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14:27 장발장, 혹은 레미제라블이라고도 하는 서바나 영상을 본 페친들이 무리에게 이르되 너희가 대선 이후에 이것을 보면 다 울리라 이는 기록된 바 너희 마음이 다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라
28 그러나 영상을 다본 후에도 멘붕이 쇠하지는 않으리라
29 제이언니가 대답하되 나는 마음이 돌같은 자라 절대 울지 아니하리이다
30 페친 중 하나가 이르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영화관이 밝아지기 전에 네가 세번 울리라
31 제이언니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성전환 수술을 할지언정 절대 울지 않겠나이다 하고 주위의 몇몇 마초 페친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14:66 주위가 어두워지고 제이언니는 썩소를 날리며 서바나 영상을 주시하는데
67 삼십분이 채 되기 전에 흐느낀지라
68 정신을 가다듬고 혼자말로 이르되 내가 왜 우는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69 말을 마치기도 전에 또 울더라
70 스스로를 질책하며 심히 괴로워하며 다시 이르기를 내가 미쳤구나 이제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하였으되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눈물이 목젖을 타고 내려감을 깨닫더라
71 화면이 어두워져 아무 것도 안보이고 때로 길거리를 보여주는 영상에서조차 울되 이미 정줄을 놓은 후였더라
72 정신을 차리니 주변이 밝아지고 페친들이 자기에게 한 말 곧 네가 세번 울리라 함이 기억나서 그 일을 생각하고 또 울었더라
(레미제라복음 14장)
한국 남자들, 특히 나를 포함한 내 주위 개신교 남성들은 감정표현 없는 글쓰기의 달인들이다.
어찌나 이치에 맞는 말들만 쓰시는지...(나도 스스로는 이치에 맞는 말이라고 쓰는 편이지만.-_-;;;)
솔직히 진리, 교리로 대변되는 몇 개의 키워드들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문장을 생성해서
한편의 단문으로 만들어주는 교계용 어플이 있나 싶을 정도다.
혹은 빅브라더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데 특히 남성은 글로 감정표현을 하는지 여부를
매순간 감시하고 행여 감탄사라도 보이기만 해도 잡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남성의 SNS 글쓰기 스타일도 어떤 면에서는 참. 연구대상이다.^^
꽤 많은 연애드라마를 보고 적지도 많지도 않은 연애를 해보았지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상대가 열심히 말을 하는데
갑자기 슬로우모션처럼 느껴진다거나 뽀샵처리가 된 영상이
소리없이 흘러가는 느낌 같은 걸 경험한 적은 없었다.
오늘. 성하를 재우느라 누워있는데 그가 쉴새없이 내게 이야기를 했다.
찰진 두 볼살과 긴 속눈썹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정겨운 톤으로
쫑알쫑알 조그만 입에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순간 입모양만 보이고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갑자기 천천히 흐르는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라
나는 막 하하하 웃으며 눈물을 훔쳤다.(젠장, 또 우는거냐)
"아빠 내 말 듣고 있어?"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웃었다.
난, 이 아이 참 사랑하는 거 같아.ㅠㅠ
릭 워렌이나 빌 하이벨스를 나는 존경한다. 내가 꿈도 꾸지 못하던 사역을 할 뿐 아니라, 오늘의 문화에 젖어 사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데 획기적인 프론티어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목사가 청바지를 입고 설교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그들의 용기를 높이 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책을 보아 그 배경에 로버트 슐러가 숨어있다고 나는 한번도 느끼지 못했다. 놀라울 정도로 로버트의 좋은 점들을 목회의 밑거름이 되게 만드는 재주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립 얀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부탁하는 것은 함부로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52쪽)
아버지는 가톨릭에 대해 일반적인 개신교 목회자와는 달리 매우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테레사 수녀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큰 교회에 '어느 정도' 화목한 가정까지 남들 보기에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사는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죄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90쪽)
2007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 '평양 부흥 100주년'을 기념하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설교를 맡은 아버지는 그날 수술후 당신의 몸 속에 남아 있는 한 개의 폐마저 터져나갈 듯이 '주여 살려 주시옵소소!'라는 메시지를 간절하게 외쳤습니다. 그 설교는 가장 큰 죄인인 나부터 용서해달라는 외침이었습니다. 교인들을 잘못 가르친 목사, 나부터 살려 달라는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오로지 비주류의 목사만이 할 수 있는 메시지였습니다.
