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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막말남 말이 참 많다. 동영상은 충격적이다. 신상털기로도 말이 많다.
사실... 개인적으로 억울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하필 그날 너무 아끼던 여친에게 차였을 수도 있고, 등록금이 없어 휴학하고 돌아가던 길일 수도 있다. 생애 가장 안 좋은 날이어서 잠시 미쳤을 뿐.. 사실 본인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어쨌거나 막말남사건으로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점은 이제 공공장소에서 자기가 익명으로 나쁜 짓을 자제하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사실이다. 의식하고 행동할 때와 달리 모르는 이들 사이에서 스스로에게 관대했던 미친 짓들은 누군가에 의해 촬영되고 SNS를 통해 공개되어 순식간에 전파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성글은 행위, 그 야만적 본성에 대해 좀더 자제할 시대가 왔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신상털기의 윤리 문제와 별개로, 옳고 그름의 잣대와 무관하게 개인의 미시사가 쉽게 털리고 전파되어 만 24시간 안에 이슈화될 수 있는 시대다.
이것이 막말남이 평소와는 다르게 재수없게도 한 번 잘못으로 만천하에 나쁜 놈이 되었다는 전제하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충고다. 또한, 내 평소의 익명적 악행에 대한 자성이기도 하다
(facebook 노트: 2011년 6월 28일 화요일 오후 3:48)
대학교. 캠퍼스. 이런 단어들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2년만에 다시 찾은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포스터를 붙이기 위해 쓰는
청테이프를 보면서도 마음이 울컥했는데. 이제는 마은에 다소 차분해졌다.
매일 아침 내려가던 지하철 계단.
친구들과 늦은 저녁까지 캔맥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노천극장.
중앙도서관을 올라가는 길. 인문대 수업을 들으러 숨을 몰아쉬며 뛰어가던 기억이 난다.
108계단. 계단수를 세어본 적은 없다.
사랑방. 1층은 서점이고 2층이 식당. 처음 '사랑방 정식' 메뉴를 '사랑 방정식'으로 잘못보고
잠시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 정문. 앞쪽에 조그맣게 사자상이 보인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양쪽으로 벤치가 있었고 거기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 건물은 최근에 새로지은 곳인 듯. 한참 농성 중이었다.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곳. IVF 룸.
룸에서 상대와 음대로 올라가는 계단. 이 곳도 많이 올라다녔다.
제1공학관과 중앙도서관이 보인다.
본관 앞 광장. 학부 때 이곳을 지날 때면 아는 지인을 만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지금은 지하철 연결 통로가 생긴 상황.
지하철. 집으로 가던 길. 같은 방향으로 가던 지인들.
신촌역, 당산역으로 가던 그 길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1.
난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원고료를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물론 이건 자존심일 수도 있겠지만-나는 단 한번도 내 글이 원고료를 받지 못할 수준의 글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글을 쓰는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내 글에 대한 애착이 크기 때문에 기고글을 쓸 때에 들이는 공과 시간이 내 일상의 어떤 일보다 크다. 문제는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이 기독매체 기고글이라는 점인데 대부분의 기독 매체는 자체 유지도 어려운 환경 탓에 대체로 원고료를 주지 못하는 곳이 많다.
2.
기독 매체 중 나는 딱 두 곳에서 돈을 받고 글을 썼다. 대학시절 A주간지에서 인터뷰를 한번 한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 청탁을 받고 글을 썼고 원고료를 받았다. 담당 기자는 원고료가 작아서 죄송하다고 친절히 전화까지 주었다. 나는 돈 때문에 쓴 글이 아니니 상관없다고 했다. 다른 한 곳은 B월간지. 내가 받은 원고료 중 가장 많은 액수이나 10만원이 넘지 않았다. 그 외 매체에서는, 내 기억으론 없다. 그리고 나는 글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지도 않을 뿐더러 처음부터 원고료에 대한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글을 썼기 때문에 돈 문제가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3.
하지만 원고를 쓰면서 심정적으로 불편한 몇 가지의 일들이 있긴 했다. 사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글을 쓰고 돈을 안 받는 일'에도 절차와 도덕이라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기독 매체 외에 일반 매체에도 글을 몇 번 쓴 적이 있다. 대체로 독자 투고로 실렸다. C매체에 기고글을 보냈을 때 담당 기자는 내게 전화해서 글 잘봤고 다음 달에 싣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원고료의 원칙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데 기고글에 대해선 내부 원칙대로 원고료가 나가고 독자투고글은 당사의 출판 도서 3권을 증정한다고 했다. 내 글은 독자투고글로 실리며 이에 대해 더 잘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고 나는 책 3권을 기쁘게 받았다.
