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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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더 말이 필요없는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으로 <빌리 엘리어트>와 <디 아워스>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스티븐 달드리의 세 번째 작품이다. 성장기 소년이 연상인 여인과 사랑을 나눈다는 점에서 <아름다운 청춘>과 비교되곤 하는데 사실 이 작품은 그 영화가 지향하는 바와는 다르며 플롯은 두 사람을 둘러싼 시대적 상황 속으로 확장된다. 이 영화가 비교적 많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남녀 사이의 사랑이 이루이지지 못한 채 여자 주인공이 자살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기 때문이 아니라, 철저하게 남자 주인공의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전개해 가기 때문에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두 사람의 심리, 특히 여자 주인공의 심리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마이클은 자신에게 도움을 준 한나에게 성적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글을 읽지 못하는데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아왔으며 마이클을 만나고 나서는 그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요청한다. 이 두 사람은 육체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과 더불어 함께 책을 읽으면서 둘 사이의 연인관계를 형성해간다. 그녀의 성실한 성품으로 인해 사무직으로 진급을 하게 된 한나는 자신이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사실이 알려질까봐 조용히 직장을 그만두고 그 지방을 떠나려 하고 마이클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마지막으로 마이클의 몸을 씻겨주고 사랑을 나눈 후 사라진다. 마이클은 그녀의 집을 다시 찾아가지만 그 곳엔 아무도 없다.

 

시간이 흘러 마이클은 법대생이 되었고, 우연히 참관인으로 참석했던  재판에서 홀로코스트의 전범으로 서게된 한나를 지켜보게 된다.- 여기에서부터 이 영화(소설)은 빛을 발하게 되는데 - 마이클의 심리 갈등은 8년만에 만난 한 여인으로 인해 극대화된다. 시대적 정황으로 볼 때 그 당시의 독일 학생들은 홀로 코스트, 즉 유대인 학살에 크게 분노했고 자신의 부모들과 자신이 독일인이라는 사실을 크게 반성했다. 전범들은 가차없이 처형되었으며, 그것은 정의를 실현하는 진보적인 젊은이들에게는 마치 맹목적인 신앙과도 같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8년 전에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졌다가 나타난 한나에 대한 그의 이중적 감정은 법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점점 커져만 간다.

'왜 아무 말도 없이 떠난 걸까', '왜 유대인을 학살하는 감옥 관리자로 자원한거지?', '다 지난 일이야,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며칠 밤동안 그를 괴롭혔을 것이다. 매일 지속되는 학교 내의 법정 토론에서 한나는 용서받지 못할 죄인으로 치부되었다. 마이클은 아직 그의 몸 속에 각인된 한나의 체취에 대한 애정과 증오의 감정들로 괴로워하다가 지도 교수에게 가서 우회적으로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게 되고, 결국 그는 한나를 설득하러 가기로 결심한다. 그녀를 만나러 가기 전 그가 찾은 포로 수용소. 그 곳에서 셀 수조차 없는 죽은 유대인들의 신발들을 발견한 마이클은 그 신발 주인들의 목숨을 해치는 일에 가담한 한나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결론짓고 그녀를 설득하기를 포기한다. 그가 돌아와서 같은 과 여학생과 사랑을 나누는 것은 한나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정죄이자 깊은 한 구석에 담아둔 그녀를 떠나보내겠다는 다짐인 듯 하다.

 

마이클은 그 여학생과 결혼하지만 금방 이혼하게 된다. (한나에게 지속적으로 책을 읽어준 테입을 교도소로 보내는 장면에서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이클은 한나에 대한 이중적 원망-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신을 떠나버렸던 사랑에 대한 원망, 그리고 나치의 전범으로 자신조차 용서할수 없는 유대인 학살의 중심에서 아무런 도덕적인 행동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기에 겪은 사랑의 열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상처받기 쉽고 꼬여있는 한 소년으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풀려나기 직전 교도소에서는, 그녀와 연락이 되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마이클에게  퇴소 후 그녀를 맡아줄 것을 요청한다. 몇 십년 만에 그녀와 만난 마이클. 연인으로 자신의 앞에 선 줄 알았던 마이클은 그녀로 하여금 주변 사람들과 똑같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도덕적 반성과 참회를 요구한다. (영화에서는 과거 생각을 많이 하냐는 마이클의 질문에 대한 한나의 반응으로 표출된다.)

 

마이클에게 한나는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무심하게 떠나버린 연인이었다. 그가 비난하고 싶은 것은 아마 이 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타인들처럼 그녀의 죄명으로 그녀를 비난하려 했고 그것에 대한 사죄를 들으려 했다. 한나는 자신의 연인으로, 세상 가운데 버려지고 세상 그 누구와도 소통이 어려운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주변을 맴돌았던 그에 대한 마지막 믿음이 상실되는 순간, 그녀의 삶의 의미를 잃었다. 갑자기 자살이라는 결론을 맺은 한나의 돌발행동은 전혀 돌발적이지 않다. 그녀의 일상은 책읽어주는 그에 대한 기대감이 버팀목이 되어왔고 세상 속에 혼자 남겨진 듯한 느낌 속에서도 심리적으로 그에게 의지해왔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정죄했던 세상과 동일시될 때, 그리고 그에게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셈이다.

 

영화 속에서 데이빗 크로스, 혹은 랄프 파인즈(마이클 역)은 비교적 플롯의 진행방향대로, 즉 서사적인 방식으로 캐릭터를 드러내 주기 때문에 비교적 많은 정보와 단서를 주지만 케이트 윈슬렛(한나 슈미츠 역)은 관찰자의 대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심리를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연기력을 보여준다. 영화는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나서도 계속 한나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어찌보면 한나는 많은 남성들의 고통스런 첫사랑의 환타지와 같다. 아무런 설명 없이 떠나버린 첫 사랑이 언젠가 자신에 대한 변치 않는 마음으로 세상에 존재하리라는. 그 첫 사랑에 대한 증오와 사랑의 이중적 감정을 가진 남성들의 끝나지 않는 질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더 리더>는 그런 영화다. (끝)

2009/07/26 20:49 2009/07/2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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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찬이 책을 냈다.
난 항상 그의 가사들을 보면서 그의 글재주를 부러워하곤 했다.

그는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에서 짧은 글을 써서 낭독하곤 했는데 어느날 그 글들을 그냥 잊어버리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담당 PD에게 부탁하여 받은 원고를 다듬어서 출판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의 지난번 소극장 공연 때 들은 얘기다. 책을 낸다는 말도 그때 들었다.)

그림도 함께 그렸고 나레이션 음반도 덧붙였다. 그의 감성적이면서도 때론 날카로운.. 그리고 대부분이 몽환적이기도한 글들을 책으로 접할 수 있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다. 책과 함께 소극장 공연도 다시 한다고 하니 언제 한 번 가볼까 싶다.

아래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10문 10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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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서 온 편지』에 대한 조규찬의 10문 10답

1. 음악만 하다가 갑자기 덜컥 책을 냈다. 생뚱맞고 낯설다. 무슨 일인가?
책을 받아보는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짧은 글을 써서 낭독하는 <달에서 온 편지> 라는 코너가 있었다. 한 주에 한 편을 썼고, 그러다 보니 적지 않은 글이 모였다. 노래, 그림, 글은 모두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단지 모양만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음악을 통해 그런 일을 해온 나에게는 전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급조된 기획은 이 책 어디에도 없다.

2. 책을 보면 가족애 같은 느낌과 낯선 풍경 같은 것이 느껴진다.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랄까, 의도가 있다면?
그리움이다. 사라져버린,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사랑이다.

3. 음악과 책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
레드 제플린의 <노 쿼터>를 들으면 『해변의 카프카』의 스산한 바람과 낮게 드리워진 짙푸른 구름이 느껴진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면 레드 제플린의 <노 쿼터>가 흐른다.

4. 당신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음악 외적인 일들을 부단히 요구하는, 하고 싶어 해온 일.

5. 당신에게 글을 쓴다는 행위란?
나 자신도 잊게 될 나를 기록하는 일.

