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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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책을 통해 배운 내 간접 스승은 단연 '정희진'이다.
솔직히 작년 한해는 기독교 배경에서 참 많은 유명한 기독저자들의
책이 나왔지만 나는 그 모든 기독교 대가들과 '정희진' 한명을 견주어
부족하지 않다고 느꼈다.

사실 최근 몇년동안 페미니즘 내지는 성평등에 관한 고민과
그에 따른 내 나름대로의 논리, 입장이 있었다.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나는 내가 합리적이고도 현실적인 측면에서 '공평한 남성'이라 여겼다.

하지만 정희진은 나의 이런 나름의 선을 넘게 만들었고 여성문제에
있어 남성들이 더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겸허한 마음을 안겨줬다.
예전에도 고은광순이나 조한혜정 등 몇몇 여성 저자들의 글과 책을
읽었지만 사실 별로 와 닿지 않았다.
아니 - 깔대기를 들이대자면 - 내 생각보다 더 나아갔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올해에도 사이비 언니로서의 삶을 기대하며
작년에 즐겁게 읽은 책들을 리스트업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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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은이) | 교양인 | 2005년 11월

2.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가정 폭력과 여성 인권
정희진 (지은이) | 또하나의문화 | 2001년 8월

3. 아주 작은 차이
알리스 슈바르처 (지은이) | 이프(if) | 2001년 5월

4. 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은이) | 푸른숲 | 2003년 5월

5.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 - 섹스의 심리학
데이비드 버스, 신디 메스턴 (지은이)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9월

6. 내가 사랑한 여자- 공선옥.김미월 산문집
공선옥 | 김미월 (지은이) | 유유 | 2012-07-20


2013년 1월 2일
2013/01/02 01:10 2013/01/02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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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성폭행 사건으로 한동안 성폭력에 대한 많은 담론이 쏟아져나왔다. 비슷한 시기에 임산부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고 남편의 호소글이 공개되면서 많은 이들이 함께 분노하고 두려워했다. 이에 화학적 거세에 더해 물리적 거세론이 SNS상에서 극단적인 표현과 함께 회자되었고 금주에는 새누리당이 이 '물리적 거세'를 법안으로 제출하기까지 했다. 사실 우리나라 성폭행 문제는 많은 담론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다소 투박하겠지만 고민하던 부분을 정리해볼까 한다.


1. 가해자의 인권, 사회구조적 문제
전자 팔찌, 가해자 신상 공개로부터 화학적 거세, 물리적 거세론으로 여론이 확장되어갈 때 인권을 생각하는 많은 이들은 가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적 개입에 우려감을 내비친다. 최근에 성폭행당한 여성의 남편이 "남의 집에 침입해서 때리고 강간한 범죄자의 인권만 있고 피해자의 인권은 없는가"라는 호소를 했다. 특히 미국은 유아 성폭행범은 99년형 내지 사형에 처하나 국내는 강한 처벌이라는 명목으로 최대 15년형을 구형받았다.

가해자의 인권을 걱정하는 이들은 성폭행범을 만들어낸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을 돌아본다. 널리 알려진대로 성폭행범은 대체로 불우한 유년기에 학대와 폭력으로 점철된 과거를 가지고 있다.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루저가 되어 시골로 내려간 뒤 범죄자가 되는 경우를 돌아보면서 조한혜정 같은 이는 근본적으로는 '마을(공동체)'의 제건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2. 성불평등한 사회, 여성은 배설하는 용기
몇몇 극단적인 사례들과는 별개로(개인적으로는 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만) 우리나라는 성폭행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나라다. 남녀의 권력구도에서 대체로 여성이 아랫사람이 되고 남성은 권력을 동반한 잦은 성적 희롱과 나아가 성폭행으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자주 발생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정희진이 이야기하는 근본적인 개선은 이런 남녀의 성적 불평등이 고착화된 사회가 해결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희진 표현에 따르면 남성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참을 수 없고 그것을 적당한 곳에 배설해야 한다는 논리가 우리 사회에 지배적으로 깔려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남성은 길에서 하거나(성폭행) 돈주고 하거나(성매매) 집에서 해야하고(파트너) 그 대상인 여성은 '배설하는 용기(그릇)'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폭행과 성폭행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다. 성폭행 피해자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사회와 격리된다. 내가 당했는데 성폭행 피해자는 자기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감수해야 한다. 그로 인해 신고가 용이하지도 않다. 여성 입장에서도 주먹으로 맞은 것과 성기로 강간을 당한 것은 차이가 있다. 후자는 더 큰 심적 트라우마를 동반한다.


3. 남성은 짐승, 그것을 자백하라.
남성은 참을 수 없다. 그것은 생리적인 문제다. 이 말은 다분히 극단적인 표현이기는 하다. 허나 어떤 면에서 보자면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다르기도 하다. 남성은 여성과는 상대적으로 다르게 시각적 자극에 성적 흥분을 한다. 또한 성기의 가벼운 자극만으로도 섹스할 준비가 된다. 짧은 피스톤 운동만으로도 금방 절정에 오르고 사정 후에는 금방 몸이 식는다. 반면 여성은 그보다는 조금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은 의도된 혹은 이해되는 섹스를 지향하지만 남성은 즉흥적이고 물리적인 조건만으로도 섹스를 지향할 수 있다.

이 생물학적 차이는 두 담론으로 진화가 가능하다. 하나는 그래서 '남자는 욕구가 생기면 배설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에 덧붙여 '남자는 그런 존재이니 여자가 조심해라. 옷을 야하게 입거나 밤늦게 돌아다니거나 집문을 열어두면 그건 남자를 유혹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입장. 반대로 여성 입장에서는 '아빠 오빠 말고 남자는 모두 늑대'라는 입장이다. '네가 성폭행범에 대해 강하게 비난하지만 사실 너도 짐승이란 사실을 인식하고 너도 잠정적 강간범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라'는 거다. 이렇듯 이 두 입장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간극이다.


