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처럼 글쓰기, 글처럼 살기'를 꿈꾸며
요즘 철도노조 문제로 뉴스를 보면 시민을 볼모로 무리수를 둔다는 둥, 시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불편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왜 철도 노조원들은 파업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무감하다. 구조조정이 철도 노동자들에게 어떤 문제를 초래하고 그들은 어떤 이유로 구조조정을 반대하는지에 대한 팩트보다는 시민인 나의 불편함을 위주로 뉴스화하는 것이 나는 불편하다.
홍세화가 자신의 책에서 언급했듯이, 프랑스는 노동자 계급이 혁명의 주체였기 때문에 노동자의 위상이 높다. 또한 그들은 단위 사업장의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토론과 논쟁을 통해 그들의 요구와 행동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합당하다고 여기면 자신의 불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지하철이나 철도 노조가 파업을 하면 그들을 위해 친히 자가용이나 자전거, 심지어 걸어서 출근하는 것을 기쁘게 동참한다.
우리 나라는 시민과 노동자 사이의 간극이 크다. 이는 시민들 자체가 부르주아 계급을 지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노동자의 단위 사업장 중심의 이기주의적 요소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시민들은 노동자들의 파업의 요구사항과 그 진행 과정에 너무 무심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발생한 불편함에 짜증만 내곤 한다. 보수적인 매체들은 이런 시민들을 담보로 쉽게 노조를 죽이는 기사를 남발한다. 마음이 답답하다.
가사노동이 허드렛일이고 단순반복적인 지루한 일이라는 점,
그리고 그 일을 가족의 일원이 분담하여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가정한다면 나는 설거지를 좋아한다.
곧 날씨가 더 더워지면 설거지를 조금만 미뤄도
주방에서는 악취가 가득해진다. 날파리도 접시 사이로 날아다닌다.
돼지고기라도 먹은 날이면 기름기 가득한 그릇들로 씻을 엄두가 안난다.
하지만 그건 일시적인 현상임을 난 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는 걸 볼 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일단 설거지를 시작하여 그릇을 씻기 시작하면
접시 하나 하나가 손 끝에서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깨끗하게 씻겨진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이렇듯,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씻김'이 설거지의 묘미이다.
과거에 날파리가 꼬였든 곰팡이가 피었든, 접시가 붉게 물들었든 간에
설거지라는 반복적인 행위에 의해 그릇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을 하고
맛깔스런 음식을 담은 채 화려하게 식탁으로 컴백한다.
나는 설거지를 통해 삶을 배운다. 사람도 이와 같다.
'씻김'을 통해 누구나 과거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러하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우리는 자주 주변의 관심과 칭찬에 기대어 산다.
초등학교 시절,
"참 잘했어요"라고 쓰여진 도장이 공책에 찍히면
나도 모르게 내가 했던 숙제를 보고 또 보곤 했다.
대충 하려던 것도 그 전날 숙제에 찍힌 도장을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TV만화와 간식을 뒤로한 채
나름 열심히 몇 자 더 적던 기억이 가끔 난다.
생각해보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대학을 가고 글을 쓰고 직장을 다녀도
주위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가던 길을 가려 하지만
때로 누군가가 "참 잘했어요"라고 내 걸어온 길에
진한 잉크로 도장을 찍어주길 기다리는 건 여전하다.
숨기고 무덤덤한 척 하지만,
누군가 나를 기억해주고, 지지해주고, 칭찬해주길 기대한다.
누군가의 관심과 인정, 그리고 사랑.
오늘도 나의 한 걸음은,
그들의 "참 잘했어요"로 인해 나아가는 것이다.
대학교 2학년. 군대도 가기 전인 스물 하나의 나는
캠퍼스 노천 극장에 늦은 시간 캔맥주를 사들고
친구들과 앉아 미래에 대한 넋두리를 하곤 했다.
