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년 전까지 나는 절대적으로 독서량이 나보다 많은 사람들에 대한 자격지심 내지는 열등감 같은 게 있었다. 게다가 교수나 신학자 등등 좀더 학구적인 어떤 직함을 달고 있으면 더더욱 그런 열등감이 가중되곤 했다. 내 기억으로 2008년 정도까지 나는 내 열등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른바 '비전문가'의 설움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은 마치 검의 양날 같아서 내 지식이 비교우위에 속하면 뭔가 상대를 대할 때 여유(이를테면 하수를 대할 때의 어떤 느슨함 같은)가 생기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대체로 내가 부러움을 느꼈던 사람들은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학파의 사람들이었다. 어찌나 독서량이 넓고 깊은지 그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귀를 쫑끗 세우고 그들의 독서편력을, 그 저자와 그 유명한 책 리스트를 어서 섭렵해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던 시절도 있었다. 허나 2004년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런 욕망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도저히 회사생활을 하면서 공부가 업인 사람들을 쫓아갈 수 없었고 나는 어느 순간 그들과 보조를 맞추려던 노력을 접고 먼발치에서 그들의 지식 달음질을 쳐다봐야만 했다.
7-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 돌아보면 나는 가끔 내가 왜 그렇게 지식 습득에 연연했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쩌면 그것은 방대한 독서가 세상을 바꾸기는 커녕 한사람 조차 바꾸지 못하더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례로 10년 전에도 특정 저자와 책들을 신봉하던 부류의 사람들은 지금도 비슷한 이야기를 인용하곤 한다. 더 나은 번역과 더 명확한 저자의 이해, 더 넓고 깊어진 지식으로 무장했지만 그 페이스를 벗어난 내 입장에서 그들의 진보는 때론 '고상한 기호', 좀더 나쁘게 말해서 '머리쓰는 취미생활'같아 보이기도 한다.
여전히 나는 일정 수준의 독서를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사실상 책을 통해 얻는 것들이 많다. 책을 대하는 내 태도는 그간 자주 양가감정을 수반하곤 했다. 최근에야 책을 대하는 내 태도가 조금은 편안하고도 확고해졌다. 독서는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삶의 가치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독서에 바친다. 자신의 입이 특정 저자의 입이 되고 그 저자의 논리를 십분 이해하는 것에 전율한다. 아쉽게도 나는 그것이 아무리 대단한 이해라 해도 일종의 삶의 낭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로고스의 육화가 아니라 육체의 로고스화. 의외로 육체의 로고스화를 실천하는 이들이 많다.
20대에 나는 스폰지가 잉크를 빨아들이듯 (파형으로서의 교육에 앞서) 주형, 주입 그 자체도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비평에 앞서 그 담론 자체에 깊이 침잠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 말이다. 섣부른 반항심으로 정작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하고 헛발질을 하는 것을 경계하고 싶었다. 허나 30대를 지나 40대를 향해 달려가는 시기에도 10, 20대의 뇌처럼 저자의 로고스화를 꿈꾼다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로고스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할 거라 생각했던 게 아니던가. 삶에서 더 진일보한 걸음을 걷기 위해 잠시 머뭇거리며 정리된 생각을 얻고 싶었던 게 아니던가. 시간이 흘러도 변하는 게 없어서일까... 그 진정성이 훼손되고 있다.
결국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이 그 사람의 어떤 진정성을 대변한다고 볼 때 '독서'라는 행위로 대변되는 지식의 분량은 이제 내겐 그다지 '이슈'가 되지 못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저명한 저자의 컬렉션을 모으고 그것을 독해하는 기호와 애로영화들을 수집하고 여배우들의 특징을 기똥차게 표현하는 두 부류 사람들의 차이를 나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텍스트 안에서만 놀 거라면 둘 다 내가 보기엔 '덕후'일 뿐이다.
2012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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