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정희진은 알다시피 여성학자이다. 그녀의 책 <페미니즘의 도전>은 내가 작년에 읽은 책 중 단연 으뜸이라고 말할 정도로 뛰어난 책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책의 서문에도 썼듯이, 그리고 그 책에 대한 평가 중 자주 나오는 얘기가 정작 일반 여성들조차 그녀가 쓰는 여성학 글쓰기를 어렵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젠더 이론이나 페미니스트들의 글이 전반적으로 일반 여성들에게 외면당하는 것도 하나의 안타까운 현상이다.
대체로 내 주변 사람들은 정희진의 이 칼럼을 글쓰기에 관한 어떤 일반적인 혜안으로 이해하겠지만 맥락으로 이해해 볼 때 이 칼럼은 정희진이라는 발화자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이 전개하는 여성학 담론의 난해한 글쓰기 '스타일'에 대한 자기변호다. 그것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그런 맥락을 짚고 난 후에. 나는 살짜쿵 그 칼럼에 '딴죽'을 걸고 싶다. 정희진 선생이 칼럼에서 다음같이 말한다.
"진정 쉬운 글은 내용(콘텐츠)과 주장(정치학)이 있으면서도 문장이 좋아서 읽기 편한 글을 말한다. 하지만 새로운 내용과 기존 형식이 일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글은 매우 드물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이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쉬운 글은 없다. 소용 있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이 있을 뿐이다. 어려운 글은 내용이 어렵다기보다는 소통 방식에 문제가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어려운 글은 없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글, 개념어의 남발로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아무도 모르게 쓴 글, 즉 잘 쓰지 못한 글이 있을 뿐이다."
이 본문은 1.새로운 내용과 기존 형식이 일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2.어려운 글은 어려운 게 아니라 소용이 없거나 소통의 문제가 있는 글이며 이는 잘 쓰지 못한 글이다 라는 두 가지의 명제를 갖는다. 엄밀히 말해 이 둘은 거짓이기도 하다.
첫째로, 새로운 내용을 기존 형식으로 쓰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여러 차례 언급한대로 (내가 아는 선에서) 강준만, 김두식, 리차드 파인만이 그런 필자 부류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새로운 내용'이라는 개념 또한 모호하다. 사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원조'는 없다. 엄밀히 말해 정희진 선생이 추구하는 소수자로서의 여성주의적 접근은 새로워서가 아니라 소수자를 옹호하고 그 안에 숨겨진 권력구도를 도드라지게 만들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조차도 '새롭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새로운 형식으로만 서술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더더욱 회의적이다.
둘째로 어려운 글은 어려운 게 아니라 소용이 없거나 소통의 문제가 있는 글이라는, 나아가 잘 쓰지 못한 글이 어렵다는 건 정희진 선생의 '재정의'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어려운 글은 화자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 타인의 표현이나 어구를 차용하고 그것이 불필요하게(어렵게) 독해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결국 '잘 못쓴 글이 어렵다'.
이에 반해 내가 정의하는 '어려운 글'은 이른바 지식을 뽐낸 글이다. 비교적 단순한 주장을 하면서도 그 주장을 했던 북미, 유럽 지식인의 이름이나 개념들을 복잡하게 나열하고 각주를 달고 그 사대주의적인 정서의 도움으로 아주 단조로운 주장을 포장하는 글이다. 아주 힘들게 독해를 하고 났을 때 짜증이 밀려오는 글이다. 혹은 고사성어나 현학적 표현들을 의도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글이다. 과거 조선일보 같은 보수 신문 칼럼에 글을 쓰는 노교수들이 그런 스타일을 고수했다. 노교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영(young)교수들도 마치 자신이 노교수인 양 그런 스타일을 흉내내는 것은 더더욱 불편했다.
사실 '어려운 글'은 그냥 어려운 글이다. 엄밀히 말해 '어려운 글'에 어떤 부정적 이미지를 덧입히는 행위는 발화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것을 재정의하고 싶을 때 그 표현을 이데올로기화 하는 것이다. 결국 '쉬운 글'도 그냥 '쉬운 글'이다. 가치판단은 발화자의 맥락 속에서 생성된다. 고로 정희진 선생의 글은 짧지만 많은 생각들을 끌어내 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글이지만 정작 '쉬운 글'에 대한 일반론이라기 보다는 '정희진표' 페미니즘을 정작 어렵다고 외면하는 여성들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자 하는 국지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하나더.
정희진 선생의 글과 책들을 더 많은 여성들이 '어렵더라도' 읽기를 권한다. 그녀가 '쉬운 글'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다시 주장하지 않도록 말이다.