그래,
그 땐 나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십년 후의 내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던 터라
안개 속 산 길을 걷듯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뭔가 새로운 것들이 내 앞에 펼쳐질 것 같은 두려움과
한 편으로는 은근히 설레는 기대감에 잠겨.
그렇게 달빛에 물든 캠퍼스 구석구석에 시선을 내려놓고
씁쓸한 맥주를 삼키듯 마시곤 했다.
희한하게 그 땐 맥주가, 지금처럼 잘 넘어가지질 않았다.
멍한 표정으로 잠시 떠올려보는 시간들.
허나 내가 알기로 프로페셔널은 '완전'하지 않은 사진은 쉽게 버린다. 그래서 프로들에게는 찍는 것도 일이지만 고르는 것도 일이다. 트리밍을 하거나 후처리를 한다 해도 어정쩡한 사진을 남겨두는 일은 거의 없다. 영화 '취화선'에서 주인공이 제대로 되지 않은 그림이나 도자기는 일말의 고민 없이 찢어버리고 깨어부수는 것도 이와 같다. 그렇게 엄선한 사진은 '작품'이 되고, 이러한 작품들은 보는 이에게 강한 인상을 주게 마련이다.
나는 그게 쉽지 않다. 자꾸 못난 사진들에 정이 간다. 포토샵을 켜서는 이렇게 저렇게 '가공'을 해본다. 이 사진은 이래서 못 지우고 저 사진은 저래서 못 지운다. 특히 인물 사진이 그렇다. 그 사람의 특징이나 내가 아는 어떤 특유의 인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진들 앞에서 삭제 버튼을 누르는 것 자체가 곤혹스럽다. 그래서 계속 '가공'을 하고는 다시 모든 사진을 뽑는다. 내가 보기에도 내 사진은 좋은 사진과 나쁜 사진이 골고루 끼어 있고,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내 사진을 무난하다 혹은 그저 그렇다고 생각한다.
가끔 모든 일에 완전한 것들만 내보이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결과만을 엄선해서 나란 사람을 꾸민다면, 그러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다부진 마음을 품어 본다. 그게 처세며 자기 관리이고, 또한 직장을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프로페셔널의 방식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인물 사진을 고르는 방식처럼 내 삶에서 프로처럼 살고 싶은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 그래, '잃어간다'는 말이 적절할 것 같다. 그런 '나태한' 방식이 내가 원하는 방향은 분명 아니니까. 하지만 어느 새 나이가 들어가고 시간 속에서 내 서툰 모습들이 익숙해져간다. 긴장이 풀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여유가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또는 나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는 것도 같다. 좋고 나쁨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삶에서 아마추어가 되어간다. 오늘도 나는 찍은 사진들을 살려 보고 있다. (끝)
생일축하한다. 항상 행복하렴.
- 누나
생일축하해~~ 잘 지내는거냐?? 축하콜라 한잔 해야지!!
- 상국 옹
생일축하해요~ 교육 중이라 기쁨 두 배 겠구만!!ㅋㅋ
생일턱은 언제 낼꺼야? ^^
- 김장호&이동욱
아도라 생일을 추카추카 한단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해라. 마니마니 사랑해.
- 어머니
근데 거북이가 죽었대. 불쌍하고 섭섭하네.
- 어머니2
용주군 해피버스데이투유라네^^
마눌님 미역국은 먹었남?
- 가가
아니 형님~!!!!!!!
이리 좋은 날 태어나셨습니까^^
덕분에 우리가 기쁨을 누립니다~~
- 진숙
형 생일축하해요
요즘 자주 못 뵈어서 안타깝네요ㅋ
명희 누님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창서
형 생신 축하드립니다~ㅋ
건강 잘 챙기시고 담에 함 바여~ ^^
- 태종
생일축하해요.
아가 키우느라 외출 못하는 아줌마 위로 방문 좀 해주지.ㅋ
가깝고도 먼 이웃^^
- 종임
오라버니 어제 연락한다는게 깜빡했네.
쪼꼼(?)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으흐흐 ^^
- 정은