6. ‘조규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감미롭고 때로는 완벽한···, 하지만 좀 가깝게 다가갈 수는 없는 사람 같다. 실제로 그런가?
세상을 사랑하고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음이 사람들에게는 거리감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7. 미술을 하다 음악으로 전향했다. 책에도 그림을 그렸다. 그림이란 당신에게 무엇인가?
나는 못생겼다. 그리고 음악을 처음 시작할 무렵까지 나는 가난했다. 가난하고 못생긴 나에게 미술과 음악은 그 현실의 칼날을 막아주고 잊게 해줬다. 적어도 붓을 놀리고 기타를 퉁기는 동안만큼은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8. ‘나, 조규찬’이라는 챕터가 있다. 한 마디로 조규찬을 스스로 요약한다면?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9. 전체적으로 음악만 빼고 당신의 전부를 압축한 것 같다.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나의 아들이 나를 이해하고 기억하게 하는 ‘아빠 설명서’ 가 되어 줄 거라는 희망.

10. 앞으로의 계획과 하고 싶은 음악은? 또 쓰고 싶은 글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다. 이 단순해 보이는 일이 현실에서는 결코 쉽지 않다. 그리운 것들, 그리워하게 될 것들을 기록하고 싶다.
2009/07/18 20:48 2009/07/1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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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사를 이끌었던 빌 게이츠에 대해서는 굳이 많은 설명이 필요가 없다. 다만, 몇몇 파편적인 기사들로만 접했던 빌 게이츠에 대한 생각들을 이 책을 통해 좀더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그간 나는 오픈 소스(open source) 운동을 비롯한 카피레프트 운동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운영 체제 및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온 빌 게이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판적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빌 게이츠가 소프트웨어 시장에 처음 진입하면서 하드웨어와는 달리 소프트웨어는 개발자의 엄청난 노력과 수고가 들어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드웨어에 끼워 파는 공짜(free)라는 인식을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카피레프트 운동의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것도 이 개발자에 대한 합당한 보수 및 권리의 인정 부분임을 감안하면 빌 게이츠의 이러한 노력들은 소프트웨어 시장이 하나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두 번째로 본서에서도 비교적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넷스케이프와의 독점 소송 문제를 통해 빌 게이츠는 결국 일선에서 물러나서 제2의 인생을 재단을 통한 자선사업가로 시작하고 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빌 게이츠에게 좋은 평가를 해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자선 사업이 아내 멜린다 게이츠의 노력에 의해서였음을 밝히고 있지만 결국 빌 게이츠는 자신의 재산 중 상당 부분을 이 재단에 쏟아내고 있으며(2005년 135억 6천만달러, 2006년 156억 250만달러), 이 재단을 통해 전 세계에서 목숨을 구한 사람만 70만명에 이른다.

한 때 공격적인 회사 운영으로 독점 기업의 중심에 떠올랐던 마이크로소프트와 빌 게이츠. 그의 인생 후반에서 변화가 느껴지는 것은 확실하다. 이제 시작하는 그의 이른바 '창조적 자본주의'가 그저 자본주의적 입장에서의 하나의 후원 체제를 넘어 보다 창의적인 방향으로 더 진일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편으로 한국의 기업들도 빌 게이츠와 같은 리더들이 많이 생겨나길 기대해본다.
2009/05/17 20:44 2009/05/17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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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살림지식총서에서 스티브 잡스와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 인물 시리즈를 출간하였다. 그 중 가장 먼저 읽은 <스티브 잡스>는 그의 삶의 여정이 그러하듯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하다.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는 애플의 CEO라는 사실만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가 2년 전 즈음에 아이팟 나노 출시 동영상을 보면서, CEO가 직접 자사의 신제품 발표를 한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느껴졌다.(물론 빌 게이츠도 자신이 발표를 하지만 느낌이 너무 달랐다) 사실 흥미 정도가 아니라 흠뻑 빠졌다고 볼 수 있다. 주어진 시간 내에 적절한 언어와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활용하는 모습은, 프리젠테이션의 교과서라고 볼 수 있을 만큼 탁월했다. 이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저 유명한 스탠포드 졸업식 축사 또한 단 7분 동안이었지만 최고의 연설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압축적이면서도 메시지가 강렬했다.

본서는 나 기타 잡스에 대한 다소 두꺼운 책들을 보지 않더라도 그의 인생 여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쓴 최고의 평전(?)이라 불릴만 하다. 특히 2009년 건강 악화 문제나 작년에 개봉한 픽사의 <월-E>의 성공까지도 다루고 있으니 스티브 잡스에 대한 가장 업데이트된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에서처럼 스티브 잡스의 영웅적 면모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갈등이 있었던 동료들에게 행한 권모술수와 냉혹한 비난들도 가감없이 서술하고 있어서 비교적 스티브 잡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 듯 하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로부터 시작해서 메킨토시와 픽사 애니메이션, 그리고 아이팟과 아이튠으로 대변되는 MP3 음반 시장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기술과 대중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그의 흥미진진한 삶의 여정으로 인해 이 책은 잡자마자 단 숨에 읽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09/05/15 20:43 2009/05/15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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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복음주의가 변질된 결정적 계기 - 이안 머레이 (이주일)

아직 책을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인데, 이안 머레이가 추적해 낸 복음주의 변질의 역사적 계기는 1967년 키엘 대회 -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가 변질되는 원인을 제공한 시기
: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의 오판 - "복음주의가 포용주의적 태도를 취하더라도 신학적 중심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제임스 패커는 이에 대해 뒤늦게 오판을 인정한 것으로 이안 머레이는 밝히고 있다.
- 머레이에 따르면,
   패커는 자신의 오판을 인정하면서도 키엘 대회가 아닌 그 이후 2차, 3차 성공회 복음주의 대회에서
  젊은 복음주의자들이 지나친 포용적 태도로 복음주의 신학을 타협한 것이 문제였다고 말한다.

키엘 대회에서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가 유지하고 싶었던, 또 그렇게 될 줄 알았던 복음주의 신학의 중심성,
"스토트-패커 노선"이라고 불리는, 이런 노선이 이후에도 유지될 것이라고 (스토트와 패커는) 믿었으나,
실제로 신학적 포용성을 기본 입장으로 내세우자 후세대들은 엄격한 복음주의적 교리를 답답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결국 신학적 중심을 주장했던 제임스 패커를 늙은 원로로 무시하기 시작했다.

제임스 패커는 1970년대 이후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 그룹에서 소외되었고, 캐나다로 (쫓겨나듯) 옮겨가게 되었다.

:: 존 스토트는 이 과정에서 어떤 태도와 입장을 취했는지, 상술되어 있지 않아 아쉽다.
아마도 키엘 대회와 복음주의 그룹의 포용주의적 태도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사람이 제임스 패커기 때문에
스토트는 이와 같은 설명에서 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키엘 대회 이전에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가 포용주의적 태도를 갖게 된 원인들을 추적해 보자면,
영국 성공회에 미친 "빌리 그래함"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머레이는 지적하고 있다.
철저히 "실용주의적 복음전도"를 추구했던 빌리 그래함의 태도 때문에
영국 성공회 및 복음주의자 또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외로운 광야의 목소리"의 입장을 취했다.
빌리 그래함식의 복음 전도를 거의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반대했고(지도급 인사 중에서),
이후 키엘 대회의 포용정책 노선을 처음부터 일관되게 반대했던 사람이었다.

1966년의 존 스토트와 로이드 존스의 분열은
분리주의자였던 로이드 존스의 '극단적인 순결주의적' 태도에 대해
존 스토트의 '균형있는 대응'이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이안 머레이는 철저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스토트와 패커가 오판을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1966년의 결별 사건과 관련해서 로이드 존스를 새롭게 평가하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안 머리. <분열된 복음주의>(부흥과개혁사) 를 읽는 중에...
2009. 3. 6. 새벽 2시




이주일:
이안 머레이의 책에서 프란시스 쉐퍼와 로이드 존스는 이와 같은 복음주의의 변질에 대해 처음부터 강력히 경고하고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기독교는 진리에 있어서 타협하면 무너진다는 것이다. 쉐퍼의 <위기에 처한 복음주의> 등의 저작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다. (09.03.06 02:14)
    
제임스 패커는 우회적으로라도 자신의 오판을 인정한 것 같은데, 존 스토트는 이런 해석과 평가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까? 존 스토트는 로이드 존스와의 사건을 언급할 때마다, 로이드 존스를 상당히 존경하고 존중하면서도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다시금 그런 선택을 했을 거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안 머레이의 해석에 여전히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 (09.03.06 02:16)
    
결국 미국 복음주의의 변질의 핵심은 '빌리 그래함'에게, 미국보단 덜했을지 모르지만 영국 복음주의 변질의 핵심은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에게 있다는 것이 이안 머레이의 해석인 것 같다. 스토트와 패커가 이안 머레이의 말을 들으면 꽤 아파할 지도... 물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는 빌리 그래함 만큼 신학적으로 어리숙하게 타협하진 않았다. 빌리 그래함에게 문제가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09.03.06 02:19)



김용주:
개인적으로 이안 머레이의 입장에 다소 비판적임. 존 스토트의 입장은 그의 말년 자서전 격인 <복음주의의 기본진리>를 참조하는 것이 좋을 듯. 개인적으로 신앙의 입장이 존스토트, 알리스터 맥그래스, F.F 브루스, 마크 놀 등등의 입장에
서있는 나로서는 이안 머레이의 입장이 근본주의처럼 느껴짐.결국 오래된 복음주의라는 입장은 유신론적 진화론에 대한 비판,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반대, 성경 비평을 자유주의 진영의 고등 비평과 동일하게 비판하며 신복음주의자들이 성경의 무오성을 훼손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복음주의와 기독교의 미래>에서 제시한 복음주의자의 범주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이안 머레이의 입장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근본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듯. (09.03.10 01:55)



이주일:
네. 용주형. 안 그래도 형 팀블로그였던 것 같은데, 형의 글을 읽고서 이안 머레이의 입장에 비판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현재까지는 머레이에 동의하는 입장인데, "근본주의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었어요.