4. 극단적 성범죄자 단상
앞서 잠깐 내비쳤듯이 나는 성폭행 연쇄살인범, 중독 수준의 유아 성폭행범과 일상적 성희롱, 성폭행 치사범들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입장들이 사실은 이 두 케이스를 구분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전자는 범인 개인의 암울한 과거(부모에게 버림받음, 지속적 폭행, 루저로 낙향)에 기인한다. 이들에게는 물리적 거세나 전자 팔찌 등으로 그들의 행동을 억압하는 방식이 아닌, 조한혜정의 입장대로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런 사회구조적으로 분노 폭발직전인 밑바닥 인생에 대해 공동체적 돌봄의 접근이 필요하다. 단 그 근본적 해결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고 소원한 일이란 생각도 든다.

물론 이런 접근은 대중들로 하여금 사회구조적 피해자가 성폭행 가해자가 되어 언제든 근처에서 나를 강간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서 벗어나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죽여버리거나 (새누리당의 법안대로) 성기를 잘라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지금처럼 공동체가 그들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면서 몇년간의 적당한 형량에 낙인만 찍어버린다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던 대로 하고 살면서 감방을 들락거리는 일밖엔 없다. 그리고 그건 여성들 입장에선 더 큰 공포가 아닐 수 없다.


5. 일상적 성범죄자 단상
이런 극단적 범죄자는 아니지만 일상적 성폭행이라 치부되는 전반적인 사건들을 저지르는 남성들도 많다. 검색해보면 매일같이 신상을 밝히지 않은 많은 성폭행, 성추행 사건들이 인터넷 기사로 올라온다. 짐작하기로 우리나라에서 하루에도 신고되지 않는 성희롱, 성폭행 사건은 수십건이 될 것이다. 구별되는 점은 여기에 연루되는 대다수의 남성들은 허우대가 멀쩡한 이들이 상당수라는 거다. 이 부류들은 정희진의 지적대로 평소에 사회생활 속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쉽게 소비하는 이들이다. 한국이야말로 술자리 2차나 룸살롱 등 퇴근 후 밤거리를 배회하다가 그야말로 '꼴리면' 어디서나 성욕을 채울 수 있는 나라가 아니던가.

밤거리와 낮거리의 구분, 접대 여성과 일반 여성의 구분이 상당히 모호한 경계에까지 이른 우리나라 남성들은 페미니스트들의 지적대로 자기 성기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정희진의 지적대로 언제나 자신의 정당한 배설욕구에 그릇(여성)이 따라줘야 한다. 이들은 (전자의 극단적 사례처럼) 분노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지만 자신의 '자연스런 행동'(성추행)을 처벌하려 할 때 사실을 부인하거나 자기만 걸렸다는 억울함으로 뒤늦게 분노한다! 이들은 천막을 치고 변두리에 살지도 않고 파산을 한 것도 아니다. 집에서는 아이들과 몇 시간씩 놀아주는 착한 아빠요, 아내에게 은근히 잘하는 남편이다. 그저 성욕의 해소는 사회생활 가운데에서 비교적 자연스러운 남성문화이며 그것이 잦아지면서 경계가 모호해지다가 재수없이 걸렸을 뿐이다.


6. 중간 결론
장황하게 쓰긴 했는데 지금에 내 생각은 (분노를 동반한 즉흥적 반응이 아니라면) 성폭행이라는 문제가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들과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이다. 개인, 가족과 사회구조, 과거와 현재가 복합적으로 엮여 있기 때문에, 여성이 주된 피해자라는 분명한 사실을 제외하곤 쉽게 어떤 입장을 정리하거나 대안이라고 제시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전자 팔찌는 사후 약방문에 불과하고, 가해자 신상공개나 3년 정도의 감금은 가해자에게 '넌 계속 그렇게 살아'라는 메시지밖에는 줄 수 없다. 이들을 한 마을이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교정해나간다는 것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지금 내 옆에서 누군가가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에 비한다면 과할 정도로 현실적이지 않다.

더욱이 한국사회는 사회생활에서 성매매가 여전히 남성들이 향유하는 하나의 직장문화처럼 존재하고 있고, 여성이 남성의 동료가 아닌 권력구도상 비서나 부하직원인 경우가 다반사이므로 '짐승같은 남성들'이 쉽게 성매매와 성희롱의 경계를 넘나든다. 문제는 공동체가 허물어진 한국사회에서 평범한 남성이 성추행을 해서 일단 낙인이 찍혀버리면 그 남성도 곧 '너도 이미 성범죄자이니 계속 그렇게 살아'라고 치부하는 격이 된다.

결국. 나는 한심하게도 이 모든 문제에 있어 좀더 고민해보자는 입장이다. 그리고 특별히 남성과 여성이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하련다. 남성을 짐승 취급해서 잠정적 성범죄자로 배제해버리고 여차하면 '거세'의 위협을 주는 게... 정서적으로 백분 공감은 되지만 장기적으로 서로에게 득이 될리 없다. (특히 남성 입장에서 '나는 그런 류의 짐승이 아니다'라고 항변하거나 반대로 '나도 잠정적 강간범이다'라는 인정의 극단이 좋은 해결구도를 만들 성 싶지 않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보다 현실적으로 성폭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안과 장기적으로는 성폭행 건들을 줄여서 남성과 여성의 공존 공간을 확장해갈 수 있는 담론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참고 기사
- [조한혜정 칼럼] 한 아이를 위해선 온 마을이 필요하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50139.html

- [정희진의 낯선사이]그들이 ‘화학적 거세’를 선호하는 이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 ··· 3D990100

2012/09/07 01:04 2012/09/07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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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집단 지성의 결과로 정리한 페친들이 애정하는 여성 글쟁이들을 모아봤습니다.
블로그에도 올리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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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
 정신분석이라는 전문영역을 맑은 정서적 감성으로 전달하는 정신과전문의이자 정신건강 컨설팅 기업인 ‘마인드프리즘㈜’의 CCO(Chief Contents Officer)이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으며 연세대와 아주대 의대 외래 교수를 지냈다. 1996년부터 여러 기업의 중견 관리자를 대상으로 '자아경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 하면,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서 살아남은 직장인들의 심리적 공황상태를 연구한 'ADD 증후군'을 제기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밖에 기업경영에 정신의학을 접목시킨 '심리경영' 등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저서로는『불안한 시대로부터의 탈출』『남자 vs 남자』『사람 vs 사람』『삼색공감』『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공저) 『홀가분』등이 있다.
 