이 옥한흠 목사가 죄를 지었나이다.
주여! 죄를 회개하오니 살려주시옵소서!
한국 교회가 타락한 것이 이 목사에게 있습니다.
아버지시여!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 옥한흠 목사가 죄를 지었나이다.
주여! 죄를 회개하오니 살려 주시옵소서!
한국교회가 타락한 것이 이 목사에게 있습니다.
아버지시여!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
한국교회가 세계 제일의 교회가 되고 새벽예배가 많은 것은
목숨을 아까지 않고 충성하는 목자와 평신도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는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회가 교회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입으로만 가지고 구원을 받았다면서
주여주여 설교하는 목회자들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모두 행함이 없는 거짓 믿음입니다.
거짓 목회자들입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주여 살려주시옵소서!
- 2007년도 한국 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회 설교 중에서
그 날 집회 후 아버지의 설교를 향해 일부 사람들의 노골적인 불평이 이곳 저곳에서 들려왔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죄인인 나를 용서해 달라는 아버지의 메시지는 기독교 주류의 메시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주류의 쓴 소리는 언제 어디서나 주류를 불쾌하게 만드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115쪽)
그로부터 무려 이십 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던 아버지의 그 당혹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라지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의 목회 전반에 대한 깊은 고민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 고민의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바로 아버지가 지향하고 붙잡은 자신의 교회론과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오는 교회의 현실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로서 교회는 커졌고 사람들은 많아졌을지 몰라도 자신이 믿고 붙잡고 가던 ‘교회론’에 걸맞은 결과를 교회 속에서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 말입니다. (137-8쪽)
“은퇴 후 저는 제 목회가 자체적으로 자기모순을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우려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너무 키워버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교회론에 부합한 교회는 너무 비대해져 버리면 그 정신을 살리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제 목회가 교회론과 제자훈련이 엇박자를 이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세우는 것은, 양이 많아져 버리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떨어져 버리게 됩니다. 제가 은퇴할 때 사랑의 교회가 주일 출석 장년 교인수 이만 삼천 명, 전체 등록 교인수 오만 명, 벌써 너무 커져 버렸습니다. 지금 사랑의교회는 어찌보면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제자훈련의 선두주자로서 교회론으로 볼 때, 그 정신을 잃어버릴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또, 교회론의 본질에서도 위선자적인 입장에 빠질 수 있어 고민이 됩니다.” (143쪽)
아버지가 목회를 하시며 내내 교회가 커지는 고민 속에서 하나의 돌파구로 붙잡은 길은 목숨을 건 설교 준비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나날이 늘어나는 성도가 주는 내적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길, 그나마 많은 성도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설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145쪽)
“흔히들 나를 보고 매주마다 수만 명의 성도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느냐고 하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설교가 나에게 보람은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설교의 부담감 때문이었다. 설교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숨은 군중들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강대상에 서고 싶지 않을 때가 없지 않았다." (146쪽)
아버지는 어쩌면 단 한번도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제대로 전달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가 은퇴할 당시 어느 방송에서 고백했듯이 자신의 부족한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의 설교를 통해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데 대하여 성도들에게 미안해하고 하나님 앞에 송구해 했습니다. (148쪽)
아버지는 목사로서도 또 인간으로서도 고독했습니다. 무엇보다 설교자라는 점을 숙명적으로 지고 사는 사람으로서 은혜에 대한 갈급함은 그를 필연적으로 고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고독은 아버지 스스로가 초래한 결과였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알지 못해 그 큰 은혜를 사람에게서 제대로 선포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사람들과 어울려 놀 여유를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무겁고 크며 거룩한 존재일수록 설교는 그에게 엄중하며 생명을 다루는 문제였습니다. 항상 자신은 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말하던 아버지는 하나님과 단 둘이 대면하는 인간적 고독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채찍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기 위해 찾은 답이 어떤 의미로 아버지에게는 ‘고독’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종종 이런 목회자의 고독을 ‘날마다 죽는 목회자’라고 표현하곤 했습니다. (150쪽)
인공호흡기를 낀 아버지는 어제 간신히 손에 들린 펜으로 이렇게 쓰셨습니다. “성도들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아마도 아버지의 진심은 이것이었을 듯 합니다. “성도들에게 미안하다.”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성도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 깊이 더 넓게 보여주지 못하는 설교자로서 미안함 뿐 아니라, 자신의 교회론과는 달리 너무도 커버린 교회 때문에 또한 성도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아버지의 이 미안함은 지금도 여전히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랑의교회 건축 과정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교회론에 걸맞게 좀더 제대로 목회했다면 결코 더 큰 겨교회 건물을 지어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더 큰 교회 건물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된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했습니다. (159쪽)
오늘 사랑의교회 건축 문제로 옥성호 집사님이 쓴 글을 보면서 대선 이후로도 잘 버텨냈던 멘붕이 왔습니다. 한국에서 기독교인이라는 게... 참 부끄러울 때가 많습디다. 매번 나라도 사과하고 교회 일은 내 일처럼 용서를 구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블로그를 하고 SNS를 했습니다.