1. 유신론적 진화론 : 아시겠지만, 쉐퍼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유신론적 진화론에 대해 복음주의 내에 포괄될 수 있는 창세기 해석 방법임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 저도 쉐퍼와 비슷한 입장에 서 있구요. 머레이의 입장은 잘 몰랐는데, 형을 통해 듣게 됐군요.

2. 에큐메니컬 운동 : 이안 머레이의 역사적 분석이 옳다면, 저는 머레이의 입장에 동의가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로이드 존스를 새롭게 보게 되었는데, 로이드 존스를 과연 "근본주의"라는 말로 낙인찍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3. 성경의 무오성 : 예수대학 강사모임 때도 이 이야기를 백목사님과 나눴는데, (저는 맥그래스에 대해 비판적 입장에서 질문했고, 백목사님은 오히려 맥그래스를 방어해 주시긴 했지만) 성경의 전적무오성에 대해 맥그래스가 부정하고 있는 것 만은 사실이지 않나 싶습니다. 존 스토트, 알리스터 캑그래스, F.F. 브루스, 마크 놀은 저도 매우 좋아하는 저자이고 지금도 그들에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무오성 만큼은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지점들만으로 과거에 낙인된 "근본주의"와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인가. (특히 복음주의 진영에 의해)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과연 그렇게 "보는 것"이 정당한가? 에 대해 의문이 많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어서, 용주형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 시간이 되시면 이야기해 주세요. <복음주의의 기본진리>는 ivf 시절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형 이야기를 듣고 지금의 시각으로 다시 펼쳐봐야 겠네요. (09.03.10 15:32)



김용주:
유신론적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 연구에 대한 방어적인 태도와 성경 비평을 고등비평과 동일하게 보는 입장, 그리고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한 비판이 근본주의적인 입장으로 알고 있음.
결국 이안 머레이의 오래된 복음주의적 입장이 그러하다는 의미임.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파고들 필요가 있을 듯.
무오성 관련해서 나는 버나드램의 <성경해석학>에서 제시된 입장을 따르는 편이나 항상 열려 있음.^^
에큐메니컬 관련해서는 신복음주의자로 구별되는 저자들과 헨리 나우웬, N.T라이트나 레슬리 뉴비긴
같은 저자들의 발굴이 오히려 복음주의를 풍성하게 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음.
로이드존스를 근본주의자로 낙인찍으려는 게 아니라 대다수의 복음주의자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이안 머레이의 편협한 구획 설정이 그의 색깔을 근본주의적으로 만드는 것 같음.
풀러 신학교나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미국 IVP에서 출판되는 많은 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저서들
을 다 '변절'로 치부하면 나도 자유주의자나 급진적 복음주의, 좌파 복음주의로 분류될 듯...ㅜㅜ (09.03.10 17:16)



이주일:
그렇군요. 용주형의 친절한 대답에 감사드립니다. 여기에 대한 저의 입장을 간략히 말해보자면요.

1. 이안 머레이의 주장에 대해서는 <분열된 복음주의>를 통해 사실상 처음 접했기 때문에 이안 머레이의 현대 과학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는 형을 통해 알게 되었구요. 유신론적 진화론이 복음주의 틀로부터 완전히 배제시켜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 머레이의 입장이라면, 저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만, 복음주의 틀 안에 두면서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이라면 저의 입장과 같다고 보이네요. (명확한 확인이 필요할듯~)

2. 에큐메니컬에 대해 저는 최종적으로 입장을 정리하진 않은 상태지만, 기본적으로 로이드 존스, 프란시스 쉐퍼, 데이비드 웰스, 이안 머레이의 입장에 따르는 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이란 기본적으로 성경적 정신이며 우리가 추구해야할 매우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만, 신복음주의가 에큐메니컬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교리적 공통분모를 '최소화'시킨 것 또는 교리적 중심을 주변화시킨 것이 현대 복음주의를 '구복음주의'와 멀어지게 만들었다는 지적에 공감을 하는데요. 물론 항상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면에서, 신복음주의의 학문적/지적 장점들을 저도 인정하는 편입니다. 문제는 교리적 중심에 대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3. 자유주의자, 급진적 복음주의, 좌파 복음주의 이런 말들에 대해서 저도 일정부분 그런 용어들로 분류를 하지만, 이런 분류들이 과연 명료한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조금은 회의적입니다. 각자 이런 말들을 사용함으로써 나타내고 싶어하는 의미가 서로들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교리적 태도에 대해서라면 형의 분류에 따르면, 저 또한 근본주의자로 분류되거나 불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프란시스 쉐퍼 또한 "근본주의의 사도"라고 불리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라면 저는 근본주의자라는 '오명'을 기꺼이 뒤집어 써야하지 않을까 싶구요. (09.03.10 17:53)댓글




이주일:
학문적 태도나 대화의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만약 근본주의자를 편협한 반지성주의자, 분열주의자(반연합주의자)로 지칭한다면 저는 근본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복음주의자들이 "근본주의"라는 낙인을 사용하는 것이 잘 정의된 태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 비평과 관련해서는 머레이의 입장이 모든 성경 비평을 거부하는 입장이라는 것인지, 다시 말해 고등 비평과 하등 비평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머레이는 양자 모두 거부한다는 것인지--확인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개혁주의적 입장에 따르자면 하등 비평은 받아들이는 것으로 아는데요--궁금하네요
예를 들면, 저는 성경을 기본적으로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지만,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머레이는 하등비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문자주의자'인가요?

** 다른 것을 떠나 <분열된 복음주의>의 핵심 쟁점은 신복음주의자들에 의해 추진된 에큐메니컬 운동의 동참에 있는 것 같은데요. 머레이의 다른 견해들은 제외해 놓고, 에큐메니컬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키엘 대회와 그 이후 성공회 복음주의자 대회에서 명확한 교리적 입장(예를 들면, 패커가 자주 언급했던 것처럼 성공회 39개조 등에 대한 믿음)이 유보되거나 폐기되었다는 것에 대해(p.192~ 참조)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구복음주의와는 교리적 태도에서 상당히 달라진 것이 분명하고, 이는 분명히 비판받을 만한 지점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 (09.03.10 17:53)



김용주:
오호.. 내공이 장난이 아니구나. 멋진데? 정통 개혁주의자의 준비된 답들이 술술 나오는구나.
난 교회의 연합 문제를 교리의 잣대로 척척 잘라내는 행위가 다분히 폭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쉐퍼도 <그리스도인의 표지>에서 자신의 스승이 메이천 교수의 분리에 대해 이해는 하면서도
그것이 바른 결정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던 걸로 기억한다.
개혁주의의 교리 전통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복음주의자로 한평생을
헌신한 제임스 패커 같은 대가에게 '실패'라는 오명을 그렇게 쉽게 던져주는 머레이의 태도에서
나는 실망이 되었던 게 사실이야.
제임스 패커가 스스로에 대해 후회했다는 그의 자료들을 보면서는 나도 좀더 파고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드는구나.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서는 다분히 문제가 있었던 것을 나도 알고 있고
연합된 교회 중에는 교리적으로 비판이 필요한 이들이 있었음 또한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존 스토트의 고백대로 자신이 교리적 잣대로 비판했던 많은 이단스런 교회들이 실제로는
더 보수적인 교회들도 있었고 구원과 관련된 성경의 핵심 교리에 대해 어느 정도 일치를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에 나는 크게 감동했었지.
따지고 보면 헨리 나우웬은 가톨릭 신부고 라이트나 존 스토트는 성공회 신부이지만
우리는 복음주의라는 이름으로 달면 끌어들였다가 교리라는 칼로 다시 그들을 단죄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드는구나. 존 스토트의 평생 살면서 씨름한 지옥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멸절론적인 사적 신앙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주변에서도 망령이 들었느니 미쳤느니...하며
쉽게 떠들어 대는 IVF 선배들을 보며 그들이 공산당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었다.
이안 머레이의 글에서 나는 그런 류의 냉정함과 비판의 날을 보아서 그런지 좀 심기가
안 좋았지. 어찌보면 스스로는 거장들에 대한 배려를 했다고 생각할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의 신앙과 나의 신앙이 항상 조율이 가능하고 날과 날이 만나면 더 날카로워지는 것처럼
우리의 지성도 하나님을 향한 열망으로 더 타오를 것을 기대하며... 쩝... (09.03.10 18:21)댓글수정삭제



