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펑크락과 단문. 6
'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애정하는 페친 김진형 간사님의 글 덕분에 머뭇거리다가 조금 써본다. 도서정가제에 대해 원론적으로 찬성한다. 단지 알라딘의 입지를 고려해볼 때 한기호님처럼 주범이자 응징의 대상으로 알라딘을 지목한 부분에 대해 좀 과하다고 판단한다.
알라딘을 제외하면 교보나 반디앤루니스는 오프서점을 보유하고 있는 온-오프 2종서점이다. 예스24는 현재 온라인 점유율이 1위이고. 이와 달리, 알라딘은 여러가지 재밌는 시도들을 많이 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대중에게 책읽는 법을 알려주려는' 의도가 있음에 호감을 표하지만) 정작 대중이 알라딘을 선택하는 이유는 여러 조합으로 낮아지는 도서의 가격 때문이다.
이벤트와 구간에 대한 할인, 쿠폰, 증정품, 등등으로 물리적으로 고객이 이익을 얻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알라딘에서 책을 산다. 그러고나서 고객은 마치 가격과 상관없이 '알라딘이 개념있는 온라인 서점'이라서 좋아한다고 종종 말한다.(나도 그중 하나다) 만일 알라딘에서 오프라인 서점과 동일한 가격으로 책을 판다면 당연히 오프매장을 보유한 곳, 물량이 많은 곳, 규모가 큰 곳(혹은 많은 분들이 기대하듯 동네 서점)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도서정가제의 흐름은 사실 출판사-온라인서점 간의 권력의 변화에 기인하기도 한다. 애플은 아이튠즈로 음반사보다 더 큰 힘을 얻게 되었고 아마존은 개별 출판사보다 더 큰 힘을 행사함과 더불어 이제는 직접 전자책을 출판하는 출판-유통업체로 거듭나려하고 있다. 아마존의 방향을 거의 그대로 따라가는 알라딘의 경우도 이런 흐름을 탈 것이고 이는 결국 출판사들의 파이를 가져가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출판사들은 그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할인과 광고를 위한 비용을 부담하며 불편한 상생을 해왔는데 지켜보다 보니까 이제 좀있으면 자신들의 밥그릇까지 가져갈 참이다. 게다가 고도로 단련된 '심미안'들인 우리를 배제한 채 어디서 '장사치' 같은 것들이 책을 시장경제의 상품처럼 취급하고 있냐는 대외적인 명분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출판사들도 10%할인에 맞춰서 가격들을 책정하고 있는 편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허접 쓰레기 같은 책들을 10% 이상의 할인율로 별도 부스를 만들어 팔아왔다. 출판사 이벤트로 반값 할인 부스들이 쏠쏠히 보였다. 알라딘이 악마라서가 아니라 그간 그런 관행들이 있어왔던 셈이다. (하지만 관행을 깨면 가장 불리한 곳은 알라딘이 될 것이다.)
내가 하고픈 말은 알라딘은 자신의 스탠스에서 할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순수하고 알흠다운 도서정가제를 반대하는 악마 수준은 아니라는 거다. 시장에서 위태로워지는 자리에서 경쟁사에 비해 불리한 방향에 대해, 아무 문제제기 없이 순수하고 깨끗하게 주저 앉기를 기대하는건가. 게다가 난 그정도로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업계의 방향이 순수하지만은 않다고 본다.
물론 정말 도서정가제 반대가 고객도 좋고 출판사도 좋다면 모르겠지만 출판사들이 쌍수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는, 그간의 곪아왔던 출판시장의 문제가 터진 것이다. 알라딘 같은 서적 유통업계는 반대를 주장하고 무턱대고 고객 서명을 받기보다 출판사들의 고충과 어려움에 귀기울이는 모습을 먼저 보였어야 옳다.
나야 순수 고객 입장에서는 양질의 책을 보다 저렴하게 공급받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는 뽀대나는 하드커버가 아니더라도 문고판의 저렴한 편집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가격 경쟁으로 인해 허접한 책들이 저렴하게 유통되는 미래를 맞고 싶지도 않다. 도서정가제 논란은 이 두 지점의 양 극단 중 한쪽으로만 가야함을 전제한다.