정희진
 여성학은 하나의 분과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多학제적, 間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가정폭력과 여성인권』,『페미니즘의 도전』을 썼고,『한국 여성인권운동사』,『성폭력을 다시 쓴다』을 엮었으며, 그 외 여러 책을 함께 썼다.

김현진
 이제 막 삼십대에 접어든 글쟁이다. 1999년, 강압적이기만 한 고등학교를 박차나고 나와 『네 멋대로 하라』를 쓴 이후로 줄곧 글로 목소리를 내며 살았다. 88만원세대를 대표하는 그녀는 늘 거친 현실과 사투를 벌이듯 뜨거운 마음으로 살았다. 집도 절도 돈도 빽도 없이 도시빈민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왔지만, 가진 건 없어도 긍지는 있다고 자부한다. 거침없이 솔직하고 당찬 그녀의 글은 그런 특유의 굴하지 않는 강인함에서 나온다. <한겨레><시사IN> 등에 칼럼을 써왔고, 2011년 현재 <경향신문>에 기고 중이며, 지은 책으로는 『불량소녀백서』『질투하라 행동하라』『그래도 언니는 간다』『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김현진의 B급연애 탈출기』 『뜨겁게 안녕』 등이 있다.
 

조한혜정
 1948년 부산에서 태어남.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UCLA 대학에서 인류학 박사를 수료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강의를 맡고 있음. ‘또 하나의 문화’를 통해 여성문화,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담론들을 제시하고 생산해 왔음. ‘하자센터’를 통해 작업장 학교라는 대한학교를 설립하고, 노리단이라는 사회적 기업을 발족시켜 청소년 문화운동과 대안교육의 다양한 실험을 해옴. 현재 환경운동연합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우정과 환대가 가득한 공동체 마을의 복원을 꿈꾸고 있음. 저서로 <한국의 여성과 남성>, <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 ― 한국의 여성과 남성 2>, 연작 형태의 문화 비평서인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1·2·3>, 교육 현장을 다룬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가 있으며, 마거릿 미드의 <세 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를 번역했다.

김혜리
 서울에서 태어나 역사를 공부하고 영화잡지 기자가 되었다. 다른 일은 한 적이 없다. 『씨네21』을 만드는 과정에서 쌓인 글을 묶어 리뷰집 『영화야 미안해』, 인터뷰집 『그녀에게 말하다』 『진심의 탐닉』을 책으로 냈다. 영화 속 한 컷을 관찰한 짧은 에세이를 모은 책 『영화를 멈추다』가 『그림과 그림자』와 사촌에 가깝다.
 

목수정
 목수정은 공연 예술, 문화 정책 분야에서 일하다가 현재 파리에서 문화, 여성, 정치 분야의 글을 쓰며 살고 있다. 나이 차가 스무 살 넘게 나는 프랑스 남자와 비혼인 채 아이를 낳고 사는 만만치 않은 미션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야성의 사랑학》 등이 있다.
 

장영희
 1952년 9월 1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뉴욕 주립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1년간 번역학을 공부했으며, 서강대 영미어문 전공 교수이자 번역가, 수필가, 칼럼니스트, 중·고교 영어 교과서 집필자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영미시 에세이 《생일》, 《축복》의 인기로 ‘문학 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김현승의 시를 번역하여 ‘한국 문학 번역상’을 수상했으며, 2000년에는 월간 <샘터>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첫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을 펴냈다. 이 책으로 2002년 ‘올해의 문장상’ 제 1회 수상자가 되었다. 2003년에는 아버지인 故 장왕록 교수의 추모 10주기를 기리며 기념집《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엮어 내기도 했다. 마지막 수필집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완성해 희망의 빛을 남기고, 향년 57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타계 후 1주기 기념 유고집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가 출간되었다.
 

박완서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2011년 1월 향년 8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작품으로는 소설집 <엄마의 말뚝> <꽃을 찾아서> <저문 날의 삽화> <한 말씀만 하소서> <너무도 쓸쓸한 당신> <친절한 복희씨> 등이 있고,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 <서 있는 여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등을 수상하였다.
 

김류미
 강남이 허허벌판일 때부터 거기 살았고 반지하 자취생활을 거쳐 다시 강남에 산다. 몇 년 간의 알바 인생에서 얻은 좌우명은 ‘일하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다’였다. 졸업 후, 1년간 희망청에서 일하며 ‘88만원 세대’라는 접점을 고민했다. 블로그질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트윗질에 집중하는 편. 구원 같았던 책을 만들고 소개하며 마침내 쓰게 된 행운도 누렸지만, 여전히 좋은 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여전히 하루하루가 산만하다. 저서로 <은근 리얼 버라이어티 강남소녀>가 있다.
 

노혜경
 시인. 정치에 사랑이라는 담론을 이끌어들인 노사모를 만드는 데 기여했고, 말과 글과 삶의 일치를 통해 지식인의 실천을 꿈꾼다. 탈근대의 정치는 시(詩)여야 한다고 믿는다. 지은 책으로 <새였던 것을 기억하는 새>, <뜯어먹기 좋은 빵>,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등이 있다.
 

강금실
 1957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75년 경기여고를 졸업했다. 1979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여 1981년 23회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법조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83년~1995년 판사로 재직(1994~1995 서울고등법원 판사)하였고, 2000년에는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를 맡았고, 2001년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부회장을 역임했다. 2003년 첫 여성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현재 여성인권대사, 아시아재단우호협회 이사, 법무법인 우일아이비씨 고문 변호사를 맡고 있다.
 

고은광순
한의사, 마인드 힐링 전문가. 1955년 서울 출생. 이화여자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3년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으나 학생운동으로 2회 구속, 2회 제적됐다. 1984년 대전대 한의예과에 입학,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한의사협회와 한국한의학연구원 감사를 지냈으며, 1998년부터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해 호주제 폐지, 부모 성 함께 쓰기, 종교법인법 제정 운동을 주도했다. 현재 충청남도 시골에서 솔빛한의원을 운영하며 빛사람수양회를 이끌고 있다. 또 새로운세상여성연합 대표로 여성평화행복학교를 운영하며 한겨레 휴센터와 공동 주관으로 ‘고은광순과 함께하는 여성 건강 교실’(2박 3일)을 열고 있다. 곧 충북 옥천 지역에서 공동체 마을을 시작할 계획이다. 저서로 《어느 안티미스코리아의 반란》 《한국에는 남자들만 산다》 등이 있고, 《펄루, 세상을 바꾸다》 《그래도 내일은 희망》 《웃을 순 없잖아!》 《엄마가 결혼했어요》 등 청소년을 위한 번역서가 여러 권 있다.