이주일:
용주형에게 칭찬을 받다니 기쁘네요. 그리고 용주형의 자세한 대답들을 들을 수 있어서 참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어쩌면 제가 현대 복음주의의 느슨한 교리적 태도들을 지금 굉장히 엄격하게 비판하고 있는 이유는, 제 자신이 (아마도 ivf를 통해 길러진 태도라고 보이지만) 신복음주의자의 대열에 오랫동안(거의 20대 말까지) 서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ivfer, 기독학생연합회 대표, 뉴스앤조이.복음과상황 간사 이런 닉네임만으로도 이 점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제임스 패커를 저는 지금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저작들을 관심있게 참고하는 편이구요. 머레이의 <분열된 복음주의>에서 패커가 실패했다고 하는 것은 그의 신학적 작업이 실패했다기 보다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 구복음주의자들의 영향력을 확대시키려는 시도가 실패했다는 점이라고 저는 이해했는데요. 이런 점에서 스토트나 패커가 비판받을 점이 있다는 것. 저도 스토트를 제의 신앙의 영적 아버지로 여길만큼 존경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비판받을 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형이 말씀하신 내용에도 상당히 공감을 하는데, 일반적으로 "개혁주의자" "정통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쉽게 자신의 협소한 잣대로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않은채/읽지도 않은채) 마구 잘라내는 것에 대해 저 또한 조심스럽고 비판적입니다. 정서적으로 불편하기도 하구요. 프란시스 쉐퍼의 태도처럼,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고, 심지어 무신론자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면 배워야 한다는 겸손한 태도를 갖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태도여야 하며, 특히 정통 개혁주의자의 태도여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09.03.10 18:36)



이주일:
한 가지, 프란시스 쉐퍼의 후회는 진리를 말하면서 '사랑의 태도로' 말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저는 읽었습니다. 쉐퍼는 진리를 말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사랑이 없이 행동하는 것에 대해 그의 후반기에 특히 많이 돌아보며 회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쉐퍼가 진리 없는 사랑, 또는 진리 없는 연합을 추구한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쉐퍼는 끝까지 '진리'의 문제를 타협한 70~80년대 복음주의를 이런 이유로 "위기"라고 규정하고 있으니까요. 근거는 이안 머레이에 따르면, 쉐퍼는 키엘 대회와 그 선상의 연합 논의들에 대해 "경고"하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고, 또 하나 쉐퍼 자신의 책에서 "로잔 언약"의 성경관 부분에 대해 "애매하게 기술되었다"라고 강경하게 비판하고 있으니까요. (09.03.10 18:46)


쉐퍼와 스토트 (김용주)
회사에서 대충대충 썼더니 내공이 딸려서리... 주일이가 쉐퍼에 대해서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10여년 만에 집에서 쉐퍼 전집을 끄적여본 결과 <그리스도인의 표지>가 아니라 <주목하는 교회 앞에 선 교호>에 언급이 되어 있더구나. 쉐퍼는 메이첸 교수의 성직 박탈과 관련하여 장로교교파연합회의 해체를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교단을 나온 사람들은 그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그 연합회를 해체시켜 버리고 바로 그 순간까지 그들과 함께 이 전장에서 싸워왔던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형제들과의 모든 교제를 대체로 끊어버렸다. 우리는 이러한 결단으로인해 40년 동안이나 고통을 겪어 왔다."

여기서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주일이 말대로 쉐퍼가 자유주의 신학자들과는 분명한 경계선을 긋는다는 점이야. 그가 후회하는 것은 연합회를 탈퇴함으로서 그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게된 많은 교단에 속한 참된 형제들과의 교제를 끊은 점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도 다른 교파에 속한 이들과 특정 사항에서 차이를 보임에 있어서도 그들과 교제와 연합이 가능함을 암시하는 듯 하다. 쉐퍼는 마지막 부분에서 "성경을 믿는 장로교인인 나는 다른 전통들로부터 온 참된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교파적 차이들을 지닌 참된 그리스도인들과 매우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가서 그들과 악수하며 마치 내가 영원전부터 그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과 얘기한다. 우리가 교리의 특정한 사항들에 이르면 우리는 서로 다르다."라고 언급하지. 물론 '성경을 믿는'이라는 수식어로 경계선을 그으면서.

쉐퍼가 가시적인 교회를 바라보면서 가졌던 태도가 그랬던 것 같다.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서는 교리가 희석되는 일들이 생기는 것에 반대했지만 연합에 있어서 분리주의적인 태도가 나머지 서로 다른 교단에 속해있지만 성경을 믿는 참된 성도들에게는 그로 인해 오랜 시간 상처를 주었고 그들이 신학적으로 자유주의화되는 것을 방관했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랑으로 말하는 것 뿐 아니라 진리를 말함에 있어서도 분리주의적인 태도가 야기하는 남은 경건한 자들에 대한 배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지. 또한 다른 교단에 속한 각론적 차이를 보이는 참된 형제들 사이에도 사랑으로 연합과 교제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것 같다.

(추가적으로 나는 개인적으로 쉐퍼의 사상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많아서 지금에와서 쉐퍼의 사상을 파는 것에는 회의적이지만, 쉐퍼만큼 당대의 회의론적인 이들, 특히 지적으로 방황했던 청년들을 라브리를 통해 사랑으로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고민했던 문제를 두고 함께 씨름했던 사실에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어. 그에게 현대 사상과 신학은 자기만족이나 지적 유희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려는 복음전도의 다리 놓기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적 고민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나갔다는 점이 그를, 그가 불리기 바랬던 대로 20세기 최고의 '복음전도자'로 칭하게 만든 것 같다.)

물론 나는 쉐퍼보다 더 나아가서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서 우리가 이단시해온 가톨릭이나 진보진영의 교단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보수 신학을 고수하거나 복음주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온 이들이 발굴되었다는 점에 고무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고. 아마 여기에서 주일이와 내가 갈라지는 부분인 것 같구나. (여기에 대해서는 추후에 더 토론할 계기가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나는 존 스토트의 <복음주의의 기본진리>에서 말년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며 했던 말이 나를 흔들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쓰려고 하는 글에서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구별되는 기독교 사상계(가톨릭, 자유주의, 복음주의)가 항상 상호 배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님을 잊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차이점과 더불어 합일점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절대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을 지지하는 것과 절대 다수의 개신교인들이 종교개혁의 많은 진리들을 여전히 확증하고 있는 것에 대해 참으로 기뻐하고 감사한다. 다시 말해서 복음주의의 모든 핵심 진리가 복음주의만의 독특한 특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략) 나는 분열을 거듭하는 복음주의의 경향에 대해 계속해서 깊이 염려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수많은 복음주의 '분파'에 대해 언급하며 '복음주의' 앞에 어떤 성격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붙이기를 좋아한다. 보수적, 자유적, 급진적 점진적, 개방적, 개혁파, 은사주의적, 포스트모던 등 그러한 예들은 많다. 복음주의 신앙에 대한 우리의 특정한 이해를 선한 양심으로 고수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를 복음주의자들로서 연합시키는 것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보다 헐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말인가? (중략)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비록 세계교회협의회의 자유주의적인 방침과 종종 원칙없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교회 연합 운동에서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확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부하는 자유를 주장하면서 분별력을 발휘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주일    
형의 친절하고 세심한 답변에 참 감동이 됩니다^^ 형과 이렇게 깊이 대화를 해 본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던 것 같아서 늘 아쉬웠는데, 형의 답변을 읽으면서 형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감사. 저도 답글을 달아볼께요^^ (09.03.12 04:23)