4.
D매체는 나와 인연이 깊은 매체다. 편집장도 여러번 바뀌었고 지금도 간간이 글을 기고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내 글을 실어준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도 크다. 그 잡지에 처음 연재글을 보냈을 때 당시 편집장은 내게 원고료를 줄 수 없음을 사전에 알려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그 매체는 직원 월급조차 못 받은지 한참된 형편이었다. 편집장님을 비롯한 그 곳 식구들과 친분이 깊어지면서 난 원고료 없이 그 매체에는 항상 글을 쓰겠다고 선언했고 담당 간사님은 기뻐하며 우리가 따로 줄 것은 없으니 평생 구독자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몇 번의 연재글을 썼고 그 분이 있는 동안 나는 잡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담당자가 바뀐 후로 잡지는 오지 않았다. 물론 내 연재도 끝난 상황이고 매체 사정도 나빴기 때문에 다시 얘기하진 않았다. 이후로도 나는 원고료 없이 그 매체에 글을 썼다.
5.
E출판사는 꽤 유명한 곳이다. 흔히 교계에서 그 출판사 책은 눈감고 아무 책이나 골라도 양서라는 평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그런 이유로 E출판사는 내부적으로도 자부심이 강한 편이다. 얼마 전 그 출판사에서 기고 요청이 있었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유명한 출판사 답게 내 원고는 몇 번 수정 요청을 받았고 마지막에는 분량 때문에 담당 편집 간사가 직접 수정을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에 글이 내 기대보다 더 좋게 나왔다. 그런데 사실 좀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청탁 시에 원고료에 대한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는데 대체로 다른 매체는 원고료를 주지 않을 때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E출판사는 원고료를 주지 않았다. 대신 내 글이 실린 도서 5권을 보내주었다. 난 이 출판사에 대한 애정이 커서, 그리고 관계를 나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사전에 기고글에 대한 원고료 문제를 내게 알려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6.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다. 앞서 언급한 B월간지는 내게 교계에선 가장 많은 원고료를 줬다. 사실 그 월간지에 쓴 내 서평은 내 맘에 쏙 드는 글은 아니었다. 1주일 밖에 시간이 없었고 책을 읽고나서 서평을 쓸 시간은 3-4일 남짓이었으니 시간으로만 보더라도 좋은 글이 나왔을리 없다. 하지만 그 월간지는 내부규정에 의해 원고료를 지급한다고 알려줬고 나는 그 돈을 계좌로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도 작은 문제가 있었다. 원고를 보내고 잡지가 나온지 보름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어서 먼저 연락을 했다. 원고료 얘기를 했더니 조만간 입금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러고 열흘이 지나서도 입금이 되질 않았다. 다시 연락을 했다. 회계문제로 월말 정산 시에 일괄적으로 입금이 된다고 했다. 난 소심하고 꼼꼼한 성격 탓에 이 일로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 원고료에 전전하는 이미지를 심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원고료 얼마를 언제 지급하는지를 왜 먼저 알려주지 않고 물어볼 때마다 하나씩만 알려주는지 그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7.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실 교계에서 글을 쓰는데 돈 따위는 중요하지도 않고 나도 원고료가 필요 없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의 사레들은 나를 너무 답답하게 만들었다. D매체는 지금도 정기구독 말고 후원을 할까하는 마음을 먹을 정도로 애정을 갖고 있는 매체다. 하지만 애정을 갖은 만큼 내 기고글에 대한 화답 선물로 받은 평생독자라는 타이틀이 금새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담당이 바뀌고 편집부가 물갈이를 해서라고 이해하지만 웬지 서운하다. E출판사와 B월간지도 마찬가지다. 이 두 매체는 나름 유명한 곳이다. 그런만큼 좀더 프로답게 원고 청탁 후의 원고료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했다. 원고에 대해 사례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한다면 무엇을 언제 어떻게 지급하겠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이 아니던가. 사실 어떤 의미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모든 성도가 노동이 아닌 봉사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체로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다. 돈을 준다는 것도 어색하고 돈을 줄 때도 그 절차나 방법이 참 어색하다!
8.