김형경
 소설가이자 시인. 1960년 강릉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1983년 《문예중앙》에 시가, 1985년 《문학사상》에 중편소설 《죽음 잔치》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83년 첫 장편소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로 제 1회 국민일보 문학상을 수상하며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장편소설 《세월》,《피리새는 피리가 없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성에》, 《외출》, 《꽃피는 고래》를 발표했고, 창작집 《단종은 키가 작다》, 《담배 피우는 여자》, 시집 《모든 절망은 다르다》 등을 펴냈다. 심리 에세이로 《사람풍경》, 《천 개의 공감》, 《좋은 이별》,《만가지 행동》이 있다. 제10회 무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권윤주
고양이와 재즈, 카페를 사랑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카투니스트이다. 대학 졸업 후 각종 일러스트레이션과 캐릭터 작업을 해왔다. 만화 웹진 <넷터치 코믹스>에 카툰을, 영화 잡지 FILM 2.0에 '스노우캣의 영화일기'를 연재했다. 그녀는 자신의 홈페이지 http://www.snowcat.co.kr/ 에서 Snowcat이란 이름으로 일상생활을 잔잔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 일반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스노우캣은 네티즌들 사이에 '귀차니즘', '귀차니스트'라는 말을 퍼뜨렸으며, '혼자 놀기'와 '카페 놀이' 등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작품집으로 <Snowcat in New York>, <Snowcat의 혼자 놀기>, <Snowcat in Paris>, <Snowcat Diary>(1·2권), <To Cats 고양이에게>가 있으며, 삽화를 그린 책으로 <웃지 마 나 영어책이야>, 표지 그림을 그린 책으로 피터 게더스의 <파리에 간 고양이>, <프로방스에 간 고양이>,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고양이> 등이 있다. 2002년 제1회 독자만화대상 온라인 만화상, 2006년 제24회 프랑스 3천만 동물 친구들을 위한 재단 문학상을 수상했다.
 

김여진
영화배우. 2011년 부일영화상, 2002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2000년 대종상영화제, 1999년 춘사대상영화제, 1998년 청룡영화상 수상. <청춘콘서트 2.0 청춘, 외치다>에서 ‘행동하는 청춘 Action!’이라는 내용으로 청년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의제와 행동을 제안하는 액션토크를 서울에서 진행하였다. 청년들의 현실적인 문제와 대안을 함께 만들어나갔으며, 정의로운 영혼이자 행동하는 여배우로 불리고 있다. 다수의 연극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쌓았고 영화, TV 등 다양한 매체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여배우다. @yohjini

 
나임윤경
 연세대학교와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학교 교육학과 성인(여성)교육학을 공부했으며,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밝히는 일, 대한민국 여성들의 현주소를 성찰하고 불합리한 사회를 바꿔나가는 일에 열정적이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젠더연구 입문』, 『여성교육 개론』, 『여성커리어와 리더십』과 같은 여성학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여자의 탄생』, 『여성교육과 실천』, 『여성과 남녀공학대학교의 ‘공정한’ 만남을 위하여』등이 있다.
 

공지영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8년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착한 여자 1,2권》《고등어》《봉순이 언니》《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즐거운 나의 집》《도가니》등이 있고, 소설집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별들의 들판》, 산문집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상처 없는 영혼》《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등이 있다. 21세기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앰네스티 언론상 특별상, 제10회 가톨릭문학상, 2011년 제35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김려령
 서울예술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마해송문학상,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 첫 소설 『완득이』가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 독자까지 아우르며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져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대표 작품으로『우아한 거짓말』,『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기억을 가져온 아이』, 『요란요란 푸른아파트』,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가 있다. 『우아한 거짓말』은 ‘2012 I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어너리스트’로 선정되었다.
 

나희덕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등이 있고, 산문집 『반 통의 물』,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편저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유리병 편지』등을 펴냈다. 2011년 현재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8년 소월시문학상, 2005년 이산문학상, 2003년 현대문학상, 2001년 김달진문학상, 1998년 김수영문학상,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수상.
 

유인경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 여성부 부장을 거쳐, 현재 경향신문사의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의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유인경의 해피먼데이>, <웬수들과 살기>, <내 인생 내가 연출하며 산다>,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등이 있다.
 

어슐러 르 권
 1929년 10월 21일, 미국 버클리에서 인류학자 알프레드 크로버와 작가 디어도어 크로버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장 이른 작품들은 <오시니아의 이야기>와 <말라프레나> 등에서 다시 보게 되듯 가상의 나라를 배경으로 하기는 하지만 판타지가 아니었다. 관심사를 살려 출판할 방법을 찾던 르 귄은 초반기 과학소설에 대한 관심을 돌이켰고, 1960년대 초반부터 정기적으로 출판을 하기 시작했다. 르 귄은 1969년에 출간한 유명한 과학소설, <어둠의 왼손>으로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미국과 영국에서 백만 부 이상이 팔리고 16개국에 번역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는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와 더불어 세계 3대 판타지 소설로 꼽힌다. '휴고 상', '네뷸러 상'을 십여 차례 수상했으며, 그 외에도 '세계 환상문학상'과 '카프카 상', '필그림 상'을 수상했으며 세계 과학소설 연맹에서 수여한 '간달프 상'을 1979년에 수상하였고, 과학소설과 판타지 소설에 기여가 큰 사람에게 수여하는 '그랜드 마스터 상'을 2003년에 수여받았다.
 