용주형의 답변에 대한 저의 답변/ 이주일
먼저 언급할 것은 여러 가지 바쁘신 중에 있을거라 추정되는데, 시간을 내서 꼼꼼하게 저의 질문에 대답해 주시려고 노력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예전 형과 함께 교회를 섬길 때 좋은 교제의 기회들이 있었음에도 아쉽게도 정작 깊은 교제를 나누지 못했었던 것이 제게 남아 있는 하나의 안타까움이었습니다. 도리어 한 교회를 섬기지 않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이렇게 형의 친절한 답변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저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형이 꼼꼼하게 검토하고 인용문까지 직접 글로 옮겨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저도 형이 옮겨주신 부분들을 참고해서 다시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좀 더 형의 답변을 전체적으로 여러 번 읽어보면서 형의 생각을 예전보다 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우선 참고로 형이 갖고 있는 쉐퍼 번역서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에서 발간된 책인 것 같은데요. 저는 ‘생명의말씀사’에서 번역된 책을 갖고 있어서 약간 제목이 달라 잠시 혼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언급하신 <주목하는 교회 앞에 선 교호>는 <The Church Before The Watching World>를 가리키는 것 같네요. ‘생명의말씀사’에서는 <오늘날의 교회의 사명>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형이 맨 처음 인용해 주신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 교단을 나온 사람들은 그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그 연합회를 해체시켜 버리고 바로 그 순간까지 그들과 함께 이 전장에서 싸워왔던 그리스도 안에서의 참된 형제들과의 모든 교제를 대체로 끊어버렸다. 우리는 이러한 결단으로인해 40년 동안이나 고통을 겪어 왔다."(저의 책으로는 전집 234쪽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 부분을 근거로 형은 “쉐퍼는 메이첸 교수의 성직 박탈과 관련하여 장로교교파연합회의 해체를 유감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라며 “쉐퍼가 자유주의 신학자들과는 분명한 경계선을 긋”고 있지만, “그가 후회하는 것은 연합회를 탈퇴함으로서 그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게된 많은 교단에 속한 참된 형제들과의 교제를 끊은 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사실은 “다른 교파에 속한 이들과 특정 사항에서 차이를 보임에 있어서도 그들과 교제와 연합이 가능함을 암시하는 듯 하다”고 해석을 하십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형이 더욱 진전시키면서 “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해서는 교리가 희석되는 일들이 생기는 것에 반대했지만 연합에 있어서 분리주의적인 태도가 나머지 서로 다른 교단에 속해있지만 성경을 믿는 참된 성도들에게는 그로 인해 오랜 시간 상처를 주었고 그들이 신학적으로 자유주의화되는 것을 방관했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여기까지 형의 해석을 따르자면, 형이 보실 때 프란시스 쉐퍼는 메이첸이 기존 교단을 떠나기로 한 결정에 대해 나중에 후회하였으며, 에큐메니컬 운동이 교리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점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에큐메니컬 운동을 지속했어야한다는 입장이었다는 것으로 제게 이해가 됩니다(적어도 이 책을 쓰던 시점인 1971년에는 말이죠). 물론 형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바른 신학”을 에큐메니컬 내부에 확산시킴으로 갈수록 자유주의화되는 기존 교단들을 조금이라도 지켜내야 한다는 목적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저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조금 더 명확하게 해야만 저의 입장을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첫째, 프란시스 쉐퍼가 부수적인 특정 교리에 대한 차이를 갖고 있는 ‘교단간 연합’에 대해 긍정적이었다는 것에 대해 저는 동의합니다. 형이 글의 중간에 인용하셨던 것처럼, (저의 책에는 236쪽에 있는 내용인데) 형이 인용해 주신 부분 바로 앞에는 (저의 책에 따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실질적인 간격은 장로교인과 기타 사람, 또는 루터교인과 기타 사람, 또는 영국 국교회와 기타 사람, 또는 침례교인과 기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간격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자복하고 따라서 언어로 표현된 명제적 의사소통인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인정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간격이다.”(형도 이 부분을 언급하셨었죠.)

즉,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한다면(쉐퍼의 다른 표현에 의하면, 성경의 무오성을 받아들인다면) 형이 인용하신대로 “ 성경을 믿는 장로교인인 나는 다른 전통들로부터 온 참된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교파적 차이들을 지닌 참된 그리스도인들과 매우 가깝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가서 그들과 악수하며 마치 내가 영원전부터 그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과 얘기한다. 우리가 교리의 특정한 사항들에 이르면 우리는 서로 다르다.”(형의 인용문)라 고 쉐퍼는 말합니다. 이 말에 바로 이어서 쉐퍼는 “비록 장로교인은 아닐지라도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나는 친근감이 가지만, 장로교인이라 하면서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친근감이 없어지는 것이 나의 솔직한 체험이다.”라고 말합니다. 결국 쉐퍼는 성경의 무오성을 중심으로 핵심적인 교리에 동의한다면, 교단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부수적인 교리들의 차이는 연합의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둘째, 프란시스 쉐퍼는 에큐메니컬 운동에는 분명하게 반대한 것으로 제겐 보입니다. 또한, 메이첸 박사가 기존 교단을 떠나기로 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같은 책의 좀 더 앞부분(저의 책은 209쪽)을 보면, 간음과 배교를 다루는 2장에서 프란시스 쉐퍼는 자신이 연합에 있어서 반대하는 ‘자유주의’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진보주의 신학”(the progressive theology)에 관해서도 좋은 말을 사용하여 우리의 태도와 진술을 꾸민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것은 진보주의 신학이 아니라 퇴보주의 신학이며 고전적 로마 카톨릭 용어로 말하면 인본주의이다. 개신교에서는 이것을 자유주의라 부른다.”

2쪽을 넘기면(211쪽) 쉐퍼는 “자유주의 신학만큼 타락해 온 음녀도 없다”고 말하면서, 같은 책 1장(저의 책으로 176쪽)에서 언급했던 “구자유주의는 기독교적 견해에서 볼 때 하나의 이단이다”라는 결론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여기서 볼 때, 우선 당시 로마 가톨릭과의 연합 운동은 분명히 반대할 것이라는 사실을 비교적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쉐퍼는 교단 탈퇴 문제와 관련해서 같은 책 3장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데요. (저의 책 217쪽에서 보면) 그리스도인의 표지의 핵심은 두 가지인데, ①가견적 교회의 순결을 실천하는 원리(즉, 성경관과 명확한 교리적 태도를 지켜야 한다는 것) ②그리스도인 안에 사랑과 하나됨을 다루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이 두 가지를 가견적 교회에서-즉 현실 교회에서-동시에 모두 이룰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219쪽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즉 육체 안에서는 우리가 사랑을 떠나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할 수 있을 뿐, 육체 안에서는 그 양자를 모두 자발적으로 강조할 수는 없더라는 것이 그 결론이었다.”

물론 성령님을 순간순간 의지하면서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여 말합니다. 이렇게 전제해 놓고 쉐퍼는, (저의 책 220쪽에서) 자신이 속했던 미국 장로교가 “확실히 모든 목사가 다 자유주의적으로 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의 교단으로서 장로교단이 자유주의 신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통제하에 명백하게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의 책 221쪽에서) “1936년 자유주의자들은 너무도 득세하여 그레샴 메이첸 박사를 성직 박탈시키고 그를 종교활동의 일선에서 제거했다.”고 언급합니다. (저의 책 228쪽에서) “그러나 1930년대에 구자유주의는 메이첸 박사를 추방했다. 이유는 그가 성경과 복음에 대해 취하는 명백한 태도 때문이었다.” 즉 그레샴 메이첸 박사가 교단에서 나오게 된 것은 자유주의자들의 성직 박탈 때문이지 메이첸 박사의 분리주의적 성향이나 결정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메이첸 박사가 당시 근본주의 세력과 필요에 따라 연대를 했던 건 사실이지만, 본질적으로 근본주의의 분리주의적이고 전투적이며 지엽적인 특정 교리를 지나치게 고집하는 태도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근본주의와 선을 그을 수 밖에 없었다고 <분열된 복음주의>에서 이안 머레이는 이야기합니다. 38쪽과 39쪽에서,

“메이첸과 그의 동료들은 근본주의(의) 몇 가지 문제 때문에 자신들을 근본주의자로 불리기 꺼려했다. …… 이들의 정책은 현대 사조와 싸움에 너무 집착했고, 기존 교단과 싸움에만 너무 신경쓰는 경향도 있었다. 대다수의 근본주의자들은 분리주의적인 경향이 너무 강해서, ‘따로 살림을 차리는 주의’(come-out-ism)에 열중했다. …… 이들은 이제 곧 실현될 예언을 강조하면서 현대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 사회는 곧 망하게 될 것임으로, 개인 영혼을 구원하는 것만이 기독교인의 유일한 사명처럼 취급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메이첸은 자신이 근본주의자로 불리는 것을 꺼려했지만, …… 1937년에는 또 한 번의 교단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메이첸이 따르던 구 장로교 신학(Old-School Presbyterianism)과 근본주의 문화 사이에는 너무 큰 간격이 있었다.” (저는 이와 같은 의미의 ‘근본주의’를 반대합니다.)

