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Posted
Filed under 컨텐츠/영화평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가십을 싫어한다. 가십보다는 냉소적이고 비꼬는 식의 말들을 더 싫어하며,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화를 내고 쌍욕을 하는 적극적인 태도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글의 시작부터가 좀 추상적이었다. 영화 <비스티 보이즈>는 보고난 후 내도록 기분이 안 좋았다. 승우가 끝내 지원을 칼로 찌르고 재현이 일본으로 떴기 때문이었을까. 이미 좋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기대'는 있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회식을 잘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빨 사이에 낀 음식 때문에 계속 혀를 감아가며 신경쓰는 것처럼 이 영화가 내겐 좀 불편했다. 왜였을까, 왜였을까..

난 영화평을 전문적으로 하진 않지만,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 중 하나로서 영화관이 하나 있다. 그것은 감독이 배역들을 향한 시선이다. 그 배역 하나하나를 깊이 이해하고 파고들어서 그 배역의 내면, 심리, 그리고 행동의 이유들을 파헤쳐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탈 사이트에 아버지를 죽인 아들 기사가 뜨면 한 줄만 읽고도 세상 말세라고 혀를 차는 대부분의 사람들 속에서 그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고 그 아들은 왜 자신의 아버지의 숨통을 끊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주의깊게 살펴보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대가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비스티 보이즈>는 호스트들의 이야기다. 문제는 감독이 호스트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고 싶었다면, '호스트의 생활은 이렇더라'는 호기심 이상의 '개입'이 전제되어야 한다. 영화에서 승우는 집안이 망해서 호스트를 시작한 것으로 설정되었고 재현은 자신과 동거하는 승우의 누나 한별을 떠나려는 야비한 남자로 비춰진다. 그가 진 5000만원의 빚은 노름으로 날린 듯이 보인다. 지원은 폭력을 쓰는 남자를 싫어하며 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미워하는 이유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연유로 자신에게 폭력을 쓴 재현을 떠난다. 재현은 지원이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의심하다가 지원에게 집착하게되고 결국 그녀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영화에서 간혹 등장하는 호스티스는 호스트바에서 스트레스를 풀며 호스트들은 자기가 만나는 여자들의 등처먹을 생각만 하는 듯이 보인다.

이런 파편적인 장면들이 툭툭 던져지는 <비스티 보이즈>는 결국 내게 일종의 불쾌한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이 영화는 마치 내게 회식 자리에서 "호스트바에 일하는 애들이 이렇게 산대. 골 때리지 않냐?'라고 가십을 한껏 쏟아내는 친하지 않은 회사 동료를 보는 느낌이었다. 영화는 그 어느 배역도 그 어느 상황도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끊임없이 거짓말을 둘러대는 재현에게 혀를 끌끌 차게 되며, 승우와 지원의 다툼은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싸우는 커플을 팔짱끼고 구경하는 행인들처럼 관객들 눈쌀을 지푸리게 만든다. 지원은 거짓말을 했다는 듯이 2차를 나가는 업소에서 일하면서도 별 감정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난 영화가 끝난 지금도 한 없이 궁금하다. 왜 재현은 자신의 빚을 갚아주려는 한별을 결국 떠나 일본으로 갔을까. 승우는 왜 결국에는 지원을 칼로 찌르게 되었을까.
지원은 승우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한별은 왜 재현에게 집착했을까. 호스트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여운을 두기 위해 감독은 CF나 뮤직비디오의 영상들처럼 그냥 한 장면 한 장면씩을 보여준 걸까.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전작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보여준 감독의 날카로움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는 <비스티 보이즈>의 하정우보다는 10년전 <태양은 없다>의 이정재가 더 그립다.(끝)

2008/05/08 19:04 2008/05/08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