한나 아렌트
 제2의 로자 룩셈부르크로도 불리는 한나 아렌트는 시몬느 베이유, 로자 룩셈부르크, 에디트 슈타인과 함께 4대 유태인 여류 철학자로 꼽힌다. 아렌트는 1906년 독일의 하노버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났다. 그녀는 유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평생 강하게 간직하며 살았는데, 이러한 조건이 그의 삶이나 사상에 끼친 영향도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독일 아카데미로부터 프로이트 상을, 덴마크 정부로부터 소니그 상을, 함부르크 시로부터 레싱 상을 수상하는 등 50년대와 60년대를 실천적 강의와 저술 활동으로 빼곡이 채우며 세계 지성인의 주목을 받았다. 미완성작으로 남은 <정신의 삶>을 집필하던 중, 1975년 12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지은책으로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혁명에 관하여>, <공화국의 위기> 등이 있으며 사후에 <정신의 삶>, <칸트의 정치 철학 강의>가 출간되었다.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2004)
 1933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15세가 되던 1948년 버클리의 캘리포니아에 입학해 일찍부터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해 시카고 대학으로 옮긴 후 그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28세의 젊은 사회학도 필립 리프와 결혼, 1952년에 첫 아들 데이빗을 낳았다. 1955년 하버드 대학의 철학 박사학위 과정에 들어간 뒤 1957년 학위를 수여하고, 이듬해 파리 대학, 옥스퍼드 대학,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하며 다시 학계로 돌아 왔다. 그 뒤 1959년부터 뉴욕시립대학, 사라 로렌스 대학, 컬럼비아 대학 등에서 철학 강의를 맡게 된 이후 1960년부터 각종 신문과 잡지에 활발한 기고 활동을 펼쳤다. 이때 첫 번째 소설 <은인>(1963)을 발표하면서 서서히 문단과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에세이 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예술 평론가로 입지를 굳혔다. 지은책으로는 평론모음집 <해석에 반대한다>, <은유로서의 질병>, <타인의 고통> 등이 있으며, 200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올해의 평화상(Peace Prize)'를 수상했다. 2004년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니콜 크라우스
1974년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의 고독』에 반해 10대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시를 썼으며 이십 대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스탠퍼드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미술가 조지프 코넬에 대한 논문을 썼다. 이 년 동안 마셜 장학금을 받으며 영국의 코톨드 미술 연구소에서 미술사를 공부해 석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과 예술 전반을 깊이 있게 공부한 니콜 크라우스는 남편 조너선 사프란 포어와 함께 뉴욕 문단에서 분더킨트(신동)로 불린다. 2002년에 출간한 첫 소설 『남자, 방으로 들어간다』는 기억과 정체성, 고독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강렬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니콜 크라우스는 이 소설을 통해 작가적 상상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특유의 서정적인 미스터리 기법으로 사랑을 이야기한 두 번째 소설 『사랑의 역사』(2005)는 출간 당시 뉴욕 문단의 최대 화제작으로 떠올랐으며, 35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레베카 피펏
일리노이 주립대와 바르셀로나 대학, 리전트 칼리지,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했다. 국제적인 강연자이자 저술가로, 여러 학교와 목회자 훈련 세미나에서 영적갱신, 전도, 성품 훈련 등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지은책으로 <빛으로 소금으로>, <하나남의 마음에 합한 사람>, <전도>, <토마토와 빨간 사과>등이 있다.




 *소개글 출처: 온라인 서점 알라딘

2012/06/16 01:09 2012/06/16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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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 슈바르처의 <<아주 작은 차이>>를 다 읽었다. 대체로 그 책에 나오는 70년대 독일 여성들의 고통은 헤어나올 수 없는 가사, 육아 노동과 남편에게 언제나 '대줘야' 하는, 그러나 자신은 단 한번도 만족하지 못한 성적 봉사에 기인했다. 그로 인해 멀쩡한 가정에서 호사를 누리는 듯이 보이는 여성들도 스스로를 노예나 창녀로 인식하곤 했다.

여성문제를 파고들다 보니 어느덧 '성해방'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허나 이 주제에 대해서는... 내가 몸담은 개신교계에서는 대체로 함구하거나 회피하는 편이다. 여성 문제를 지적하는 분들도 '몸'에 대한 담론을 풀어가지만 일상적으로 겪는 성관계에서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려한다.

알리스 슈바이처는 자신의 책에서 킨제이보고서를 언급하면서 질 오르가즘 vs. 클리토리스 오르가즘의 문제를 거론한다. 결론적으로 질 오르가즘 집착은 남성의 성욕구 충동에 한정될 뿐 여성은 후자를 통해서도 충분히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레알' 여성이 아닌 관계로 더 깊이 다루지 않더라도 성관계 안에서도 남성은 자신의 욕구를 항상 해결하는데 반해 여성은 가정에서도 성적 욕구를 억압받고 강요당하여 남편에게 성적인 '봉사'를 해야했다고 언급한 경우가 많았다. (사례들은 가사노동과 남편 음주폭력과 동반되곤 했다)

성적인 부분, 즉 가정안 섹스의 역학 관계를 규명하기어려운 이유는 자신의 배우자와의 침실을 공론장으로 끌어내야하기 때문이다. 부담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으나 바로 그런 이유로 가정안에서의 여성의 성은 은밀하게 억압받고 강요받고 왜곡되는 현실이 지속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자주 느끼는 건데, 남성은 여성문제에 관해 배워야 할 부분이 참 많은 것 같다. 일상 가운데에서 폐쇄적인 이런 성문제를 어떻게 담론화 시킬 지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하겠다. (끝)
2012/06/13 01:08 2012/06/13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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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적은 약자다' 라는 말이 있다. 흔히들 하는 말로 여성의 적은 여성이란 말이 있도 있다. 며느리의 적은 시어머니고 여성 사원의 적은 여성 상사라는 의미다. 이 부분을 좀더 풀어서 말해볼까 한다.

 

사회에서 부를 가지지 않은 자, 여성,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반대 계급, 이를테면 부를 가진자, 남성, 비장애인, 고용주에 의해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지속적인 차별과 억압을 당한다. 이것은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관점이지만, 실제 개개인인의 미시적인 삶에서는 구조적 개혁이 더딘 관계로 구조를 뜯어고치기 보다는 개인의 윤리와 처세에 보다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가난하지만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성으로 차별을 받지만 그 상황에 불평하지 말고 더 열심히 일해서 가정과 회사 모두 인정받는 삶을 살아라.. 등.