그래서 쉐퍼는 교회/교단/연합체의 분리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저의 책 222쪽에서)

“지금 여기서 의미하고자 하는 사실은 이런 것이다. 가령 우리가 인간적인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한 후에도 그들이 여전히 계속 자유주의를 주장한다면 교회 내의 자유주의자들은 마땅히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저의 책 230쪽에서)

“…… 교리적 순결을 위한 투쟁이 패했을 때 우리는 가시적 교회의 순결성을 실천하기 위해 취해야 할 제2의 방법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들이 관계해 오던 저 가견적 기구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교회를 떠난다 할지라도 눈물을 흘리며 떠나야 한다. 교회를 떠난다고 해서 북치고 깃발 날리며 떠날 것이 아니라 눈물을 흘리며 떠나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볼 때, 쉐퍼는 최대한 연합을 지켜야 하지만, 모든 노력을 다했음에도 중요한 교리적 핵심이 침해당하게 될 지경에 이른다면, 최종적으로 분리를 하는 것이 옳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바른 교리 안에서의 연합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쉐퍼가 후회하고 있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저의 책 231쪽과 232쪽에서 쉐퍼는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렀을 때, 모든 사람이 ‘동시에’ 기존 교단에서 떠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먼저 떠나고 누군가는 남아 있게 된다는 거죠. (여기에는 각자의 상황에 대한 판단이 다를 수 있다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위험한 것은 먼저 떠난 사람들은 쉐퍼의 표현에 따르면 “완고해지는 경향”이 있어서 “조그마한 교리 문제에 대해서까지 절대주의자들이 되려고” 합니다. “절대적인 것을 믿는 것과 만사에 절대주의적 정신을 가지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고 쉐퍼는 꼬집어 얘기합니다. 또한, 머물러 있는 사람의 경우 “교회적 포용주의에서 타협적 종합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에 관해 말을 하면서도 점점 진리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는 교리적 종합주의를 받아들이기 쉬울 뿐 아니라 특히 성경에 대한 분명한 견해도 무시하려는 경향이 생기게 된다.”고 말합니다.

정리하자면, 프란시스 쉐퍼는 연합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으나, 그것은 중요 교리를 양보해서는 안되며, 성경의 중요 교리에 동의하는 사람들 사이의 연합만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교단 내부에 자유주의자가 생기면 최대한 노력을 한 뒤에는 ‘징계’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대신 이와 같은 과정에서 ‘사랑’의 태도를 가견적으로 보이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습니다. 즉, ‘진리를 말하되 사랑으로 말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앞 문단에서 언급했던 먼저 뛰쳐나온 사람들과 남아있던 사람들 사이에 교제를 끊어버렸던 먼저 뛰쳐나온 사람들의 “완고한 태도”에 대해 중대한 ‘실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저의 책 233쪽). 메이첸의 기존 교단에의 분리는 메이첸의 뜻이 아닌 당시 교단을 지배하던 자유주의자들의 추방 때문이었구요(적어도 쉐퍼의 글에 따르면).

따라서 형이 말씀하신 것처럼 (저의 책 234쪽에 따르면) 쉐퍼는 먼저 뛰쳐나온 사람들이 기존 교단(연합체)에 아직 남아있던 참된 그리스도인과의 교제를 단절했던 실수로 인해 미국 교회는 “더 한층 자유주의적으로 되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에 남아 있던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떠난 사람들의 태도에 실망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쉐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연합과 그리스도인의 순결(교리적 태도)에 대해 입장을 함께 합니다.

조심스럽지만 제 생각에는 바로 이와 거의 같은 입장에서 이안 머레이는 로이드 존스와 스토트-패커의 대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열된 복음주의>에서 머레이가 제기하는 문제는 이와 같습니다. 34쪽에서

“1950년대까지 복음 사역을 이끌던 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에 대하여 아주 명확한 입장을 취했다. 각자 속한 교단에서는 소수자로서 이 문제와 전면적으로 싸울 입장이 아니었다. 대신 자신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는 다양한 모임과 조직을 통해 모여서 협력했고, 적어도 그곳에서는 다른 신앙 사조가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그런데 1967년 제1회 전국 성공회 복음주의 대회였던 키엘 대회에서 영국 복음주의자들은 같은 교단 내부의 자유주의자들과 “연합”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69쪽에서,

“결국 1967년 4월 키엘에서 열린 전국성공회 복음주의 대회(National Evangelical Anglican Congress NEAC 1)에서는 이전 태도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따라서 키엘 대회의 개회사는 영국 성공회의 캔터베리 대주교이자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심판, 대속적 죽음 같은 교리도 믿지 않았”(67-68쪽)던 마이클 램지 대주교가 맡아서 “슐라이어마허의 신학 정신에 입각해서 청중에게 ‘경험’이 ‘신학’보다 우선하다는 점을 주지시켰고, 복음주의자들도 성공회 안에서 정말 제 몫을 누리기 원한다면, 과거의 배타성은 버려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하게 됩니다.

로이드 존스가 반대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키엘 대회가 열리기 6개월 전에 앞서 열렸던 1966년 10월의 ‘전국 복음주의 대회(National Assembly of Evangelicals)’에서 로이드 존스는 “복음주의자들이 에큐메니컬 운동과 기성 교단 내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복음주의의 독특한 신앙을 훼손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생각”(73쪽)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존 스토트는 “(1954년 이래로 복음주의자들이 전국적으로 더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상황을 보면서) 복음주의의 발전에 새로운 기회가 왔을 뿐 아니라, ‘동시에’ 기존 교단에서도 복음주의자들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73쪽)습니다.

이안 머레이에 따르면, “로이드 존스도 교단의 차이는 진리의 근본적인 문제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논점은 복음주의가 원래 자리를 지키려면, 무엇보다도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는 연합부터 추구해야 정상이라”(75쪽)는 것입니다. 또한, “자주 잘못 인용되는 ‘순수한 개혁주의 교단을 만들자.’라는 식도 아니었”(75쪽)습니다. 76쪽에서 보면, 로이드 존스는 언론들이 기사화했던 것과 달리 교단을 떠나서 순수한 복음주의 교단을 만들자는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었”(76쪽)습니다.

결국 이안 머레이의 분석의 결론은 172쪽에서 “이제 성공회 가톨릭파 신학은 아주 자연스럽게 성경적 복음의 또다른 표현으로서 받아들여졌”으며, 173쪽에서 자유주의자들을 “원칙적으로는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이들을 동료로 대하고, 이들과 거리를 두려는 노력을 (60년대 이전처럼) 따로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안 머레이가 볼 때, 에큐메니컬 운동은 반대해야할 연합 운동이었는데, 그 이유는 가톨릭파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가진 사람들과 ‘연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이 에큐메니컬 운동을 수용한 결과 패커가 인정하는 것처럼, 영국 성공회 (구)복음주의자들의 핵심 교리였던 성공회 39개조 신조가 포기되었습니다.

많이 길어졌습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저의 입장이 에큐메니컬 운동에 대하여 프란시스 쉐퍼, 로이드 존스, 이안 머레이와 입장을 함께하는 이유는 에큐메니컬 운동이 ‘성경관과 중심 교리를 믿는 교단간 연합’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경관과 중심 교리를 부인하는 가톨릭과 자유주의자들과의 연합’이기 때문입니다. 성경관과 중심 교리가 분명히 다름에도 ‘연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저는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지엽적인 교리가 다른 ‘교단간 연합’에 대해서 저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스토트와 패커가 중심 교리를 부인한 것은 아니지만, 키엘 대회에서 가톨릭과 자유주의자들과 연합하면 복음주의자의 교단 내부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은 ‘순진한 상황 판단’이었다는 쉐퍼-로이드 존스-머레이의 지적에 저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다른 점에서 존 스토트와 제임스 패커를 저는 무척 좋아하고 깊이 존경하며 그들로부터 저는 배웁니다.