*정희진 [쉬운 글이 불편한 이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2142125025&code=990100
내가 쓰는 livescribe라는 회사의 echo펜은 원래 anoto라는 스웨덴 기업의 기술이다. anoto사는 광학 카메라가 격자무늬 패턴의 노트를 통해서 정보를 읽어들이는 방식을 통해 손글씨를 디지털화하는 기술의 원 발명 기업으로 그러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모든 스마트펜은 다 그 회사에 라이센스비를 지불해야 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이 기술의 탁월함에 관한 것이 아니다. 광학펜과 도트 격자노트로 손글씨를 디지털화하려는 기술을 개발한 것 자체가 탁월한 발명이기는 하지만 손글씨를 디지털 방식으로 입력하는 장치는 타블렛, 펜마우스 등 여러가지의 방법이 있다. 최근에는 갤럭시 노트의 경우, 자체개발한 정전식 펜으로도 손글씨를 정밀하게 쓸 수 있다.
아래의 동영상을 보면 내가 정작 지적하고 싶은 대목을 알 수 있다. livescribe사는 기개발된 스마트펜을 가지고 다른 목적, 용도에 더 적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펜에 보이스레코더를 장착하고 그것과 디지털펜을 실시간으로 싱크를 맞추면서 녹음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필기할 때 외부 음성이 모두 녹음이 되고 그것을 다시 재생하거나 특정 기록 부분의 음성만 선별적으로 들을 수도 있다. 노트 필기 순서대로 음성이 따라가며 재생되는 형태로 판서 강의를 동영상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
교육공학 분야에서 livescribe의 스마트펜은 획기적인 결과를 냈다. 하위 20%의 학생이 이 스마트펜을 통해 수업을 리뷰하고 나서 상위 20%의 학생으로 탈바꿈했다. 노트필기만으로 기억하지 못했던 강의를 녹음된 형태로 복습하면서 그 학업효과가 괄목할만큼 좋아진 것이다. 아래 동영상에서도, 인터뷰하는 해당 수학 교수는 100명의 학생에게 일일이 문제를 풀어주던 과거와 달리 1번의 녹음+필기로 만든 파일을 100명에게 이메일로 보냄으로써 똑같은 문제를 100번 풀지 않아도 되는 이 마법같은 펜을 극찬한다.
livescribe가 녹음 싱크를 맞출 생각을 하지 않았던 때의 이 스마트펜은, 그저 손글씨를 컴퓨터에 입력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회사는 이 디지털펜을 기억을 되살리는 효율적인 툴로 뒤바꿈시켜놓았다. 이것이 anato보다 livescribe가 더 탁월한 기업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요소다. livescribe는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대학생들을 비롯 저널리스트, 법조계, 영업 등 전문 직업인들에게 모두 400,000대의 스마트펜을 팔았다. 반면 anoto는 그간에는 노키아, 로지텍, HP, livescribe 등에 기술을 라이센싱했고 최근 ADP시리즈 제품을 내놓았다. 물론 여전히 레코딩 기능은 없었다.
ps. thanks to @Jaejin Choi
교보문고가 2월부터 10만원대 전자책(e북) 전용 단말기 출시와 함께 회원제 e북 서비스 ‘샘(sam)’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단 칼라 e-ink 단말기 실패 이후 변화를 위한 발빠른 행보가 고무적이다. 특히 이제까지 교보가 내놓은 전자책 시장 상품들 중 단연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전자책 소비자들의 상당수가 소설, 에세이류에 집중되고 있고 그런 책들은 소장용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의 매력이 있는 회원제가 전자책 시장의 파이를 키울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을까. 어느 정도 괜찮은 서비스라고 생각하나, 여기에도 몇가지의 우려감이 있다.
첫째는 10만원대의 단말기가 흑백일 거란 추측. 당연히 태블릿을 쓰는 이들이 칼라 서적을 일단 보고나면 태블릿을 '더' 선호하게 될 것 같다. 결국 '샘'이란 서비스는 태블릿에서 앱으로도 제공되어야만 그 기대대로 시장에 먹힐 것이다.
둘째는 소장 욕구다. 사람들이 도서관만 이용하지 않고 책을 구입하는 이유는 특정한 책은 읽고 나서도 보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은 책에 대한 애정일 수도 있고 논문이나 칼럼을 쓸 때 참조를 위해서 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필요할 때마다 책을 대여해야 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회원제로 운영할 때 한번 구입한 전자책은 종신토록 보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 두가지가 잘 해결된다면 회원제 전자책 서비스는 (아마존 같은 공룡 온라인 업체가 존재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전자책 시장의 표준 서비스가 될 수도 있으리라 조심스럽게 예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