이 대목에서 우리는 관련된 수많은 처세법들과 그것들을 상세하게 정리한 서적들을 만난다. 이른바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대변되는 마인드 컨트롤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말고 최악의 사건이 오더라도 긍정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하면된다는 믿음을 잃지 말기를 종용한다. 이런 긍정적인 생각은 실제로 심리학적으로도 개인의 역량을 발휘하는데 도움이 되며 자수성가한 다수의 개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꿈을 이루고자 하는 긍정적 사고+불굴의 노력이 결실을 이루게 되었다는 류의 말을 자주 언급한다.

 

나도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매사에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으로 어떤 일이나 삶 전반을 바라보기 보다는, (많은 심리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어떤 일이든 노력하면 성취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개개인의 능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거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그렇게 노력하여 소위 '성공한', '자수성가한' 이들이 원래 자신이 속했던 열등 집단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분명 이들의 피나는 헌신과 노력, 열정은 개인적 차원에서 칭찬할 만한 무엇이 되겠지만 자신의 예를 통해 자신이 속한 집단을 질책하는 방식 - 이를 테면 '나도 XX해봐서 아는데 죽도록 힘쓰면 이룰 수 있다, 불평불만만 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더 노력해라' - 으로 변하면 그것이야말로 더 큰 폭력이 될 수 있다.

며느리의 위치에서 성실히 수행하여 인정받은 여성은 시어머니가 되어서는 며느리의 위치에 불만을 품은 여성을 억압하고, 말단 사원으로 입사하여 CEO에 올라선 사람은 노조운동을 하며 회사를 비난하는 사원들에게 손가락질한다. 장애를 극복한 이들, 흑인이면서 헐리우드에 스타가 된 배우, 육아와 직장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수퍼 비지니스 우먼. 이들은 존재만으로도 억압받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나는 구조에 불만을 품지 말고 저렇게 뼈를 깎는 노력을 덜 해서 지금 이 처지가 되었다는 윤리적 자학에 빠지게 만든다.

어메리칸 드림처럼, 사실상 차별받는 집단 속에서 성공하는 개인이 나올 확률은 극히 적다. 허나 매체나 사회는 이런 이들을 대서특필하고 긍정적 사고를 통한 개인의 노력에 매진할 것을 권한다. 이러한 푸닥거리 이면에는 불평등한 체제를 지속시키고자 하는 보수집단의 욕망이 숨어있지만 말이다. 고로 성공한 몇몇 개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첨병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자신의 성공에 스스로 놀라며 누구나 나처럼 하면 된다는 계몽을 시도하지만 노력해도 그를 쫓아 계급적 도약을 하지 못하는 다수의 차별받는 이들에게는 좌절감에 더불어 죄책감까지 떠앉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자수성가한 이들에 대한 집중적 조명과 칭송보다는 그가 그 과정에서 겪게된 차별과 불평등한 상황들을 더 드러내는 방향으로 관점을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공담을 조중동같은 보수 매체에 넘겨주기 보다는 좀더 그 성공의 내러티브(스토리)를 풀어내어 차별받는 더 많은 개개인들이 행복해지지 못하는 중간 장벽들을 거대담론이 아닌 삶의 미시적 차원에서 조명해야 하며, 이러한 작업은 사회구조적 측면, 거대담론적 사회비평과는 사뭇 다른 층위의 조명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작업이야말로 성공지향적이고 처세술이 판치는 사회 속에서 우리의 피부에 와닿는 공감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믿는다.

2012/05/03 01:03 2012/05/03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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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장은 남성을 적으로 상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성은 적이 아니라는, 여성들의 자기 다짐과 남자를 안심시키는 발언들, 그리고 남성과 대립하고 싶지 않은 자기 최면의 배후에, 혹시 '가부장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다.'라는 무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보자는 것이다. (37)

 

각 분야에서 여성 1호가 된 여성이나 고위직에 오른 여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바깥일을 하지만 애들 아침밥은 꼭 차려주고 나와요." 그리하여 나처럼 출세도 못했으면서 아침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주눅들게 하고, '나쁜 여자'인 여성운동가의 이미지와 확실한 선을 긋는다. (37-38)

 

마오쩌둥, 마르크스 모두 중산층 지식인이었지만, 언제나 페미니스트만 중산층 지식인인 것이 시비거리가 된다. 이렇게 말하는 남성들도 대개는 중산층 부르주아 '지식인'인 경우가 많은데, 다른 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여성운동가 중 일부가 지식인이라는 시살은 못 견뎌한다. (39)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여성운동은 남자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남성의 세계관과 경험만을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로 만드는 힘을 조금 상대화시키자는 것이다... 또 내가 생각하는 여성운동은 여성이  '공적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넘어, 남성이 '사적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정신차려야 할' 집단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남성들이 집에서 노동하지 않는 한, 여성에게 사회 진출은 이중의 중노동만을 의미할 뿐이다.(40-41)

 

여성주의는 차이나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차이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구성한다. 여성주의는 정치적 올바름, 통일성이나 단일성의 가치보다는 대화의 가치를 강조한다. (44)

 

한국 현대사의 고통과 비극의 성별적인 두 주체, 정신대 '할머니'와 장기수 '선생님'의 존재는 이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전자는 역사의 피해자, 전쟁의 '부산물'이지만 후자는 역사의 치열한 주체이며, 인간의 신념과 의지를 상징한다. 전자는 불쌍한 혹은 수치스런 존재지만, 후자는 존경스럽고 경이로운 존재다. (53)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을 분류, 분리하는 방식은 聖女와 性女, 정숙한 여성과 순진한 여성, 본처와 애첩, 아내와 애인...은 배타적인 범주 같지만 남성을 위한 여성의 기능이라는 점에서 같다. (55)

 

어느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 수 없지만, 유독 어머니만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남편을 출세'시키고'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야'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맞으면서도 그를 변화시켜야 하고(피해자는 해결사가 되어야 한다), 어머니는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 앞에서도 자녀들에게는 모성애를 발휘해야 한다...훌륭한 어머니가 되려는 여성은 자신을 파괴하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어머니는 남을 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62)

 

남편에게 당하는 고문과 국가로부터 당하는 고문의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 다른 점이 있긴 하다. 국가 기관에서 고문당한 사람은 고문 가해자에게 밥을 차려주지는 않아도 되며, 평생 맞는 것도 아니다. 국가 폭력의 가해자들은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해도 결국 법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가정은 치외법권 지대이며 아내를 구타하는 남성들은 광범위한 사회적 이해와 지지를 받는다. (124)

2012/04/10 01:05 2012/04/10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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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버스를 탔다. 안으로 들어가서 여성분 앞에 섰는데 가슴이 많이 패인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정말 의식하지 않은 채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고, 엄밀히 말하면 그녀의 가슴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골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내 시선을 마주치고서 즉시 불쾌한 표정을 짓고는, 놀라서 그 다음 행동을 고민하는 듯 했다.