그런 저이지만, 다른 분들은 어찌 생각하실지 몰라도 저는 고 옥한흠 목사님에 대해서는 한번도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한국땅에서 태어나 기독교인이 된 후로, 이 개신교 바닥 깊숙이 들어와서 실망하게된 분들도 많았지만 (이만열 교수님과 더불어) 옥한흠 목사님은 제가 여전히 존경하는 분입니다. 사실 그분의 지병은 목회를 통해 얻었다고 추정할 만큼 옥 목사님은 사랑의교회 교인들을 생각하며 자신을 괴롭혔고 급기야 암이라는 병을 얻어 돌아가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노무현 대통령보다 옥한흠 목사님이 더 그립습니다.
그 후임으로 오신 목사님이 지금의 사랑의교회를 멋지게 리모델링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 건축을 추진하면서 행했던 일들에 대해 저는 2년전부터 대략 알고 있었습니다. 사적인 자리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분노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헌데 그 분은 워낙 대단하신 분이라 제가 몸담고 있는 복음주의라는 범주의 많은 분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자입니다.
그분이 발행하는 한 기독교 잡지는 정말 탁월합니다. 그 분의 추천사가 들어간 출판사는 제가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참 많은 도움을 받은 곳입니다. 그 분의 이름은 제 종교생활 영역 안에서 무소부재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외면하고 지냈습니다. 워낙 꼭대기에 계신 분이라 실제로 마주칠 일도 없고 이름만 무소부재할 뿐 제가 속한 복음주의 단체나 교회 안에서는 사실 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불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2년을 버티다가 오늘 옥 목사님의 아들인 옥성호 집사님이 쓴 공개글을 읽고 말았습니다. 2년전에 들은 내용과 일치하였지요. 처음 그 얘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 뒤척이다가 끝내 밤새도록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났습니다. 지금은 눈물은 안 나지만 손가락은 심하게 떨리는군요. 참, 사람으로 태어나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데... 그런 생각만 계속 드네요.
어쩌면 제가 그 일을 잊은 건, 혹은 없던 일처럼 보내려고 했던 건 그 분의 이름이 들어간 매체, 기독교 단체들이 많고 그 안에 있는 분들과의 친분을 유지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간간이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농담처럼 던지곤 했지요. 그래야 했고, 그러고 싶었습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옥성호 집사님이 아버지에 대한 책을 냈을 때, 저도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고 그 책의 상당 부분을 타이핑해두었습니다. 그걸 다듬어서 글을 쓸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사랑의교회 건축 문제가 불거지면서 글 쓰려던 마음을 접었습니다. 앞서 설명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제가 타이핑한 옥한흠 목사님의 행적들을 읽으며 저는 또한번 마음이 괴롭습니다.
글을 쓰는 와중에 페친분과 댓글을 주고 받다가 "오정현 목사 같은 이가 지도자되는 복음주의가 기독교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에게 던진 말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로. 오늘부로 저는 오정현 목사의 영향력 아래있는 어떤 기독교 집단과도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그것이 한국 복음주의를 아우른다면 저는 한국 복음주의를 버릴 것입니다.
한국 복음주의권은 저같은 사람이 버린다고 사라질 교파가 아닙니다. 게다가 훌륭한 신앙인들이 참 많이 속해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당연하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지도자를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저는 더는 못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