형이 마지막에 언급하신 존 스토트의 말,

“……많은 복음주의자들은 비록 세계교회협의회의 자유주의적인 방침과 종종 원칙없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교회 연합 운동에서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확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거부하는 자유를 주장하면서 분별력을 발휘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 내용에 따르면, 자유주의자-가톨릭과 연합하되 복음주의적 진리를 개별적으로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스토트는 여전히 생각이 바뀌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에 앞서 스토트는 형의 인용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수적, 자유적, 급진적 점진적, 개방적, 개혁파, 은사주의적, 포스트모던 등 그러한 예들은 많다. 복음주의 신앙에 대한 우리의 특정한 이해를 선한 양심으로 고수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를 복음주의자들로서 연합시키는 것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보다 헐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다는 말인가?”

저는 ‘참된 의미’(성경관과 중심 교리를 공통분모로 하는)에서 복음주의자들 간의 연합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찬성합니다. 교단 간 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자유주의-가톨릭 세력과의 연합(에큐메니컬 운동)에는 반대합니다. 이것이 쉐퍼-로이드 존스-머레이의 입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용주:
나는 쉐퍼가 에큐메니컬 운동을 반대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뎅.
분리된 것도 메이첸이 교단을 나온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러면서 장로교연합회마저 해체하여 남아있던 교단의 형제들과의 관계를 끊은게 문제였던 것 같다. 쉐퍼도 그렇게 말했고 나도 그렇게 인용했고.
그래서 나는 쉐퍼보다 더 나아가기를 원했다고 말한거고. (09.03.12 07:59)



이주일:
네 그렇다면 제가 형의 글을 일부분 오독했던 것 같네요 ^^ 쉐퍼의 주장에 대한 이해에는 차이점이 없군요^^ 에큐메니컬 운동이나 연합 운동의 원칙에 대한 차이가 있다고 보면 되겠네요~ ^^ (09.03.12 08:04)


**이글은 주일이가 운영하는 <개혁주의 싸이클럽>에서 퍼왔습니다.
2009/03/14 20:42 2009/03/14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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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홍대에서 뜨고 있다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UCC를 봤을 때,
그저 웃긴 친구라는 생각을 했다.
예사롭지 않아보이긴 했지만 워낙 백댄서하며 퍼포먼스가 코믹 컨셉처럼 여겨져서
그다지 잘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곧 RSS뉴스에 장기하라는 이름이 간간이 나오는 것을 보았고 얼마 전에는
그가 녹음한 붕가붕가 레코드에서 정식 1집 앨범이 발매된다는 사실을 알고
한 번 들어볼까 싶어 음반을 주문했다.
발매한 지 몇 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알라딘 자간 음반 판매 순위 1위.

난 처음 음반을 들을 때는 조용한 곳에서 헤드폰으로 듣는다.
특히 스튜디오 녹음인 경우에는 주변 잡음이 없는 것이 최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들었다. 기가 막히다.
한 마디로 총평하자면 사견이지만 퀸 이후로 이렇게 창의적인 밴드는 처음이다.

유쾌하면서도 세련되고 운동권 노래 같다가도 '얼터너티브'스럽다.
어떤 곡은 송창식스럽기도 하고 키보이스의 "해변으로가요"가 연상되는 대목도 있다.
중간중간 들어가는 스캣? 추임새 류의 가사들도 곡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준다. 게다가 가사는 미시적이면서도 사고하게 만든다.

장기하와 얼굴들. 난 그의 열렬한 팬이 될 것이다.

 

*별일 없이 산다 - 장기하와 얼굴들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거다
왜냐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다리 쭉뻗고 잠들진 못할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이건이건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거다
이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거다
하지만
나는 사는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나는 사는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좋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나는 사는게 재밌다 나는 사는게 재밌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알았냐?

2009/03/13 20:38 2009/03/1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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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만에 조규찬 공연을 갔다.
아내가 회사일로 바쁜 중에 육아를 돕느라 수고한다고 하루 휴가를 준 셈.^^ 함께 육아로 뺑이치고 있는 상국이 형에게 연락하여 함께 토요일 저녁 대학로로 휴가를 떠났다. 상국이형과는 95년도에 처음 조규찬공연을 대학로 소극장에서 같이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리더-멤버의 관계라 지금처럼 친하지는 않았고 14년 동안 이렇게 관계를 유지하리라 생각도 못했었다. 생각해보면 형과의 관계는 정말 흥미롭다.

95년 전에 무얼 먹을지 몰라 대학로 골목을 2-3번이나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에는 분식집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 때 무슨 얘길 했던 것 같은데 이젠 기억이 잘 안나네. 아무튼. 2집 공연을 시작으로 3집 공연, 박학기 듀엣 공연 등 몇 차례가 우리는 같이 공연을 보았고 4년 전에는 결혼한 아내들과도 조규찬을 들었다.

어찌보면 조규찬은 좋아하는 가수이기도 했지만 나의 청년 시절의 발자욱 구석구석에 흔적이 남아 있는 추억거리다. 그도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겼고 이제는 마흔이 가까워온다. 공연은 그의 음악 인생을 편한하게 풀어낸 것 같았다. 그가 좋아했던 영화들, 음악들이 같은 세대인 나에게도 그러했다. 그는 공연 중간에 간간이 자신이 쓴 글을 읽어주곤 했는데 그의 나이가 느껴지는 대목들이 많이 있었다.

'고려장'
그는 지금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고려장에 비유했다. 아직 건강한 아버지를 등에 지고 산으로 데려가는 힘쎈 아들로 인해 급하게 자신의 자리를 다음 세대로 넘겨주고 사라져야 하는. 벌써 스테이지에서 내려와 심사위원으로 교수로 강의나 하도록 밀어내고 있는 주변의 분위기를 이야기하는 그를 보면서 우리의 중년은 우리 아버지 세대보다 더 빨리 세상에서 떠밀려 나가는 느낌이 든다는 생각을 했다. 엔지니어인 나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10대부터 뜨고 20대 후반이면 퇴물취급받는 연예계에서 가수라는 직업의 그가 느끼는 '밀려남'의 강도는 더욱 가파를 것이다.

따뜻했던 그의 공연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고 또한 차분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 발은 마치 내 생각을 읽고 있다는 듯이 나를 움직였다. 내 몸의 변화만큼이나 내 머리와 감성들도 변해가는 걸까. 아니면 똑같이 느끼는 나를 세상이 먼저 다르게 바라보는 걸까. 그 순서가 어찌됐건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아니, 아니어야 한다. 혹은 아니어야 하는 것 같다.
2009/03/08 20:34 2009/03/0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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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마을 시리즈는 항상 읽을만한 가치가 있지만 이번 장대익 교수의 <쿤&포퍼>는 특히나 더 그러하다. 이 책은 쿤과 포퍼라는 두 과학철학의 거장을 내세웠지만 과학철학 최고의 입문서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만큼 잘 정리되어 있으며 이해하기도 쉽게 쓰여졌다. 각 챕터의 내용들은 모두 강의를 듣는 것처럼 자세하며 참고문헌과 더 생각할 거리들이 추가로 정리되어 있어 심도있는 공부를 위한 이들도 충분히 깊이 파고들 수 있도록 배려했다.

철학을 과학처럼 해보자는 시도로 시작된 빈 학파의 논리 경험주의와 그 토대가 된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칼 포퍼의 반증주의, 쿤의 패러다임 이론, 임레 라카토슈의 연구 프로그램과 파이어아벤트의 아나키즘까지 과학철학의 굵직한 흐름들을 짧은 분량의 책에서도 비교적 자세히 파고 든다. 책의 뒤편에 정리된 과학철학 관련 문헌은-특히 최근까지 번역된 책들을 포함한-이 책의 훌륭한 보너스가 될 것이다.