멍하게 있던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직감했고 - 엄밀히 말하자면 내 시선이 그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직감했고 - 뒷걸음치며 과하게 고개를 돌려서 다른 쪽을 바라봤다. 급한 뒷걸음질로 나는 뒤에 서 있던 남자와 부딫혔고 그는 '아이씨~'하며 짜증스런 소리를 내뱉었다. 난 뒷사람에게 목례로 사과하고 붉어진 얼굴과 쿵쿵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난 시선이 그쪽에 머물러 있었지만 정말 보지 않았다. 아니 '의식하며' 본 게 아니었다. 사실 그 좁은 공간에서 그녀쪽을 보지 않으려면 과하게 고개를 획 돌리고 있어야 했었다. 생각을 하다보니 그렇게 오버해야 했나 싶기도 하고 내가 그녀 쪽 어디를 봤더라고 날 째려보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감도 들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상상하는 나의 한심한 모습을 떠올리니 이번엔 내가 도리어 화가 났다.

'뭐냐.. 옷은 왜 그렇게 파지게 입고, 사실 난 당신 옷에 관심도 없었는데 지금 날 싸이코 변태 아저씨 취급하는 거냐.' 머리속에서 별 생각이 다 났다. 흥미롭게도, 나는 오해를 받자마자 그녀를 미워했고 내 행동이 당사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지에 대해 인식 속에서조차 침묵했다. 내 동기가 중요할 뿐 그녀가 받은 불쾌감, 위협감, 그런 것들은 사실상 사소한 문제처럼 느껴졌다.

거의 99%의 남성들이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을 때 '주관적인 모멸감'을 느끼면 성희롱이라는 대목에서 흥분한다. 논리적이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 명수인 '남성들'의 잣대에서 '여자 사람'의 개별적 성향에 따라 절대적 기준없이 사과해야 하거나 안 해도 되는 상황, 처벌을 받거나 처벌받지 않는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도무지 받아들이질 못하는 것이다. 해서 남성들은 '주관적 모멸감'에 대한 처벌에 대해 윤리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교통법규 같은 규칙으로 인식한다. "IF 불쾌하다고 하면 THEN 당장 사과한다"... 의도는 그렇지 않았음에도 버스안 그녀가 불쾌해 했다는 점을 공감하지 못하는 나처럼.

또한 다수의 남자들은 성희롱 문제 해결 혹은 예방을 위해 여성들도 남성들과 똑같이 대하면 된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이들이 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한마디로 직장 동료가 아닌 단란주점에서 부르면 나올 법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더듬거나 추태를 부리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진일보한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슴이 파인 옷을 입은 남성의 가슴팍에 시선을 고정하고 멍때리고 앉았으면 동일한 문제가 됐을까.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같은 의미에서 남성 특유의 동료의식을 버리고 여성을 여성으로 대해야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닐까. 이는 성 불평등과는 다르다. 농담을 던지며 가볍게 몸을 두드리는 게 남성들에게 허락되고 그것이 우정의 한 표현이라고 여성에게도 그렇게 하고 그것의 의도를 존중해달라는 남성들을 우리는 가감없이 '변태'라고 부를 수 있다. 같은 파진 옷과 타이즈를 입고 있어도 그 몸매를 주시한다면, 남성과는 달리 여성은 그런 시선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그런거다. 성적 평등과 성적 구별은 엄연히 다르며 그걸 놓친다면 당신은 억울해하면 분노하는 '성추행 변태 아저씨'가 될 것이다.

아내는 종종 나를 '게이'로 분류할 정도로 여성적이라고 평가하지만 나도 때때로 마초적 성향이나 가부장적 정서에 깊이 매몰되어 있음을 의식할 때가 많다. 버스 안에서의 사건이 이를테면 그렇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그녀였다면 어땠을까. 한껏 멋내려고 차려입고 버스에 앉았는데 어디서 거구의 아저씨가 앞으로 다가와 내 몸을 눈으로 훑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어떤 게 있었을까. 모든 걸 떠나서 일단 불쾌하고 한편으로 무섭지 않았을까. 만일 왜 쳐다보냐고 소리질렀을 때 그 무시무시한 남자가 '내가 언제 쳐다봤냐'고 '난 그냥 멍때리고 있었다'고 도리어 화냈다면 어땠을까. 그를 이해하고 공감했을까. ...혹은 경찰에 신고했을까.
2011/10/05 01:03 2011/10/0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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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엉뚱하고도 냉정하게 들릴법한 이야기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미에서..)

전업주부의 가치는 얼마일까.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무상으로 일하는 아내의 비용을 산정해보자는 말이다. 아내가 아니고 어떤 여성을 고용했다 치자. 나는 아들이 있다고 치고. 집에 상주하면서 육아를 한다면, 아이의 세끼 식사와 목욕, 산책 같은 것을 시켜준다. 내 경우, 아침은 상관없지만 저녁은 차려주고 방청소와 내 옷 빨래, 장보기 등등을 저녁 10시까지 수행하고 잔다면 비용은 얼마가 들까. 일당 10만원? 15만원? 20? 일단 10만원으로 잡고 주말은 전혀 사람을 쓰지 않고 내가 모든 일을 한다고 치면 10만원X20일=200만원이 든다.

게다가 잠자리도 같이 한다. 이 대목에서 남편들은 '잠자리는 함께 즐기는 것'이라고 화를 낼 수 있다. 좋다. 좀 애매하긴 하지만 내가 원할 때 잠자리를 권하는 것과 동의했으나 상대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표현할 경우만 카운트하자. 이 비용은 어떨까. 아저씨들 단란주점 2차 비용 정도로 산정하면 될까. 나는 시세를 잘 모르니 대략 매달 100만원 정도 든다고 치자.

