 큰 예배당이 좋다고 말하자. 차라리 한국교회도 좀 잘 먹고 잘살고, 어디 가도 안 구질구질하고 세련되게 이른바 중산층의 종교답게 규모도 좀 갖추어지길 은근히 바랐다고 말하자. 제발 이제라도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그렇게 고백해 달라.
한국 복음주의에 대한 생각이 이제는 좀 바뀌었다. 솔직히 나는 '제자훈련'으로 대변되는 옥한흠 목사의 신학적, 목회적 한계를 논할 정도로 한국 복음주의가 고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보는 책들은 웬만한 사람들은 한 번에 이해조차 못할 정도로 현학적이고 고답적인 수준이지만 교회 안에서 영적 지도자들의 잘못된 사역 방향을 보며 그 현상을 학문적, 신학적으로 연구하기에 여념이 없다. 솔직히 한동안 그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교회가 그 짓거리만 20년 동안 하는 걸 지켜봤다. 시간은 많은 걸 다시 보게끔 만든다. 남편의 감언이설로 결혼을 승낙한 아내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남편의 일상을 통해 그 말의 진정성을 돌아보는 것과 같다. 한국 복음주의는 그런 의미에서 그 고상함 안에 진정성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순복음교회나 미국의 수정교회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 얘기다. 그리고 이게 자유주의 신학이니 알미니안이니 가톨릭이니 죄다 비판하며 내가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복음주의의 '진정성'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앞으로도 우리는 제2의 오정현 목사가 나타나면 또다시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며 책상머리에서 그 신학적, 학문적 의미를 연구할 것이다. 한국의 복음주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오정현 목사님과 사랑의교회, 그리고 관련된 많은 교계의 동역자분들은 지금이라도 옥한흠 목사의 교회론으로 돌이키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로 지금의 방향은 내가 애정을 갖고 뿌리를 계승하고 싶었던 '그' 복음주의가 아니다. 오정현 목사가 대표성을 갖는 사랑의교회와 그 축을 중심으로 뻗어 있는 한국 개신교가 여전히 복음주의라면. 이제부터 나는 더 이상 복음주의자가 아니다. 불행하게도 이것이 내 신앙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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