저자의 천부적인 장점은 과학분야의 어려운 개념들을 일상적인 언어와 친숙한 예로 치환하여 설명하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으로 20세기를 흔들었던 과학사, 과학철학의 흐름을 한 눈에 조명할 수 있도록 이끈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많은 지식을 쉽게 풀어쓰는 능력은 분명 구별된다는 점에서 장대익 교수는 메이저급 출판사가 눈독들이는 주요 저자임에 분명하다. 앞으로도 진화론과 같은 과학 분야에서 저자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2009/01/18 19:33 2009/01/18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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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감독을 처음 알게 된 건 엄정화와 감우성이 주연한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통해서였다. 물론 10년전에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한다>란 영화가 있긴 하지만 제목만큼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말죽거리 잔혹사>와 <비열한 거리>등의 흥행세를 몰아 최근에 <쌍화점>을 내놓았다.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쌍화점>이 그저 그랬다. 많은 이들이 공감했겠지만 주진모의 연기력을 확인한 것 외에 쌍화점은 조인성과 송지효의 베드신을 보여주기 위한 2류 영화에 다름 아니었다. 그 외에는 사극으로서의 스케일만 커졌을 뿐 감독의 시야는 오히려 후퇴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나는 유하 감독이 남자들 세계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이 싫다. <비열한 거리>에서도 병두(조인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황회장(천호진)과 민호(남궁민), 그리고 그의 조직원이었던 종수(진구) 중, 감독의 페르소나를 대변하는 듯한 영화감독 민호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병두의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감독이 남자들의 우정을 피도 눈물도 없는 '조폭'의 세계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평면적인 접근이다.

유하 감독의 또다른 작품인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남자들 사이의 배신이 판친다. 우식(이정진)을 따르는 현수(권상우)는 우식을 아끼지만 1인자의 자리를 다투는데 있어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경쟁하는 데에 있어서는 서로 무심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냉정하다. 또한 우식의 꼬봉격인 햄버거(박효준)는 순간의 욱한 심정에 우식에게 상처를 입혀 싸움 끝에 결국 학교를 떠나게 만드는 장본인 역할을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조차 우식이 떠나고 소식이 없어도 현수와 햄버거는 재수학원 앞에서 취권을 휘두르며 즐거워한다.

<쌍화점>에서도 이런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왕(주진모)과 연인 관계에 가까운 홍림(조인성)은 왕을 목숨처럼 지키는 친위부대 수장이었다가 왕후(송지효)와의 대리합궁으로 왕후를 사랑하게 되고, 그로 인해 왕을 배신하기에 이른다. 왕의 고뇌와 질투, 그리고 분노는 효과적으로 전달되지만 홍림의 정사와 배신은 왕후와 육체적인 사랑 그 이상의 무엇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왕과의 관계가 파경으로 치닫는데 대한 설명력을 잃는 듯 하다. 또한 만일 왕후와 홍림의 관계가 육체적 사랑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색계>에서 펼친 양조위와 탕웨이의 베드신처럼 왕후와의 정사가 캐릭터의 심리까지 전달될 정도로 농염하지도 않다.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반복적 베드신은 반복되는 파격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자주 등장하는 베드신이 의아하게 느껴진다.(베드신을 위한 영화?) 결국 거세당한 분노로 배신의 칼을 뽑아든 홍림의 비장함은 플롯을 잃어버린 채 때때로 코믹하게 보이기까지한다.

대작이라 불릴만한 영화 속 캐릭터들은 그저 선하거나 그저 비열하기만 하지는 않다. 잔인하기 그지 없는 마피아 영화에서조차 배신자의 심리는 복잡하기만 하다. 일례로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누들스(로버트 드 니로)를 제외한 나머지 동료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고 다른 이름의 삶을 살아가는 맥스(제임스 우즈)는 말년에 누들스를 초대해서 자신의 비리를 폭로하고 자살을 한다. <대부>의 마이클 콜리오네는 아버지인 비토 콜리오네(말론 브랜도)의 사후 권력 다툼에서 자기 형을 죽인 죄값으로 평생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배신자의 복합적 심리를 파고드는 것은 단지 얼마나 파격적이냐의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얼마나 감독이 캐릭터들을 마음으로 감싸고 이해하려 드느냐 하는 것에 있으며 감독은 이 부분을 자주 간과한다.

오히려 여성 캐릭터들은 정반대로 너무 지고지순하고, 일편단심으로 남자 주인공들을 따른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엄정화)는 준영(감우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캐릭터이다. 결국 준영은 연희를 자신을 섹스 상대 정도로만 여기는 속물로만 보다가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녀가 의사인 남편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과 결혼하여 변변찮은 삶을 살 마음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은주(한가인)도 친구들이 모두 등을 돌린 우식이 찾아오자 현수를 버리고 우식을 따라서 사라진다. <비열한 거리>에서 병두를 사랑하는 현주도 마찬가지고, <쌍화점>에서도 대리합궁으로 육체적인 정을 나눈 홍림에게 왕후는 마음까지 허락하여 함께 도망가자고 권하기도 하며 결국 홍림의 신변을 위협하는 왕마저 해칠 계획을 세운다. 강자에게 순종적인 여성 캐릭터는 남성의 환타지를 충족시킬 수는 있겠지만 시대에 맞지 않게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내비치는 대목으로 읽히기도 한다.

감독은 이렇듯 주인공을 둘러싼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이중 잣대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남자들의 세계는 단순히 비열하고 냉정하고 차갑기만 하다. 마치 남자들의 세계가 그렇다는 듯. 때로 주인공을 도와주기도 하지만 배신할 때는 가차 없다. 2인자는 자주 배신하며 그 배역 자체에 대한 애정이 깃들어있지 않아 보인다. 반대로 강자를 사랑하는 여인들은 너무나도 순종적이고 헌신적이다. 강자가 되기 위해 경쟁하는 남자들의 세계는 지나치게 단순한 캐릭터로 달려가고 그를 따르는 여성은 가부장적 권위에 순종하는 감독의 전반적인 영화 흐름이 나는 불편하다. 설령 가부장적 가치관의 팩트들을 끌어감에 있어서도 사건들을 풀어가면서 그 사건에 개입된 이들의 동기와 심리, 그리고 행동의 원인들을 찾아가지 않는 한, 캐릭터의 극단적 평면성은 스케일이나 촬영기술, 시각효과의 뛰어남으로도 커버되지는 않을 것이다. (끝)

2009/01/15 19:31 2009/01/1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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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유명한 시트콤 <프렌즈>의 전편을 다 보았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미국의 유명했던 시트콤에 지난 몇 년간 나도 참 많이 끌렸고 한 시즌 한 시즌 재미있게 본 기억이 아직도 많이 남는다. (물론, 프렌즈에 관한 한 아내의 '집착'을 빼 놓고 이야기할 순 없겠지만.^^)

나에겐 이 코믹한 드라마가 흥미와 즐거움 이상의 것이었다. 물론, 몸값이 오를 대로 오른 배우들에게서 풍기는 매력이라거나, 각 시즌마다 짜임새있게 쓰여진 시나리오의 구성, 재치있는 입담들을 빼 놓을 순 없겠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 내가 깊이 매료되었던 건 내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그것은 그 시기가 한창 내가 '일'에 파뭍혀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던 듯 하다.

나이가 2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냥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주변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나는 항상 학교, 교회, 선교단체와 같은 어떤 조직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일을 꽤 잘 하는 사람의 범주에 속했기 때문에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나는 사적으로 받는 전화가 거의 없는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연락처가 쓰여진 플래너를 펼친 어느 날을 잊을 수 없다. 내게 소중한 우정을 가진 이들이 누구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다가 무심코 펼쳐든 플래너에서 나는 도대체 누구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혹은 누구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어주고 있는지 사실 나조차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세상에 내던져진 이후로 나는 세상이 나를 이끄는 대로,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을 스쳐가듯 대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중요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고 때로는 전혀 몰랐던 사람들도 갑자기 친해지곤 했다.

어느날 <프렌즈>를 보면서 카페에서 편안하게 매일같이 만나서 아무 이유없이도 서로 친밀한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더 이상 세상에 내 몸을 맡기고 내 인간관계를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속 그들에게 있어서도 우정이 지속되는 것을 방해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그들의 환경을 변화시킨다. 이사를 하거나 직장을 먼 곳으로 옮긴다거나 친구들 간의 삼각관계.. 하지만 그들은 우정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친구들의 요구에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는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결국 우정을 키워가는 데에도 많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드라마는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그들은 시트콤의 출연으로 맺어졌지만 스튜디오를 나와서도 서로 간의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 시간이 지나면 선천적으로 가진 장점들과는 별개로 자신이 노력해서 가꿔가야 할 부분이 점점더 커진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의 인간관계, 우정으로 맺어진 친구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은 나는 너무 힘들게, 먼 길 돌아가듯 깨달은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더더욱 가까운 사람들이 소중하며 나에게 주는 의미도 그만큼 크다.

나란 사람은 원래 혼자 있길 즐기고 외로움을 많이 타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도 친구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안다. 우정없이 삶을 영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만큼 나에게 당신은 소중하다. 아니, '당신'이 아닌 '우리'는 소중하다.

2008/12/27 19:29 2008/12/27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