내가 생판 모르는 여성을 고용해서 내 아내 수준의 '일거리'를 요청한다면 최소 300만원 이상은 매달 지급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관리비, 생활비 등등이 따로 나가야 하고 주말에 출근을 하거나 일이 있어서 하루이틀 더 써야 한다면 아마 월 350~400만원 선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내 생각에 이런 고비용의 인력을 실비로 사용하면서 돈벌어다 준다고 생색도 내고 육아를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게 하고 (직장에서 임신했다고 알아서 눈치주고 해고시키기도 하지만) 집에서 니가 하는게 뭐냐고 호통치기 일쑤이나 바로 그 만만한 아내가 하는 노동은 최소 월 300만원 이상의 노동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게다가 남자에게 직장그만두고 같은 일을 시킨다면, 그는아마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눈치를 보거나 심한 굴욕감에 그보다 적은 보수를 받는다 해도 분명 직장생활을 선택할 것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거다. 고비용의 노동을 거의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남들이 특히 남성들이 꺼려하는 저계급의 일을 한다는 점에서 '아내라는 직업'은 통계치가 이야기하듯 여성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게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다. 남성들이 하도 그 얘기를 못알아듣는 거 같아서 '남성들의 언어'로 한번 계산해봤다.

그리고 내가 제안하고 싶은 건 이거다. 월급을 받으면 급여로 아내에게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라. 그 후에 교육비, 생활비 등 가정에 필요한 돈을 논의하자. 분명 당신은 자동차를 사거나 아이패드, 갤럭시탭을 지를 때 아내에게 돈을 빌리거나 아내에게 고비용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주말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야 취미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2011/09/28 01:02 2011/09/2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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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네트워크를 사용한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트위터, 페이스북, 링크드인, 미투데이 등 여러 가지 사이트가 있지만
주로 이용하는 것은 트위터이다.
트위터는 140자 안에서 자신의 생각이나 대화 내용을 타임라인에 뿌려줄 수 있다.
또한 단순하면서도 임베디드 가능한 플랫폼 때문에 사진을 올릴 수도 있고
모꼬지라는 그룹핑을 이용하여 취미나 성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오프모임도
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나는 이 공간에서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140자를 이용하는 트윗 공간에서 주로 정치나 사회 문제등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거나 아이폰이나 IT쪽의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이들은 140자 밖에 되지 않는 트윗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굳이 정치적인 쟁점을 놓고 서로를 비방하며 논쟁을 일삼는 사람들이다.
(솔직히 나는 트위터라는 플랫폼이 논쟁의 도구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140자로 어떻게 상대방의 비판에 대해 자신의 논지를 일목요연하게 펼칠 수 있다는 말인가.)

어쨌거나.. 나는 개인적으로 트윗 공간에서 거대 담론과 같은 무거운 주제들을
되도록이면 논하고 싶지는 않았고 직장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공간이므로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일상의 자잘한 이야기들, 흔히들 말하는 수다를 떨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트윗에서 나는 여성성으로 대변되는 '언니'로 불리는 일이 잦았다.^^

솔직히 그간 나는 좀 무거운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항상 교회를 이야기할 때 그랬고 글을 쓸 때에도 그런 이미지를 많이 심어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귀여운 막내였고 지금도 아내에게 농담을 자주 던지고 때로는
알랑방귀를 끼는 웃기는 남편이다.
게다가 흥미롭게도 어머니도 대학 시절 진지하게 나에게 물어봤고
아내도 최근에 진지하게 물어보았는데 그건 다름아닌 내가 '게이'가 아닌가 하는 질문이었다!
지금도 가끔 아내는 나에게 '계집애' 같다고 한다.

트윗에서도 그렇고 삶에서도 그렇고 나는 나이가 들면서 나의 자연스러움을 찾아가고 있다.
예전에는 내가 되고 싶던 멋진 모습을 그려놓고 그것에 나를 맞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미지 관리 같은 것 말이다.
나이가 서른을 훌쩍 넘기면서 나는 어깨에 들어간 힘이 조금씩 빠지고 있음을 느낀다.
세상을 향한 긴장, 초조함 같은 것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은 느슨한 태도로
나를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서른 다섯, 생일을 지내면서 이제 나는 나의 여성성, 나의 가벼움을 긍정할 수 있을 것 같다.
2010/04/06 01:24 2010/04/06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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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성의 날입니다.
여성의 날을 챙기다보면 간혹 "그럼, 남성의 날은 왜 없냐?"며
빈정대는 아저씨들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남성의 날이 없는 이유는 365일이 남성의 날이었기 때문이며
지금도 그러한 상황이 별로 개선되지 않은 느낌입니다.

물론, 예전에 비해 여권이 신장되었다고 하지만
국회의원에서 의사,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우리나라의 고위직에서
여성 비율을 뽑아보면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싶습니다.


게다가 회사를 다녀보니 왜 이리 여성은 회사 다니기가 힘든지
사무실에서 주방일도 해야 하고,
술자리에서 엄한 소리들도 참아내야 하고
승진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 임신, 육아, 출산을 모두 거치면서
회사에서 살아남기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덧붙여 여성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들은 왜이리 큰지,
'감정기복이 심한', '회사보다 가정을 중시하는', '믿을 수 없는' 등등의
수식어를 자주 붙이곤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지만,
사실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려면
무엇보다 남성의 인식 전환과 헌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여성의 날에 이리저리 궁시렁 대보고 있습니다만,

오늘 아저씨인 나는..
아내에게 꽃 선물과 함께
아내의 비전과 소명에 대해 들어보고
함께 도울 수 있는 일들로 마음껏 담소도 나누어보고
그러한 일들을 놓고 함께 기도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여러분도 유익한 "여성의 날" 되시길 바라며..


**세계 여성의 날
1910년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제트킨이 제창하여 3월 8일로 정하였다.

세계여성의 날을 이날로 정한 것은, 1857년과 1908년의 3월 8일에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근로여성의 노동조건 개선과 여성의 지위향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1857년 뉴욕시의 섬유·의류 공장 여직공들이
작업조건 개선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가두시위을 벌여,
진압과정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고, 1908년에는 수천 명의 미국 봉제산업 여종업원이
미성년자 노동금지와 여성참정권까지 포함한 요구조건을 내세워 시위를 벌였다.
(네이버 지식검색)

2007/03/08 19:03 2007/03/08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