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2)
- 겸손과 관대함 사이에서
신입사원 시절, 나에게는 '작업복'에 관한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현장 실습을 할 때마다 우리는 작업복을 지급 받았는데, 사내에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출근 후에는 그 작업복을 입어야 했다.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침에 따라 간부부터 사원까지 동일한 작업복 차림을 한 모습들이 나는 참 좋아 보였다. 물론 작업복 차림이라고 해서 노사간의 위화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게다. 오히려 작업복이 그런 것을 덮기 위한 얄팍한 미봉책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당시에는 ‘현장경영’이라는 모토 아래 직원 모두가 같은 작업복을 입는다는 상징적 의미에 크게 매료되었던 것 같다.
실습 교육이 끝나고 드디어 나는 연구소로 '입성'했다. 팀 배치를 받자 서무 직원이 신입사원들의 상의 사이즈를 다시 쟀고, 당일 저녁 새 작업복이 지급되었다. 거기에는 '기술 연구소'라고 쓰여 있었다. 이는 그 작업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연구소 직원임을 의미했다. 그 날 공교롭게도 내 차례에서 작업복이 바닥났고, 새 작업복을 지급받으려면 최소 1주일은 걸린다는 서무 직원의 설명에 나도 모르게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인식하지 못한 순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다른 신입사원들은 모두 연구소용 작업복을 입고 돌아가는데 나만 구별된 작업복을 못 입는다는 사실에 순간 속이 뒤틀렸던 것 같다.
머리 속으로는 '현장경영'이란 모토와 작업복 차림에 큰 의미를 부여했지만, 공장 라인을 탈 때도 영등포시장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판촉 활동을 할 때도 서비스 센터에서 오일을 갈며 기름 때를 묻히고 있을 때에도, 나는 이 일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짧은 기간 동안 단순 반복적인 바닥 일의 맛만 보고 나면 종국에는 보다 중요하고 고차원적인 일을 하는 연구소로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말하기 부끄럽게도 나는 혹여 연구소를 돌아다닐 때 석, 박사 출신의 연구원들이 나를 현장직이나 영업직, 혹은 정비직 사원으로 볼까봐, 그게 그렇게 싫었던 것이다. 대학에 대학원 공부에, 그런 것들이 뭐 대수냐고 말하면서도 내 혈관 깊숙한 곳에서부터 이미 대접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 사탕 발림 같은 겸손, '낮아짐'과 같은 단어의 형이상학적 지향성이 실제 삶 속에서는 내 신앙을, 내가 믿는 예수의 도를 무색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날 오후, 붉어진 얼굴을 가라앉히고 내 속의 이런 저런 나쁜 생각을 곰곰이 들여다보니 참으로 부끄러웠다.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싶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세상에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 중엔 내가 최고지/
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 겸손은 힘들어/겸손, 겸손은 힘들어/ 겸손은 힘들어”
조 영남 노래 중에 ‘겸손은 힘들어’라는 노랫말이다. 맞는 말이다. 유독 배운 게 많은 사람일수록, 아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겸손과는 거리가 먼 이들이 많다. 특히, 요즘과 같이 자기를 숨기고 자기를 낮추면 더욱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는, 과장하거나 속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가진 것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도록 요구 받는다. 어느 날 팀장님이 지나가다가 갑자기 “XX씨, 영어 좀 하나?”라는 질문에, 과장해서 잘난 티를 내야만 외국 업체와 회의 때 주도적인 역할이 주어지는 직장인들에게는, 매사에 겸손하라는 목사님의 설교와 실재 일상의 처세술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타협점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조금만 만만하게 보이면 자기 업무조차 마구 떠넘기는 회사의 고참 동료들 사이에서, 자동차 접촉 사고에서 먼저 미안하단 말을 꺼내면 이를 악용하는 상대 운전자들 사이에서, 인터넷을 설치하거나 물건을 환불 받는 등의 서비스 업무를 볼 때 내가 먼저 웃으며 친절하게 대하면 혜택들을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 직원들 사이에서 과연 눈물을 머금고 ‘겸손’해야 하는지 슬슬 갈등이 된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일상에서도 ‘내가 좀 어리버리해’, ‘내가 많이 부족하지’하며 자신의 단점들을 내세워 몸을 낮추면 가까운 사람들조차 말을 쉽게 옮기고 비웃기 일쑤다. 이런 일들을 계속 겪으며 맘 고생을 하는 이들이 결국 못 참고 불쾌해하면 농담이었다고 애써 무마하려 하거나 ‘쿨’하지 못하다고 도리어 비난 하기 일쑤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은 그의 책 <마음 미술관>에서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 관대한 사람을 꿈꾸고 있’다고 말한다.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자기를 낮추는 마음을 갖는 ‘겸손함’보다는, 나를 긍정하고 나를 높이면서 타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심정으로 ‘관대함’을 갖는 것이 오히려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의미일 게다. 내가 남보다 못났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우리에게, 조금만 억울한 일이 생기거나 무시를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그대로 내면에 축적되어 속병을 앓거나 반대로 어떤 식으로든 타인에게 갚아주게 되는 우리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의사의 처방인 셈이다. 그녀의 글에 동의가 된다. 잘 되지도 않는 겸손을 체화하려고 속을 썩느니 관대하게 타인을 용서하는 ‘가진 자’의 마음을 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타인에게는 동일한 행동처럼 보일 것이고 내적으로는 죄책감에서도 해방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편하다. 마음 한 켠이 껄끄럽다. 그건 지금도 여전히 겸손의 미덕을 발휘하는 이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앙을 떠나서조차 겸손히 행하는 이들에게 결국 감동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총각네 야채가게'로 유명한 이영석씨가 매사에 겸손과 성실로 하루하루 일하는 모습에 많은 CEO들조차 감동받으며, 가수 김장훈의 자랑하지 않는 묵묵한 선행에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또한 나의 불편함은 여전히 예수의 도를 좇아 사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무엇보다 성경은 겸손을 ‘마음의 변화’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인도의 성자’라 칭송 받는 선다싱이나 ‘하나님 손에 있는 연필’이라 자신을 소개했던 테레사 수녀, ‘작은 예수’라 불린 장기려 선생 같은 신앙의 선배들의 발자취 속에는 타인에 대한 ‘가진 자’의 관대함과 같은 내면의 타협점이나 처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내 기대와는 달리 매 순간 겸손과 관대함 사이에서 줄타는 듯한 나의 일상들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들에 비하면 여전히 작은 일에서조차 대접받고자 얼굴을 붉히는 내 속 사람이 부끄럽다. 서른의 중반으로 치닫고 있는 나에게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음이, 그리고 신앙의 연륜이 쌓일수록 말만 늘고 미래에 대한 약속과 비전만을 궁색하게 둘러대는 내 모습이 부끄럽다. 이런 연유로 나는 내 삶과 글 사이에 있는 거품들을 줄여가야 함을 절감한다. 그리고, 마치 신용카드를 사용하듯 말부터 뱉어내고 나중에 행하면 된다는 식으로 신앙에 있어서도 더 이상 채무자의 자세로 살지 않고, 더 늦기 전에 현금 내지는 직불카드를 사용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교정해가야 할 성 싶다. 천국의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끝)
*본 글은 <복음과상황> '08년 5월호 기고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