나는 아직도 그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아니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라는 타이틀을 걸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나는 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사실 나는 회심한 이후 역설적으로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마음을 다쳤다. 물론 그것을 보상받을 훨씬 더 큰 지식과 인맥과 사랑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친 마음이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 연유로 소심해진 가슴으로 교계 안을 돌아다니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사람에게는 관대해졌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지인들이 죄를 짓지 않는 한 깐깐하게 지적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이 참 불편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원고료 문제다! 왜 나는 글을 쓰고도 원고료를 안 받는 문제로 이렇게 불편해야 할까. 그 누군가가 숨어서 내 글을 보고 앞으로는 일반 잡지사인 C매체처럼 명료하게 원고료에 대한 자기들의 원칙과 일정을 알려주면 좋겠다. 그게 내 넋두리의 요지다.
사족.
나는 요즘 F매체에 글을 많이 기고한다. F매체도 기독 잡지로 지속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매체다. 하지만 이 매체는 요즘 기고글에 대해 원칙을 정하고 적은 돈이지만 원고료를 주고 있다. 금액이 오천원에서 이만원 수준이니 그리 큰 돈은 아니다. 기고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있으나 마나 한 금액이지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매체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기도 하다. 나는 이 매체의 '원고료 철학'이 맘에 든다. 그간 무상으로 기고를 한 이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항상 있었고 금전적인 문제가 좀 나아지자마자 원고료에 대한 룰을 정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그 매체 사이트에 접속하면 원고료 정책이 팝업창으로 뜬다. 나는 요즘 이 매체에 후원도 하고 원고도 쓴다.
요즘은 원치 않게 부도수표를 남발하고 다닌다.
엄밀히 말하면 부도수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흔히들 하는 말로 '나중에 언제 한 번 보자'라는 말을 하고는
언제 한 번 볼 시간을 만들지 못하는 것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주에는 두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한 명은 10시에 퇴근하는 나를 만나러 굳이 통근버스 내리는 곳에서
밤 10시에 약속을 잡아 주었다.
우리는 12시반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후배는 올 3월에 아프리카로 1년간 떠난다.
보자 보자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곤 2월이 될 때까지 못 만났다.
그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집으로 오겠단다.
교회 일에 내일 출근에 힘들텐데
먼길 와서 나를 만나준 후배가 고맙기만 하다.
아이가 크는 중이라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갈수록 내 시간을 남과 나누는게 쉽지가 않다.
싫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그렇게 여건이 안 되고
내게 걸맞는 갑작스런 시간대를
타인에게 요구할 주변머리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렇게 점점 나는 사람들과 접촉이 줄어들고 있다.
주변 회사를 다니는 동료들도 가끔 그런 말을 하긴 했지만
나에게 필요한 대화는 아니겠거니 싶었다.
다행히 이번 주에는 두 후배(혹은 동생들?) 덕에 그들과 담소를 나누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허울없이 얘기를 나누는 것 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아웃사이더 같은 나에게 연락해주는 후배들에게 감사를.
(흠... 너무 왕따 같나.. 다시 쓸까나..)
2.
집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다시 붕어빵 포장마차를 보았다.
저녁을 많이 먹은터라 그냥 지나려다가, 날도 추운데 붕어빵 팔아드리자 생각했다.
"천원어치 주세요." 나는 오천원짜리를 꺼냈고 아저씨는 붕어빵 기계를 뒤집느라
정신이 없었다. 잔돈을 내가 가져가겠노라고 말하고 돈통에서 천원짜리를 꺼냈다.
천원짜리 네 장을 집어들었을무렵 아저씨가 갑자기 "잠깐만"이라고 말하고는
붕어빵 뒤집는 갈고리로 내 손을 펼쳤다. 거기엔 만원짜리 한 장이 끼어 있었다.
나는 대수롭지않게 만원을 내려놓고 천원짜리로 바꾸려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소리쳤다. "야, 너 뭐야? 이거 도둑놈아냐?"
붕어빵을 뒤집던 갈고리로 나를 쑤셔댔고 급기야 갈고리가 내 가방끈을 붙잡았다.
"이 새끼 사기꾼아냐? 너 내가 경찰에 신고할꺼야! 어? 꼼짝마 이 새끼야!"
생각도 못한 반응에 갑자기 심장이 내려앉는 듯 했다. 사기꾼이라니.. 내가?
3.
아저씨는 내가 도망이라도 가려고 했다는 듯이 갈고리를 든 손을 흔들어대며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로 큰소리로 내게 호통을 쳐댔다.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하며 심장은 더욱 크게 쿵쾅거렸다.