[알라딘] 도서정가제법 강화에 반대합니다
http://www.aladin.co.kr/campaign.aspx?pn=130116_book
[SisaIN] 절박한 질문 '책은 상품인가?'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953
[한기호] 출판유통질서 파괴의 주범 알라딘을 즉각 응징하자
http://blog.naver.com/khhan21/110157031726
가끔 성하와 놀다보면 "아빠, 그냥 내 마음대로 하게 해줘"라고 말할 때가 있다. 과자를 많이 먹거나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나는 즉시 물러선다. "어.. 그래" 사실 나는 상하의 놀이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몹쓸 모범생 기질 때문에 정해진 룰을 성하에게 강요할 때가 종종 있다.
원치않게 정형적인 방식을 부드럽게 강요하다보면 눈치가 9단인 다섯살의 아이는 그 제약을 감지하고 아빠에게 항의한다. 아빠는 이게 바른 방법이라고, 혹은 더 재밌는 방법이라고, 혹은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아이를 교정하며 그렇게 아이는 위축되고 재량은 줄어든다. 외부세계에 주어진 룰부터 찾으려고 하며 눈치를 보며 불안해한다.
결국 아이는 놀이에 주도권을 잃게 되고 아빠가 노는 걸 지켜보다가 정작 본인은 흥미를 잃고 만다. 아빠주도형 놀이의 탄생이랄까. 이 모든 것을 나는 드러나지 않게 체화시키길 기대하며 은근히 아이에게 강요하는 편이다. 난 그렇게 커왔기 때문에 아들에게도 그렇게 내 DNA를 전수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주장을 분명히 해주는 성하가 신기하고 고맙다. 그는 조용히 마치 혼자말을 하듯 내게 말을 한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게 해줘" 주의깊게 듣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을 정도의 소리로. 오늘도 나는 한걸음 물러서서 대답한다. "아, 미안. 네가 해바바"
어제 아내가 준비한 모임이 잘 끝난 모임이다.
내심 내 일처럼 기쁘기도 했지만... (전환)
어제도 산더미같은 일거리를 초인적인 힘으로
처리하고 성하 픽업해와서 밥 해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나니 아내가 자정이 넘어서 집에 왔다.
모임 참석자들 몇 그룹을 집까지 태워주고 왔단다.
오늘은 어제의 피로와 긴장이 풀린 아내 떡.실.신.
성하는 사슴과 같은 눈망울로 놀이터에서 눈사람
을 만들자고 조르고. 나는 나대로 휘곤휘곤.
하지만 한번 똘마니는 영원한 똘마니가 아니던가.
따라 나가서 열심히 눈사람 만드는 거 방관+도움.
(그래도 오늘은 루돌프 사슴은 안 했다. 날이 풀려서
눈이 많이 녹았더라. 씨바... 날씨 겁나 고마우이.)
아내는 저녁에 잠시 일어나서 간단히 요기하고
다시 떡실신.ㅠㅠㅠㅠ
성하도 장호삼촌네서 너무 열심히 놀았던지 잠시
짜증작렬하다가 어느 순간엔가 코골고 자는 중.
...
아... 이제서야 우리집은 평화가 찾아왔건만.
나도 미친듯이 피곤하고 졸립다... 안돼...ㅠㅠ
일단 일어나서 책상에 앉았는데 거 되게 졸립네. 쩝.
엄마들이 집에서 자기개발 못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
빨래나 마저 널고 자야겠다.
교보문고가 2월부터 10만원대 전자책(e북) 전용 단말기 출시와 함께 회원제 e북 서비스 ‘샘(sam)’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단 칼라 e-ink 단말기 실패 이후 변화를 위한 발빠른 행보가 고무적이다. 특히 이제까지 교보가 내놓은 전자책 시장 상품들 중 단연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전자책 소비자들의 상당수가 소설, 에세이류에 집중되고 있고 그런 책들은 소장용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의 매력이 있는 회원제가 전자책 시장의 파이를 키울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을까. 어느 정도 괜찮은 서비스라고 생각하나, 여기에도 몇가지의 우려감이 있다.
첫째는 10만원대의 단말기가 흑백일 거란 추측. 당연히 태블릿을 쓰는 이들이 칼라 서적을 일단 보고나면 태블릿을 '더' 선호하게 될 것 같다. 결국 '샘'이란 서비스는 태블릿에서 앱으로도 제공되어야만 그 기대대로 시장에 먹힐 것이다.
둘째는 소장 욕구다. 사람들이 도서관만 이용하지 않고 책을 구입하는 이유는 특정한 책은 읽고 나서도 보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은 책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고 논문이나 칼럼을 쓸 때 참조를 위해서 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필요할 때마다 책을 대여해야 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회원제로 운영할 때 한번 구입한 전자책은 종신토록 보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 두가지가 잘 해결된다면 회원제 전자책 서비스는 (아마존 같은 공룡 온라인 업체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전자책 시장의 표준 서비스가 될 수도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예견해본다.
오늘 어떤 분에게 약속 확인 문자 보내는데 말미에 "확인사살...^^"이라고 썼다. 쓰고보니 무시무시한 말. 사실 우리가 쓰는 말 중 군사용어들이 참 많다. 하다못해 평화주의자를 자청하는 기독인들도 성경에 나와있다며 전쟁, 전투, 싸움 등등 쉽게 군사적인 용어들을 남발한다.
그러고 보면 엔터테이닝 같은 축구도 전쟁이고 나가수도 가수왕들의 전쟁이고 수퍼스타K 같은 서바이벌 프로도 전쟁이다. 그것 뿐이랴, 회사 생활도, 자녀교육도 죄다 전쟁이다. 뭐 다 갖다붙이면 일상의 소소한 일들부터 큰 결정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존 자체가 전쟁이고 타자와의 피터지는 싸움이다.
나는 말과 삶의 일치를 꿈꾸는 편이지만 삶의 형편들이 말로 터져나옴과 동시에 말의 오염이 삶을 오염시키기도 한다고 믿는 편이다. 내가 삶 일체를 '전쟁'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내 모든 감정과 감각기관, 세포 하나하나가 긴장하기 마련이다. 약속 확인 하나조차 사살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기능주의적 시각이 갖는 부정의(injsutice), 몰역사성, 탈정치성은 차치하더라도 '성 역할'이라는 말은 있지만 '계급역할', '인종 역할'이라는 말은 없다는 점에서 '역할'이 얼마나 정치적인 담론인지 알 수 있다. 최소한 공식적인 사회 담론에서 "사람은 자신의 계급적, 인종적, 장애, 연령 등의 위치에 따라 평생 그에 맞는 역할(직업)을 해야한다. 흑인은 청소부 역할만을 해야 하고, 시각 장애인은 안마사라는 직업만을 가져야 하며, 가난한 사람은 그 위치에 맞는 심리, 행동,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라는 말은 발화될 수 없다.
이에 비해 성별에 따른 역할론은 자연스럽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사회는 성 역할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에 대해서 심리적, 문화적, 정치경제적 차원에서 혐오와 적의, 처벌을 행사한다. (최소한 공식적으로는) 계급, 장애, 연령, 인종, 종교, 지역, 국적 등으로 인한 분엽(차별)은 부정하며 극복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반면, 젠더는 그렇지 않다. 계급이나 인종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사회적 제도이고 피해지만, 젠더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산, 재생산 노동을 모두 감당하는 여성의 노동력은 한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삶을 가능케 하는 근간을 이룬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향상될수록 이 노동은 남성과 분담되기보다는, 여성들 사이의 계급, 인종, 나이 등의 위계에 따라 여성들 내부에서 '전가'된다.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 여성들 역시 공장 노동과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부터, 음식 서비스 산업, 가사 노동자, 아내, 농업 노동자,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의 해결자, 성 산업에 이르기까지 기존 국내 여성들이 담당해왔던 저임금, 비공식, 비가시화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전통적인 성별 구분보다 자본과 학력, 기술 등 개인이 가진 자원에 따라 젠더 범주가 '유연'해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신자유주의 상황에서 가부장제의 쇠퇴는 여셩의 지위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