자칫 잘못하다간 정말 경찰서에 끌려갈 판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버쩍 들었다.
"아저씨, 왜 이러세요?" "저 지난 번에도 여기서 붕어빵 사먹었잖아요, 기억 안나세요?"
"생각을 해보세요, 제가 만원짜리를 집어 들었으면 도망을 갔지 순순히 돈을 내려놓았겠어요?"
"아무려면 아저씨 붕어빵 장사하는데 제가 그 돈을 훔쳐가려고 했겠냐구요? 예?"
아무리 진정하고 말하려해도 평소와는 다르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4.
아저씨는 인상을 쓴 채로 나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갈고리를 든 손이 풀렸다.
나는 재빨리 지폐를 돈통에 다 내려놓고 계속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정말 아니다, 믿어달라.. 뭐 그런 류의 이야기를 계속 떠들어댄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나도 사람을 오해하고 싶지 않지만 상황이 그러다 보니 당신, 신뢰가 안가서."
"왜 오해할 행동을 하냔 말이지."
아저씨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을 거라고 마음을 정리한 듯 했다.
"됐으니까 변명은 그만하고 붕어빵 가지고 그만 가봐."
한참을 변명하던 나는 멈칫 서 있다가 붕어빵과 잔돈을 챙겨서 포장마차를 나섰다.
5.
집으로 가는 길. 조금 안정이 되자 이내 억울한 마음에 울컥 화가 났다.
오늘은 붕어빵을 먹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아저씨의 지난 번 즐거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해서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갔던 건데 나는 길바닥에서 그야말로 개망신을 당했다.
'나도 길길이 뛰며 화를 낼 걸 그랬나..
아저씨의 기를 팍 누르는 미운 말들을 더 쏟아내 줄 걸 그랬나..
그깟 만원 훔칠 생각도 없었다고 말해줄 걸 그랬나...'
갈고리로 멱살 잡히다 시피하며 큰소리로 망신을 주던 아저씨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린다.
고개를 숙인 채 걷는 듯 마는 듯 너털 걸음으로 집을 향하다가 문득
내 손에 쥐어진 만원짜리를 발견하고 다급한 소리로 날 붙잡던 아저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돈통에는 많아야 3만원 정도가 있었다. 내가 들고 있던 돈은 만삼천원.
붕어빵 39개를 팔아야 하는 돈이다. 그 날 판 붕어빵의 대략 절반 정도의 돈인 셈.
하루 일당의 절반을 갖고 도망칠거란 생각에 아저씨도 갑자기 눈이 뒤집혔을 것 같다.
6.
나는 사회봉사나 구제에 관심이 많지만 때때로 노동자들의 거친 일상과 험한 입담이 싫다.
작은 일에도 버럭 화부터 내거나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술을 마시면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부류의 이들과 함께 있으면 은근히 나는 불편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지친 일상이 그렇게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나도 회사에서 궁지에 몰리면 흥분하고 과로를 하면 짜증을 내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평소와 달라진다. 그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사람을 괴롭히면
누구나 그렇게 또다른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게 되어 있다.
붕어빵 아저씨는 사실 내 속마음이 어떻든지 관심이 없겠지만,
어쩌면 만원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아저씨를 이해하고 그에 대한 마음 속 분노를 거두기로 했다.
누구나 궁지에 몰리면 누군가를 물게 되어 있다. 나는 개망신을 당했지만 오해가 풀렸고
아저씨는 만원을 잃지 않았으며 나는 도둑이 아니었던 거다. 그것으로 됐다.
7.
오늘 붕어빵 포장마차를 지나는데 다시 심장이 두근거린다.
용서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다시 어제 생각이 나니 억울한 마음이 조금 올라온다.
오늘은 붕어빵을 살까 말까.. 소심한 A형.. 별 걸 다 걱정하고 있네...
이런 저런 생각하고 천천히 포장마차로 다가가는데, 오늘은 장사를 안 한다.
왜지? 어제 일로 자학하시는 건가? 설마..
아니면 몸이 안 좋으신가. 이 길목에 장사가 잘 안 되나. 하긴 사람들이 잘 안 사먹더라..
뭐냐. 개망신 당한지 얼마나 됐다고 나는 벌써 아저씨 걱정을 하는거냐.
혼자 독백 아닌 독백을 중얼거리며 오늘도 너털 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